기업가치 ‘하이닉스’에 기반, 배당액 줄면 자립 악영향…SK스퀘어 “SK(주)와 합병 고려 안해”
SK스퀘어는 SK그룹의 중간지주회사로 순수투자회사다. 기본적으로 여유자금이 있어야 포트폴리오 조정이 가능한 셈이다. SK쉴더스와 원스토어의 상장 철회로 인한 자금 조달 실패는 나노엔텍 지분을 전량 처분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오는 9월 나노엔텍 지분 처분 대금 580억 원이 입금되면 SK스퀘어의 투자 여력이 조금이나마 확보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반도체 경기 악화는 또 다른 변수다. SK스퀘어의 SK하이닉스 지분율은 20%에 그치지만 SK스퀘어 기업가치의 70% 이상이 SK하이닉스에 기반을 둔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내년 배당액이 줄어들면 SK스퀘어의 자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올 정도다. 이 경우 SK(주)와 SK스퀘어의 합병론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의 심각한 재고 상황
편차는 있지만 대부분 증권사는 SK하이닉스가 올해 하반기 내리막길을 밟을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 5월만 해도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 평균 예상치는 4조 8553억 원이었지만 8월 22일 기준 3조 1663억 원까지 내려왔다. 같은 기간 4분기 전망치는 5조 1339억 원에서 2조 6112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SK하이닉스의 문제는 재고 상황으로도 엿볼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11조 8787억 원으로 지난해 6월 말 대비 무려 91% 증가했다. 재고자산 회전기간(재고가 팔리는데 소진되는 기간)은 145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증권사 연구원들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가격을 지키기 위해 최근 출하량을 조정했고, 이에 따라 하반기 이후 재고 소진 절차에 돌입하면 반도체 가격 하락과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 재고 상황은 SK하이닉스가 제일 심할 뿐 삼성전자나 마이크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매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물류난 등을 대비해 반도체를 선확보해 놓은 상태다. 하반기 추가 주문이 잇따를 가능성도 크지 않은 것이다. 올해 하반기 반도체 경기 하락이 예상되는 이유다.
김장열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에 대해 “분기별 반도체 가격 하락 폭이 10% 이상일 가능성이 있다”며 “거시경제 환경이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으면 분기 이익은 2조 원까지 하락할 수 있고, 내년 자기자본이익률(ROE)은 한 자릿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물론 SK하이닉스가 실적 부진에 빠진다고 해서 당장 배당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중간배당을 도입하고, 2024년까지 고정배당금을 1000원에서 1200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잉여현금흐름(FCF)의 50%가량을 배당 재원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SK스퀘어가 올해 상반기 SK하이닉스로부터 수령한 배당금은 2688억 원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는 올해 4분기에는 주당 300원에 잉여현금흐름의 5%를 추가 배당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의 중장기 배당 계획으로 인해 주당 1200원 배당은 확정됐지만 그럼에도 반도체 경기 악화는 우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SK스퀘어를 비롯한 SK 계열사들은 ‘파이낸셜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상당히 구체화된 숫자를 제시해 경영 계획을 수립한다”며 “반도체 경기 악화와 IPO 부진으로 인한 여파는 최소한 SK스퀘어에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스퀘어의 돌파구는?
SK스퀘어는 하반기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유망 기업을 인수해 국면 전환을 꾀할 계획이다. SK스퀘어 대표이사인 박정호 SK텔레콤 부회장은 2011년 SK하이닉스 인수를 진두지휘했다.
SK하이닉스의 매출은 95% 이상이 메모리 반도체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가격 급등락으로 인한 실적 변동성이 크다. 이 때문인지 SK하이닉스는 최근 현대전자 사업부였던 키파운드리를 인수했다. SK스퀘어 또한 SK하이닉스로부터 안정적인 배당 수입을 얻기 위해서라도 비메모리 반도체나 반도체 설계(팹리스) 쪽 기업에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SK스퀘어가 하반기 발표할 인수기업들에 아주 의미 있는 기업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IPO는 물론 벤처캐피털, M&A 시장까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박정호 부회장은 올해 초 주주총회에서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 공동 인수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SK스퀘어의 자금력이 부족해 주도적으로 컨소시엄을 구축하기도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SK스퀘어가 현실적인 이유로 소규모 투자만 집행하면서 중간지주사 무용론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SK스퀘어와 정반대로 지주회사 SK(주)는 정유 및 배터리 업체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SK E&S, SK실트론 등 자회사들의 성장 덕에 올해 상반기 64조 원의 매출을 달성해 압도적인 경쟁력을 드러내고 있다. SK(주)의 올해 말 보유현금성 자산이 15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SK(주)와 SK스퀘어의 합병은 SK그룹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그동안 손자회사로 둬야 했던 SK하이닉스를 SK(주) 자회사로 두고, SK(주)의 자금력을 기반으로 더 적극적인 M&A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SK그룹은 SK스퀘어 출범 당시 “SK텔레콤을 SK스퀘어와 SK텔레콤으로 분할하는 것은 소액주주 이익에 반한다”는 지적을 의식해 당장 합병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당장 양사 합병이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SK스퀘어 관계자는 “(합병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고, 반도체 및 미래 ICT 분야 투자를 통해 생태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투자 계획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현 시점에서 공개가 어렵다”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