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0억 원 배상 판결에 정부 “불복 절차 검토”…산업자본 인수 자격 지적 회피한 금융당국 책임론
8월 31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ISDS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 1650만 달러(약 2800억 원)와 2011년 12월부터 최근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에 따른 이자를 배상하라”는 최종 판정을 내놓았다. 론스타 측 청구 금액인 46억 7950만 달러(약 6조 3000억 원)의 4.6%가 인용됐다. 이번 판정은 지난 2012년 11월 론스타가 ICSID에 ISDS 소송을 제기한 지 10년 만에 나왔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 정부의 법령과 정책 등으로 손해를 봤을 때 국제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론스타는 2003년 약 1조 3800억 원에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인수했다. 이후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 9000억 원대에 외환은행 매각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우리 금융당국이 승인신청서를 접수한 후 1년이 넘도록 인수 승인을 내주지 않았고, 그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발생해 2008년 계약이 파기됐다. 이후 2012년 론스타는 하나은행에 외환은행을 3조 9000억 원대에 매각했다. 당초 하나은행과 맺은 1차 계약 금액인 4조 7000억 원보다는 7700억 원 정도 깎인 금액이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승인을 늦춰 매각이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은행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부당하게 승인을 지연하고 하나은행에 가격을 인하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했다. 론스타는 2012년 우리 정부에 제출한 통고문에서 “한국 정부의 일련의 조치는 모순됐다. 법적 근거가 없는 여론이나 국민적 합의를 이유로, 투자자를 법적 불확실성 상태에 장기간 (인수 승인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 공정‧공평대우의무 위반”
법무부에 따르면, ICSID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와 하나은행 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우리 금융당국이 승인을 지연한 행위는 투자보장협정상 공정‧공평대우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관련 형사 유죄 판결로 인한 책임으로, 하나은행에 대한 매각가격 인하에 론스타 측 50% 과실상계를 인정했다. HSBC 매각 승인 지연과 관련한 론스타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한‧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에도 불구하고 면세 혜택을 주지 않았다는 등 론스타 측 조세 쟁점 주장은 모두 기각됐다.
론스타 측 청구액 중 소수만 인용됐지만 청구액이 적다고 볼 수는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소송에서 론스타 청구액 중 하나은행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인하된 금액인 7700억 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청구액은 부풀려졌다는 주장이 법조계에서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불복 절차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8월 31일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국제 법규와 조약에 따라 차별 없이 공정‧공평하게 대우했다는 일관된 입장이다. 중재판정부 다수의견 판단을 수용하기 어려우며, 향후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CSID 협약 제52조 제1항에 따라, 중재 당사자는 판정 후 120일 이내에 판정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판정 취소 신청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제기한다. 판정무효신청 사유는 △판정부 구성 잘못 △명백한 권한 일탈 △부패행위 △절차규정의 심각한 위반 △판정문 이유 미기재 등 5가지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자격이 없었는데…' 불거지는 책임론
10년 만에 판정이 나오긴 했으나 여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우선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인사들의 책임론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ISDS 중재판정부는 결국 우리 금융당국이 론스타와 하나은행 간 매각 승인을 지연한 데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론스타와 하나은행이 외환은행 인수 협상을 벌이던 2011년 당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각각 금융위원회 내에서 부위원장과 사무처장을 맡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했을 당시 론스타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앤장의 고문으로 재직 중이었다. 2006년 감사원의 론스타 특별감사 때에는 경제부총리를 맡고 있었다.
이번 분쟁에서 금융당국이 론스타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에 해당한다는 것을 쟁점화하지 않은 점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당시 은행법은 비금융 부문의 자산규모가 2조 원 이상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2003년 금융당국은 외환은행을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자기자본비율 8% 미만의 부실 은행으로 분류했고, 은행법 시행령 제8조2의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적용해 인수를 예외 승인했다. 그러나 이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론스타가 산업자본에 해당해 인수 자격이 없었는데 금융당국의 심사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후에도 산업자본 해당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돼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만약 우리 정부가 ‘비금융주력자인 론스타가 국내법을 위반한 투자자이기 때문에, ISDS를 통해 보호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면, 금융 쟁점에서는 중재판정부가 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그렇게 되면 배상금이 0원으로 될 수 있다. 각하가 될 수 있었던 사안에서 우리 정부가 비금융주력자 논점을 스스로 다루지 않았다. 비금융주력자 이슈를 다루지 않기로 결정한 관련자들을 토대로 철저한 진상 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해외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S 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인 사건은 론스타 건 이외에 6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판정을 정부 뜻에 맞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결국엔 기업에 정부가 졌다는 이야기인데 복기해 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 소재를 가리고 앞으로 있을 ISDS 소송에 잘 대비하기 위해서는 판정문을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18년 이란 다야니 가문이 청구해 한국 정부가 패소한 ISDS 소송의 판정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