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범행 증거는 이정학 진술뿐, ‘결정적 증거’ 권총 확보 시급…여죄 유무 등 추가 수사 진행 중
브리핑에서 이승만과 이정학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백기동 대전경찰청 형사과장은 검거 경위도 함께 발표했다. 이들은 2001년 10월 대전 송촌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을 차량으로 친 뒤 3.8구경 권총과 실탄을 훔쳐 대전 국민은행 권총강도사건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에 쓰인 검정색 그랜저 차량 역시 범행 3주 전인 12월 1일 경기 수원에서 시동이 걸린 채 주차된 차량을 훔친 것이었다.
이렇게 범행 도구를 준비한 뒤 이들은 여러 차례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둔산지점을 방문해 답사했으며 300m가량 떨어진 상가 건물 지하 주차장에 다른 차량까지 준비해뒀다. 범행 직후 계획대로 상가 지하 주차장으로 와서 준비된 차량으로 바꿔 타고 도주했는데 이 과정에서 범행에 쓰인 검정색 그랜저 차량 안에 자동 점화장치를 설치해 불을 내 증거를 인멸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이들은 무려 21년 동안 용의선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유전자라는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체포된 이정학은 범행 사실을 대체로 인정했고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마음까지 표현했다고 한다. 반면 이승만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정학과 달리 이승만은 별다른 증거 없이 이정학의 진술만 존재할 뿐이다.
이정학은 진술을 통해 범행을 주도한 게 이승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송촌동 주택가에서 경찰의 총기를 탈취하고 대전 국민은행 권총강도사건 당시 총을 쏘는 등 범행을 주도한 게 이승만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범행에 쓰인 권총인데 이정학은 범행 이후 이승만이 권총을 바다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학과 이승만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범행 이후 각기 다른 지역에서 지내며 서로 연락도 주고받지 않고 지내왔다고 한다. 2인조 강도였던 이들이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또한 훔친 금액 3억 원은 이정학이 9000만 원, 이승만이 2억 1000만 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이승만이 범행을 주도했다는 이정학의 진술과 부합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백기동 형사과장은 “두 사람의 성향, 관계, 주변인 진술 등으로 보면 이정학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며 “많이 늦었지만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 고인과 유족을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미 이정학은 유전자라는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확보돼 있고 본인도 범행을 대체로 인정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승만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데다 증거는 이정학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하다. 사건 당시 목격자 진술을 바탕으로 작성됐던 몽타주와 이정학, 이승만의 실제 얼굴이 상당히 유사하지만 결정적 증거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재판 과정에서 법정 다툼이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결정적 증거인 권총의 행방을 찾는 게 시급해 보인다. 또한 추가 공범의 존재 여부와 ‘현금수송차량 탈취 사건’ 등 비슷한 시기 대전에서 발생한 다른 미제사건과의 연관성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이 남아 있다.
이에 백기동 형사과장은 “사건 송치 이후에도 검찰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권총의 행방을 비롯해 추가 공범과 여죄 유무 여부 등을 수사해 피의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