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저, 장군님과 필체까지 꼭 같습네다”
▲ 로이터/뉴시스 |
“척척 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 대장 발걸음, 2월의 정기를 뿌리며 앞으로 척척척, 발걸음 발걸음 힘차게 구르면 온 나라 강산이 반기며 척척척”
이는 김정은 부위원장의 찬양가로 알려진 ‘발걸음’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는 김 부위원장이 아홉 살 되던 해, 생일선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쉬우면서도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꾸며진 ‘발걸음’은 가사 곳곳에 김 부위원장을 칭송하는 내용들이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발걸음’이 2012년 새해 벽두부터 울려 퍼졌다. 지난 1월 1일 북한의 <조선중앙TV>는 ‘발걸음’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제작해 북한 전역에 방영했다. 1월 4일에는 ‘조선청년행진곡’이라는 또 다른 찬양가가 방영되기도 했다. ‘조선청년행진곡’은 ‘김장군 두리(주위)에 뭉치자’라는 소절이 반복되는 일종의 후크송이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김 부위원장의 우상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 속도도 무척이나 빠르다. 북한전문가들은 부친에 비해 지극히 단축적으로 진행된 후계세습 과정과 부친의 급사로 생긴 공백을 단시간에 메우고자 ‘김정은 우상화 작업’이 속도전 양상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제 막 권좌에 오른 김 부위원장의 ‘수령 만들기’ 대작전은 북한 당국 입장에서 가장 급선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반인’을 절대적인 ‘신’으로 만들어 나가는 작업으로 봐도 무방하다.
김 부위원장의 우상화 작업은 노래뿐 아니라 여러 가지 기념물 사업에서도 잇따라 목격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에는 김 부위원장이 처음 우표에 등장했다. 이번에 국가우편발행국에서 발행한 김정은 우표는 총 2종이다. 우표는 김 부위원장이 부친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고안되어 있다. 김일성-정일-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 3대 혈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하나 눈여겨볼 우상화 작업은 김 부위원장의 천재성을 대내외에 널리 홍보하고 있는 북한 언론의 최근 행태다. 지난 1월 5일 북한의 대남 창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기사를 통해 김 부위원장의 논문 저술 이력을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 부위원장은 불과 16세 때 조부인 김일성 주석의 ‘영군술’과 관련한 대작 논문을 집필했다고 한다. 10대에 사상이론의 첫걸음을 뗐으며 뛰어난 저술로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정은이 집필했다는 논문의 본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아직 20대에 불과한 김 부위원장의 빈약한 경륜과 경험을 만회하고자 어려서부터 여러모로 조숙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북한체제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사상에 어려서부터 정통했다는 점을 내부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노동신문> 등 북한 내 기관지들은 김 부위원장과 3대 후계세습의 정통성을 널리 알리는 기사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북한 학계에서도 벌써부터 김정은 우상화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1월 4일 김일성방송대학 홈페이지에는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의 영도는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의 계승 완성을 위한 결정적 담보’라는 긴 제목의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논문은 모든 면에서 뛰어난 김 부위원장의 천재적 능력과 조부와 부친을 잇는 전지전능한 지도자로서의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마디로 김 부위원장을 치켜세우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 친필 첫 공개 위부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친필 서명. 김정은 서명이 아버지 김정일 서명과 흡사해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
사실 이러한 김 부위원장의 우상화 작업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부친 김 위원장의 경우도 자신과 부친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 작업에 큰 힘을 쏟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백두혈통을 강조하기 위해 백두밀영 내 자신의 탄생지를 조성하는가 하면 그가 앉았던 벤치를 유리관으로 감싸 기념물로 만드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3만 개가 넘는 김 주석 동상 제작과 영화, 저서, 그림, 음악 등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렸다. 이러한 우상화 작업비용이 북한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넘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 속도만을 놓고 본다면 최근 진행되고 있는 김 부위원장의 우상화 작업은 부친의 경우보다 빠르다. 김 위원장이 1974년 처음 후계자로 낙점됐을 때 그는 ‘당중앙’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대신하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의 행보는 천천히 점진적으로 김 주석의 보조를 맞추며 우상화 작업을 진행했던 부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기자와 만난 한 북한전문가는 “김 부위원장은 결국 부친보다 빈약한 권위와 조직 장악력을 단시간 내에 만회해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우상화 작업 속도전은 결국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방면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진단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