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폭력 ‘와이파이셔틀’ “인터넷 끊기면 주먹질”
‘일진회’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친일 조직’이라면 당신은 구세대다. 지금 자녀들은 학교 내 불량서클 일진회에 떨고 있다.
임진년 새해를 맞아 경찰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만연한 학교폭력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다. 20년 전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때만큼 비장한 각오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도 경찰과 협조해 교내 불량서클을 모조리 해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미지 실추를 염려해 교내 폭력사태를 숨기기 급급했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 때문인지 신년부터 교내 불량서클인 일진회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1월 4일 여주경찰서는 공갈·갈취 및 성폭력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여주의 한 중학생 김 아무개 군(15) 등 4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 군은 소위 학교의 ‘짱’이었다. 이들은 친구들의 돈은 물론 스마트폰 데이터를 빼앗거나 하급생을 성폭행한 뒤 동영상을 찍고 서로를 기절시키며 놀았다.
어른들의 상식을 벗어나 이뤄지는 중학교 일진회 수법을 낱낱이 공개한다.
# 와이파이 셔틀
‘와이파이 셔틀’이란 불량학생들이 3G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한 힘없는 학생들에게 테더링이나 핫스팟 기능을 강요해 공짜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무제한 요금제는 기본료만 5만 5000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통상 데이터 공유기능을 이용하면 배터리가 금방 닳는다. 전화 통화나 다른 부가 기능을 이용하기도 번거롭다. 사실상 스마트폰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담임선생님들은 친구들에게 선의로 데이터를 나눠주는 일이기 때문에 폭력이나 금품 갈취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일진들에게 빵과 같은 간식을 갖다 바치는 ‘빵 셔틀’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 것을 생각하면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 빵 셔틀로 시달리던 학생들은 ‘빵 셔틀 연합회’을 조직해 사회적 반감을 드러낸 일도 있었다. 아동심리상담가 이주은 씨(29)는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의 경우 휴대폰을 공유하는 행위는 죽기보다 싫을 수 있다. 와이파이 셔틀은 나에게도 충격적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 10대 폭력
일진회 정체는 설문조사를 통해 발각됐다. 해당 학교는 지난해 11월 익명으로 학교폭력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설문조사 다음이었다. 저학년 학생 몇 명이 교무실에 찾아와 김 군을 중심으로 한 일진회 정체을 폭로한 것이다. ‘일진회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경악할 만한 만행을 전해들은 선생님들은 스스로 감당하기 벅차 경찰에 맡기게 된 것이다.
14~15세에 불과한 이들의 성생활은 가히 충격적이다. 일진회에 속한 학생들은 경기도 일대 가출 여학생들과 자주 어울리며 성관계를 가졌다. 1학년 여학생 두 명을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술을 먹이고 성폭행하기도 했다. 당시 여학생들은 “생리중이다. 싫다”며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들은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관계를 가지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손전등을 비추거나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촬영했다. 수치심을 주는 동시에 쉽사리 고발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일진회 학생이 사귀는 여자친구에 대해 나쁜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이유로 후배 10명을 야산으로 불러내 집단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을 무릎 꿇리고 상의를 입에 물게 한 뒤 밖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가슴, 배, 허벅지 쪽을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엽기 행각도 더해졌다. 폭행당한 후배들에게는 “자위행위를 하라”고 종용한 뒤 그 모습을 보고 낄낄거린 것이다.
여주경찰서 관계자는 일진회 학생들을 검거한 후 “가해 학생들이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는 등 시큰둥한 모습을 보여 형사들이 집중이 안 되고 기가 막혀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 기절놀이
기절놀이는 지난 2007년 전북 군산의 한 초등학생이 기절놀이를 한 뒤 그날 밤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지난해 9월에도 비슷한 소란이 있었다. 인천시교육청은 2011년 9월 9일 중학교 1학년 5명이 반 친구의 목을 팔로 감싸 숨을 못 쉬게 해 한 학생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기절놀이를 당한 학생은 병원 검사 결과 목 근육이 일시적으로 경색됐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학교 측은 자체 조사결과 가해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기절놀이를 가한 것으로 밝혀져 이들에게 사회봉사활동 처분을 내렸다.
2012년 현재 블로그와 10대들이 즐겨찾는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기절놀이 체험기가 나돌고 있다. 이들은 안전하게 잘 기절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가 하면 여러 번 기절에 성공한 사람을 치켜세운다. “그러다 송장 치운다”는 의견에는 “일단 기절해보고 오라”며 체험을 종용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김재엽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논문에서 “청소년 114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8%가 지난 1년간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고, 그중 42.3%는 최근 1주일 사이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학교폭력에 많이 노출될수록 자살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강력한 예방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