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취준생 표적…전화사기 동원하고 일부는 장기 적출…캄보디아 “중국 범죄집단 소행, 우리도 피해자”
출입국 기록을 조사한 대만 경찰청의 보고에 따르면, 올해 들어 거의 매달 약 1000명의 대만인이 캄보디아로 여행을 갔지만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월 평균 약 100명에 불과했다. 이에 대만 정부는 현재 2000명 정도가 아직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5000명 정도라는 의견도 있다. 제3국이나 혹은 육로를 통해 넘어갈 경우에는 여행자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두 인신매매 피해자란 확신은 없지만, 경찰은 이들 가운데 최소 370명 정도는 불법 감금된 상태로 파악하고 있다. 로핑청 대만 행정원 대변인은 “최소 373명의 대만인이 가짜 구인광고를 통해 캄보디아로 넘어가 범죄조직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33명은 감금돼 있다”고 보고했다.
인신매매 조직에 의해 끌려간 사람들은 비단 대만인뿐만이 아니다. 피해자들의 국적은 대만 외에도 태국,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양하며 대부분 18~35세의 청년층이다.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유형이 예전과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에는 주로 가난한 여성들이 성노예로 팔려가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던 극빈층 사람들이 트롤선에 강제로 실려가 노역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다. 가난한 농촌 지역 출신보다는 젊고, 똑똑하고,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최신 IT기술을 다루는 데 능숙한 중산 가정 출신들이 많다. 한마디로 평범한 집안의 도시 청년들이 인신매매를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들이 불법 사기 집단의 꾀임에 넘어가는 이유에 대해 ‘디플로맷’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과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을 때 의심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범죄조직들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취업을 하지 못한 청년들, 그리고 SNS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시아 청년들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순진함을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신매매 조직은 주로 SNS에 파격적인 조건의 구인광고를 올려 미끼를 던지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어 구사자 우대, 해외 취업, 고수익 보장, 숙식 제공, 무경험자 환영 등의 조건들이다. 실제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구인광고는 “중국어를 구사하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알고 타자만 칠 수 있으면 된다. 최소 월 2500달러(약 340만 원)를 지급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는 물론 다 허위 광고였다. 이들은 일단 미끼로 유인한 청년들이 현지 국가에 도착하면 돌변하기 일쑤였으며, 공항에서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은 후 감금한 채 고문과 협박, 폭행을 일삼았다. 이런 악몽을 겪었다 가까스로 탈출했던 홍콩 출신의 아디(30)라는 남성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통해 “페이스북을 통해 태국에서 광고 일을 하면 월 6370달러(약 860만 원)를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듣고 솔깃했다. 이 말만 믿고 태국으로 향했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후회했다. 그는 매솟에 도착한 후 다시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끌려갔으며, 그곳에서 몸값으로 1만 달러(약 1350만 원)를 내거나, 아니면 전화 사기를 쳐서 그만큼 돈을 벌라는 지시를 받았다.
유탕이라는 여성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4월, 페이스북 구직 그룹을 통해 한 대만 여성으로부터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 해외 취업으로, 온라인 게임 및 카지노 산업의 콜센터 또는 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유탕이 선뜻 수락하지 못하고 의심하자 그들은 돌아오는 비행기 값을 미리 지불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정 의심스러우면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자고도 했다.
유탕은 “약속 장소에 나온 그 남자는 정상적으로 보였다”며 결국 의심을 거두었고, 그렇게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며칠 후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자 마중을 나와있던 깡패 같은 인상의 자칭 여행사 직원은 대뜸 여권과 휴대폰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심카드를 교체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지만, 그렇게 가져간 후 다시 돌려주지 않았다.
유탕은 “누군가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려면 심카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팔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다. 유탕과 일행은 남부 시아누크빌로 끌려갔으며, 그곳에서 전화 사기 작전에 투입된다는 황당한 말을 들었다. 만일 당장이라도 풀려나기를 원한다면 몸값으로 1만 7000달러(약 2300만 원)를 지불해야 했으며, 돈이 없으면 지금부터 전화 사기에 가담해 돈을 벌어와야 한다고 했다.
이를 거부한 한 남자는 두들겨 맞았으며, 결국 전기충격기를 맞고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다. 유탕은 현재 그 남자가 대만의 실종자 명단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유탕이 기억하기로는 그 건물에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은 50명가량이었으며, 시아누크빌에는 아파트처럼 생긴 비슷한 건물들이 곳곳에 많았다.
태국 국적의 완이라는 남성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그는 캄보디아 국경 마을에 있는 온라인 카지노 업체에서 일하면 월 1500~2000달러(약 200만~270만 원)를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국경을 건넜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다름 아닌 보이스피싱 사기였다. 완은 “가족의 도움을 받아 몸값을 내고 한 달 만에 간신히 빠져나왔다”면서 “같이 일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범죄조직에 의해 빚더미에 올라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의 말에 따르면 범죄 집단의 사기 행각은 비열하고 치밀했다. 보이스피싱에 동원된 사람들에게는 매일 15~20명을 상대로 사기를 쳐야 한다는 할당량이 주어졌으며, 대개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 만일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몽둥이로 구타를 당하거나 노예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고향에 있는 다른 대만 사람들을 상대로 무작위로 스팸 메일을 발송하거나, 직접 전화를 걸어 동남아에 좋은 일자리를 알선해 줄 테니 건너오라고 유인하는 일이었다. 각각의 책상에는 동기부여 슬로건, 상황별 대본, 잠재적 희생양들의 전화번호 명단이 붙어있었다.
이들의 사기 수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가상의 온라인 인물을 만들어 무작위로 사람을 유혹하는 이른바 ‘캣피싱’ 둘째, 암호화폐 투자 권유 셋째, 경찰관 행세를 해서 피해자들이 은행 계좌로 돈을 송금하도록 유인하는 수법 등이다. 마지막 수법에 대해 완은 “결정타로 가짜 경찰 제복을 입은 남성이 실제 태국 경찰서 한 곳과 동일한 번호로 피해자와 영상통화를 시도하기도 한다”고 증언했다.
실적을 채우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에는 장기가 적출되기도 한다. 범죄조직은 신체부위를 16군데로 세분화한 뒤 가격을 매겨 거래하고 있었다. 가령 심장은 11만 9000달러(약 1억 6000만 원), 간은 15만 7000달러(약 2억 원), 두피는 607달러(약 82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지난 6월, 시아누크빌로 여행을 갔던 화롄 출신의 한 남성이 사망한 배경에도 장기 밀매 조직이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대만 민진당 의원 사이다이 타호베카헤는 “이 남성의 가족은 그가 마약과 알코올 남용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면서 “하지만 그의 부모가 확인한 것은 사망한 아들의 머리와 목만 보이는 사진이 전부였다. 장기가 적출돼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했다.
감금된 후 수시로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 역시 충격적이긴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곳에서 구타와 전기 고문은 흔한 일이었다. 태국 접경 지역에 있는 미얀마 카렌족 자치구의 ‘KK단지’에 감금된 피해자들은 아파트 건물처럼 보이지만 감옥과 다를 바 없는 곳에서 수시로 폭행을 당하면서 노예처럼 생활하고 있다. 이 건물 주위로는 전기 철조망이 둘러싸인 높이 4m의 담장이 있고, 밖에는 무장한 카렌족이 항시 경비를 서고 있기 때문에 탈출도 불가능하다.
캄보디아에서 촬영된 한 동영상에서는 수십 명의 베트남인들이 감금돼 있던 카지노에서 도망쳐 나와 몽둥이를 휘두르는 경비원을 피해 강을 헤엄쳐 건너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과정에서 16세 소년 한 명은 익사하고 말았다.
범죄조직이 이렇게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형편이 나빠진 카지노 업체 등이 돈벌이에 나선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의 제레미 더글러스는 “코로나가 메콩 지역의 범죄조직들로 하여금 ‘적응하고 혁신’하도록 자극했다”고 말하면서 “특히 국경지역과 경제특구에서 영업하던 카지노들은 관광객이 급감해서 파산 직전이었다. 그들은 기술 개발 및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함으로써 이에 대응했다. 콜센터 사기 행위는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데 있어 또 다른 중심축이 됐다”고 설명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대만 정부는 특수본을 꾸린 후 자국민을 탈출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캄보디아에서 72명을 구출했으며, 범죄조직 관계자 67명을 체포했다. 지난 8월 26일, 타이베이 경찰은 인신매매를 시도하려던 일당 6명을 현장에서 급습해 체포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반면, 인신매매 조직의 온상으로 떠오른 캄보디아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남부 항구 도시인 시아누크빌, 프놈펜, 코콩 등지가 무법천지가 되고 있는 배경에는 사실 삼합회를 비롯한 중국 범죄 집단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0년 전만 해도 태국을 근거지로 활동했지만, 태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단속 활동으로 입지가 좁아지자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대거 밀려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조직원들은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한 후 카지노 사업을 통해 번 돈을 이용해 조직 사업을 키워 나갔다. 때문에 과거에는 주로 서양인들이 시아누크빌을 찾았다면, 지금은 중국의 투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중국인 수가 급증했다.
캄보디아의 반무역 국가위원회 부의장인 추분 엥은 “캄보디아 역시 피해국이다. 그들은 우리 영토를 이용해 다른 외국인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또 다른 외국인들이다. 모든 범죄 신고에 일일이 대응할 수는 없지만, 가능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피해자를 구출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이 쉽게 뿌리 뽑히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유는 캄보디아의 실정 때문이다. 실제 캄보디아는 최근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 인식 지수에서 180개국 가운데 157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다.
사정이 이러니 태국 경찰은 “우리는 결코 범죄조직들을 완벽히 소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그들은 벌어들이는 막대한 부로 누구든 매수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