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대사 역할 올인” 여권서도 병역 혜택 긍정 기류 확산…여론조사선 “의무 다해라” 54% 부담 작용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8월 3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BTS 병역 문제에 대한 빠른 결정을 촉구했다. 이에 이종섭 장관은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결론을 내리라고 했다”면서 “여론조사를 빨리 하자고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BTS 병역특례에 대한 의사결정을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그동안 병역자원 부족 문제와 공정·원칙을 강조하던 이 장관 태도에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된 순간이었다.
이 장관은 “BTS 병역 문제는 여러 의원의 의견을 종합하고 여러 가지 차원에서 국가 이익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최대한 빠르게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 태도 변화는 윤석열 정부 내부에서 새롭게 감지된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 복수 관계자 분석이다. 지금까지 BTS 병역특례 이슈에 대해 더 큰 목소리를 냈던 진영은 더불어민주당 쪽이었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진 사명이지만, 모두가 반드시 총을 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손흥민은 되는데 왜 BTS는 안되느냐”라는 발언으로 BTS 병역특례를 주장한 바 있다.
전용기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14명은 대중문화예술 우수자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인정해 추천한 사람에게 기존 대학생과 같은 수준으로 징집 및 소집 연기가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BTS 병역 특례와 관련해 찬성 기류가 점점 늘어나는 모습이다. 여권 내에서 BTS 병역 혜택 찬성론 대표주자 격으로 꼽히는 인사는 박형준 부산시장이다. 8월 18일 박 시장은 “부산이 절박하다”면서 BTS 병역특례 적용을 대통령실에 직접 건의했다.
부산의 절박함과 BTS 병역 사이엔 묘한 연결고리가 있다. 부산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든 가운데,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시는 군 복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2030 엑스포 유치 글로벌 홍보대사로 임명된 BTS가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유치활동에 나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이 전격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BTS 병역특례를 건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8월 18일 부산시에 따르면 박 시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엑스포 유치전에서 세계 최정상 그룹인 BTS가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펼친다면 상상 이상의 큰 힘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고심 끝에 대통령실에 (대체복무 관련 내용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2030 부산 엑스포 개최야말로 절체절명의 과제”라면서 “BTS에게 군 면제 특혜를 주자는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BTS가 대체복무 제도를 적용받게 되면 BTS 멤버들은 군 복무 못지않은 국가적 책임감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병역 의무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을 위한 충심으로, 부산의 미래를 위한 진심으로 2030 부산 엑스포 성공 유치를 열망하는 부산시민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선 이종섭 장관의 유의미한 태도 변화가 박 시장 공식 제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부산시가 유치에 도전한 엑스포는 등록 박람회다. 6개월 동안 개최가 가능하며 방문객 규모는 약 4000만 명 수준으로 약 61조 원 규모 경제적 효과가 있는 행사로 알려져 있다. 월드컵과 올림픽보다 경제적 효과가 높은 대형 이벤트다.
대한민국은 두 차례 엑스포를 개최한 적이 있다. 1993년 대전 엑스포와 2012년 여수 엑스포다. 그러나 대전과 여수 엑스포 등록 박람회가 아닌 인정 박람회로 개최됐다. 사실상 부산이 국내 최초로 등록 박람회 개최를 노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등 유력 인사를 총동원해 엑스포 유치를 추진하는 올인 기조가 나타나고 있다.
BTS는 7월 19일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엑스포 유치 홍보대사 중 1선발로 꼽히는 BTS에 병역특례라는 날개를 달아 엑스포 유치전에 추진 동력을 더하려는 게 박형준 시장과 부산시의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 7월 19일 행사엔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성민 대통령실 정책조정기획관이 참석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BTS를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하기 위해 2021년부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산이 고향인 멤버 지민과 정국의 부모를 직접 만나 설득한 일화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박 시장과 함께 BTS 멤버 부모님을 설득한 인물로는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첫 손에 꼽힌다. 그는 현재 대통령실 기획비서관으로 재임 중이다. 대통령실과 부산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로 통한다.
BTS 병역특례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도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여야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BTS 병역특례 추진에 대한 상당한 논의가 진전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BTS 병역특례 관련 내용에 대한 공식 발표를 대통령실에서 심도 있게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임기 초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세를 보이면서 관련 발표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가중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런 계획이 무산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연예계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된다. 6월 그룹 활동 잠정중단을 선언한 BTS 멤버별 활동 계획을 논의하는 회의가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BTS가 그룹 활동을 중단한 지 두 달 만에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대사로 등장했다”면서 “BTS가 그룹 활동을 중단한 가장 큰 이유가 병역인데, 정부 측과 해당 이슈에 대해 어느 정도 교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국회 국방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종섭 장관이 BTS 병역 관련 여론조사를 언급한 것은 그간 이 장관의 강경한 태도에 비춰 봤을 때 정부 차원에서 어떤 시그널이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면서 “여기에 여야가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도 정치적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요소”라고 했다.
하지만 여권에선 여전히 회의적 시선도 나오긴 한다. 국민의힘 내부 관계자는 “국민의힘 지지기반인 2030 남성들은 BTS 병역 혜택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다”면서 “정부와 여당 중심으로 BTS 병역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지면 집토끼를 놓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업체 조원씨앤아이는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9월 4일 전국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9월 5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BTS가 병역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4.1%로 과반이었다. BTS에게 특례 혜택을 줘야 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40.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