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경쟁력보다 별점 등 온라인 평가 중요성 커져…복합쇼핑몰·비대면 소비 득세로 소규모 상가 타격
과거에는 장사를 잘하려면 좋은 목을 찾는 게 중요했다. 입지 경쟁력이 성공의 핵심 요소였다. 그래서 부동산은 첫 번째도 입지, 두 번째도 입지, 세 번째도 입지라고 했다. 대로변 코너 자리 상가는 3대가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이런 스토리는 스마트폰 등장 이전의 상권 패러다임이다. 요즘 배달 주문이 많은 가게는 배달앱 상단에 노출되는지 여부가 가게의 성패를 좌우한다. 대로변이나 코너 같은 오프라인 입지보다 모바일 입지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요즘은 1인분 삼겹살도 배달로 사 먹는 시대니 오죽하랴.
가게 주인들은 모바일이나 인터넷에서 입소문이나 별점(별 개수로 매겨지는 점수)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악의적으로 별점을 낮추는 ‘별점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는 게 현실이다. 아예 아르바이트를 사서 별점을 올리는 작업도 벌인다. 2030세대는 음식이 나오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고 나서 먹는다. SNS를 통해 소비 경험의 실시간 공유를 즐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음식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맛도 있어야 하지만 시각적으로 돋보여야 한다. 요즘 음식점 사장들은 어떻게 하면 사진으로 잘 찍힐까 음식 배치, 실내 디자인, 조명 장식 등을 궁리할 수밖에 없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보고 고객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입소문 마케팅’ 못지않게 ‘비주얼 마케팅’이 중요해졌다.
이면도로에 위치하더라도 가게 분위기가 독특하고 맛이 있으면 고객이 모바일 앱 지도나 내비게이션을 보고 찾아온다. 요즘은 비싼 월세를 주고 대로변을 찾을 필요를 덜 느낀다. 충무로의 한 음식점 주인은 “과거는 지역을 먼저 찾고 음식점을 골랐다면 요즘 2030세대 사이에선 오로지 음식점에 초점을 맞추고 찾아가는 문화”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특색 있는 가게들이 골목 곳곳에 들어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모바일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상권도 소용돌이치고 있다. 장소와 공간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확 달라지고 있다.
요즘 지방에서는 5일장이 열려도 과거처럼 북적이지 않는다. 인구가 크게 준 데다 할인매장이 속속 들어섰기 때문이다. 5일장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상설 할인매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산다. 하지만 모든 할인매장 영업이 잘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 할인매장이 들어서면서 경쟁에 밀린 중소 할인매장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 인구 3만 명의 한 지방은 10년 전만 해도 5개의 할인매장이 있었으나 중소 할인매장은 사라지고 대형만 2개 남았다. 서울 동작구의 태평백화점이 최근 대형 백화점과 경쟁에 밀려 폐점하거나 재래시장이 점차 사라지는 현상과 맥락이 닿는다. 상권은 나눠 먹기보다 독식하는 구조다.
상가는 레드 오션으로 접어들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복합쇼핑몰은 인기를 끌고 있다. 복합쇼핑몰은 쇼핑·외식·문화체험 등의 활동을 한 장소에서 동시에 소비하는 곳으로 신세계의 스타필드나 롯데의 롯데몰이 대표적이다. 복합쇼핑몰에 사람들이 몰리면 다른 점포에는 그만큼 발길이 줄어든다. 앞으로 상가는 잘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이다. 사라지는 점포는 주로 개인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상가라는 점은 개인 투자자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상가들이 되살아날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듯하다. 서울연구원의 설문조사(2020년 5월)에 따르면 비대면 소비 경험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비대면 소비를 하겠다는 응답이 80.1%에 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더라도 오프라인 소비가 모바일(온라인) 소비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비의 대세 흐름은 비대면이다. 상가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물건을 살 인구가 많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과 급격한 고령화는 상가에 치명적이다. 자녀를 키워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지출은 어린 자녀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없으면 돈 쓸 일도 줄어든다. 상가를 사서 ‘따박따박’ 월세를 받겠다는 로망은 이제 구시대적 투자방식이 될 것이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