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분할시 자사주에도 신주 배정 방식 대주주 지배력 강화…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시켜
우리나라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재무상태표의 자본이 감소되고 자기자본이익률(ROE)도 증가하지만 총주식발행수와 시가총액, 주당순이익(EPS)은 변함이 없다. 자사주를 소각해야 비로소 총주식발행수, 시가총액이 감소하고 EPS는 증가한다.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대체로 재무상태표를 직접 보기보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시가총액을 참고하므로 결국 자사주를 매입할 때는 변화가 없고 소각해야 감소하는 것을 보면서 주주환원이 됐음을 인식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하는 순간 재무상태표의 자본이 감소하고 ROE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총주식발행수, 시가총액이 감소하고 EPS는 증가한다. 자사주 소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아무런 변화도 가져 오지 않는다. 따라서 자사주 매입시에 즉시 주주환원으로 인식된다.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순간 총주식발행수, 시가총액, EPS를 기록하므로, 같은 주식을 두고 한국의 HTS와 외국인의 데이터 간 지표가 달라진다.
예컨대 조광피혁은 자사주가 무려 46%에 이르는데, 우리의 HTS에 보면 총주식발행수 664만 9138주, 시가총액 3022억 원으로 돼 있지만, S&P 캐피탈 아이큐(Capital IQ)를 보면 총주식발행수(outstanding shares) 3.6million(360만 주), 시가총액(market cap) 122.4million(약 1600억 원)으로 기록돼 있다.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우리 상장기업의 재무지표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자사주 매입, 소각 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희한한 방식이다. 왜 이런 식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져 왜곡된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걸까.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사주를 마치 정상적인 주식인 것처럼 간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사주를 이용해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는 자사주에 대해서 신주배정을 허용하는 것과 자사주를 백기사에게 처분해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모두 자사주를 마치 자산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소위 ‘자사주의 마법’은 회사를 인적 분할할 때 자사주가 있으면 그 자사주에도 신주배정을 하는 방법으로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인데, 이때 자사주에 신주배정을 하려면 마치 살아 있는 주식처럼 취급해야 한다(소위 자사주의 본질에 관한 ‘자산설’). 총주식발행수에서 차감해 버리면 신주배정이 불가능해진다. 위와 같이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면 일반주주의 권리가 침해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외국인들의 시각에서 자사주는 이미 총주식발행수에서 감소돼 사라져 버린 주식인데 갑자기 신주배정을 하는 자사주의 마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거래며,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희한한 거래를 더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 금지, 자사주 의무소각, 배정된 신주의 의결권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 9건이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입법에 실패했다. 국회는 시급히 이 법안들을 의결해 주주권리를 보호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야 한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 지배구조 분야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 회장은 1992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36기(2005~2006년)로 수료한 변호사다. 금융감독원(2014~2015년), 트리니티자산운용(2016년), 스카이자산운용(2017년) 등에서 고문을 역임했다. 이후 수림자산운용(2018년), KSA법무법인(2019~2020년)을 거쳐 현재 싱가포르 헤지펀드 터너리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