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3개월 내 재가동”이라지만 현장서는 “후공정 소생 불가”…자동차·조선업계 등 “일단 확보 물량 쓰지만…”
#포스코 침수피해 장기화 전망
지난 9월 6일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시 남구에 있는 포항제철소가 침수됐다. 포항제철소는 힌남노가 몰고 온 최대 500mm의 기록적인 폭우와 제철소 인근 하천인 냉천의 범람으로 공장 설비가 침수와 정전 피해를 입으며 셧다운됐다. 특히 후공정을 하는 압연공장이 냉천과 가까운 탓에 진흙과 물이 뒤섞인 뻘물에 심각한 침수 피해를 입었다.
9월 16일 포스코 측은 9월 10~12일 3개 고로를 모두 정상화한 데 이어 15일 쇳물의 성분을 조정하고 고체 형태의 반제품(슬래브 등)으로 생산하는 제강과 연주 공장도 모두 복구를 마쳤다고 밝혔다. 이어 3개월 내 단계적으로 압연공장 대부분을 재가동할 전망이다. 다만 포스코 측은 압연지역 지하시설물에 대한 뻘 제거 등 복구작업이 아직 진행되고 있어 공장별 정확한 재가동 시점과 구체적인 피해 내역, 규모 등은 아직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의 생산 공정은 쇳물을 만드는 제선공정과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반제품을 만드는 제강공정, 액체상태의 철을 고체로 만드는 연주공정, 그리고 제강공정에서 만들어진 원료에 가공·변형을 거치는 압연공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포항제철소는 후공정인 압연공장의 침수 피해가 심해 완제품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후공정을 할 수 없는 까닭에 현재 포항제철소 내부에서는 제강에서 슬래브가 나오면 광양제철소로 보내고 제선에서 쇳물이 나와도 일정량씩 바닥에 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완제품 생산라인 중단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예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점이다.
이와 관련, 포스코 한 직원은 “후공정 쪽은 단연코 소생 불가다. 자동차로 비유해보자면 침수차다. 지대가 낮은 공장 지하 설비들도 전부 침수됐는데 설비들이 워터프루프(방수)도 아니고 물 먹은 설비를 어떻게 사용하겠느냐”며 “회사에서는 복구에 3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현장 의견이다. 복구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그 시간을 소요할 바에는 차라리 공장을 다시 짓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일단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포스코 한 관계자는 “16일 중으로 압연라인 배수가 완전히 끝난다. 진흙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최대한 빨리 복구하려는 기조를 잡고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복구 길어지면 산업계 타격 불가피
포스코는 2021년 연결기준 매출 76조 3320억 원, 영업이익 9조 2380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올해는 내수·친환경 제품 판매를 확대해 안정적 수익을 창출해 나가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2022년 상반기에 접어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값이 폭등하고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수요가 감소하는 등 철강경기 불안이 지속되면서 포스코의 수익도 덩달아 악화했다. 여기에 제철소까지 침수 피해를 입으며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수해에 따른 피해로 170만 톤의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포스크는 추산하고 있다. 다만 포스코 측은 광양제철소 생산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재고 소진을 통해 제품판매 감소량을 97만 톤 수준으로 최소화할 계획이다. 이에 따른 매출액 감소는 지난해 연결 매출액의 2.7% 수준인 2조 400억 원으로 전망된다.
포스코는 천재지변에 대비해 건물, 기계장치 등 유형자산에 대한 보험을 들어뒀다고 밝혔으나 침수된 설비들을 교체하고 복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생산설비 취득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대규모 유형자산 취득에 따른 감가상각비 부담을 상쇄하려면 매출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완제품 생산라인 회복까지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경우 고객사들이 이탈해 매출 회복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포항제철소 출하 중단이 산업계 전반에 미칠 여파다. 철강산업은 자동차·조선·토목건축·선박·전기전자·에너지·물류산업 등 다양한 전·후방 산업의 중간다리 역할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국가 기간산업이다. 포스코 반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포스코가 2021년에 판매한 3550만 톤의 철강 제품 중 내수용 제품 판매 비중은 약 60%다. 포스코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51.2%에 달한다.
이미 ‘포스코플레이션(Posco+Inflation)’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포스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주요 원자재 가격상승 등을 감안해 철강 공급가격을 인상한 가운데 공장 출하 중단으로 제품 가격의 추가 인상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에서 공급하는 열연제품 가격은 2021년 톤당 97만 원에서 2022년 상반기에 톤당 120만 4000원으로 냉연제품은 2021년 톤당 103만 5000원에서 134만 3000원으로 오른 상황이다.
특히 자동차 부품에 들어가는 선재와 스테인리스 스틸, 전기차용 모터에 들어가는 전기강판은 국내에서 포항제철소만 만들고 있어 수급 불안정 위기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미리 구입해 둔 재고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영향이 없으리라 보지만 장기화할 경우 제품 수급에 문제가 생길 우려는 있다”며 “수급처를 다변화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도 마찬가지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 선박 만들 때 필요한 물량은 어느 정도 미리 확보해두기 때문에 당장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얼마나 장기화될지 몰라 예의주시 중”이라며 “포스코뿐만 아니라 현대제철도 있고 해외에서도 일부 가져오는 물량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조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하공정을 담당하는 기업들 역시 포항제철소 침수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철강제품 생산과정은 크게 철강 등을 녹여서 쇳물을 뽑아내 순수한 철을 만들어내는 상공정과 쓰인 철을 다시 녹여 새로운 철이나 철근을 만드는 하공정으로 나뉜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공정은 소수 대기업이 과점 중인 가운데 제품별로 세분화되어 있는 하공정에는 다수의 업체가 영업 중이다.
하공정 업계 한 관계자는 “압연라인이 정상적으로 가동을 안 하면 포스코 제철소로부터 나오는 전기강판, 연기강판, 선재료 등 상공정 제품들이 시장에 돌지 않게 된다. 현대제철과 포스코의 광양제철소에서 나오는 물량만으로 커버가 된다면 좋겠지만 커버가 불가능한 품목도 있어 셧다운이 장기화하면 철강소재의 안정적인 공급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크다”며 “제철소 침수 피해 복구가 늦어질수록 산업계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