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 유포 벌금형’ 결격사유 안돼 역무원 취업…스토킹 결심 공판 후 범행 결심, 선고 하루 전 살해
전주환은 서울의 한 유명 대학을 졸업했으며 2016년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실무 수습 과정을 밟지 않아 최종 자격은 얻지 못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해 2021년 10월까지 3년가량 불광역 역무원으로 근무했다. 알려진 것처럼 전주환은 입사 동기였던 피해 역무원 A 씨가 2021년 10월 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 강요) 혐의로 고소하면서 서울교통공사에서 직위해제됐다.
전주환의 대학 동기는 그를 ‘그런 범죄를 저지를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평범한 친구’였다고 밝혔다.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전주환의 대학 동기는 “쿨한 성격에 교우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나쁜 소문이 돈 적도 없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느 학교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친구”라며 “여자와 만나거나 사귀는 것에 대해 들은 적은 없지만 여자 동기들과 갈등은 없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주환은 평범한 대학시절을 보냈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할 만큼 학업에도 열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전주환에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또 다른 모습도 있었다. 그에게 전과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 그는 2018년 음란물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두 차례 처벌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운전자 폭행 사건으로 경찰에 입건된 적도 있다.
정보통신망법의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2018년이 전주환에게 최악의 한 해가 된 것만은 아니다. 2018년 12월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사 당시 범죄 전력이 있었음에도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의 결격사유 조회에 걸리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 부분은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참석한 9월 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이 자리에서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본적지를 통해 확인했는데 특이사실이 없었다”고 답변했다. 실제 서울교통공사는 2018년 12월 채용에 앞서 11월 수원 장안구청에 결격사유 조회를 요청했고, 구청은 수형·후견·파산 선고 등에 대한 기록을 확인한 뒤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회신했다. 이에 따라 12월 정상적으로 입사가 이뤄졌다.
서울교통공사 인사 규정 제17조는 결격사유를 ‘피성년·피한정후견인, 파산 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경우,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뒤 5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등을 정해두고 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전주환은 결격사유 조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나마 전주환이 입사한 이후인 2021년 5월부터는 결격사유에 성범죄가 포함됐지만 전주환은 여기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음란물 유포 행위는 디지털 성범죄로 구분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한 전주환은 피해 역무원 A 씨와 입사 동기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어느 정도의 친분만 쌓고 지냈는데 1년가량 지난 뒤인 2019년 11월부터 전주환의 스토킹이 시작됐다. 300차례가 넘는 전화와 메시지를 통해 A 씨에게 만남을 요구했다. 2021년 하반기 들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전주환이 A 씨에게 ‘A 씨 관련 영상을 유출하겠다’는 협박을 하기 시작한 것. A 씨가 연락을 받지 않자 전주환은 10개 이상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만들어 연락을 시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결국 A 씨는 경찰 상담을 받고 2021년 10월 7일 전주환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 강요)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경찰은 전주환에 대한 수사 개시를 서울교통공사에 통보했고, 이로 인해 10월 13일 전주환은 직위해제된다.
그 후 전주환의 모습이 크게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의 전주환 거주지 인근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다룬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부터 전주환은 부쩍 술에 의존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시점 상 서울교통공사 직위해제 즈음이다. “3~4년 전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당시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처음엔 머리에 왁스 같은 것도 바르고 단정했다” 등 인근 주민 반응은 전주환을 “평범한 학생”으로 기억하는 대학 동기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2021년 하반기 상황에 대해 인근 가게 직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소주와 맥주를 함께 사 갔다. 걸음걸이만 봐도 취한 게 분명했고, 술 냄새도 심하게 풍겼다”고 기억했고, 또 다른 주민은 “점점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녔다”고 말했다. 심지어 2021년 11월에는 경찰과 소방당국이 전주환 집 문을 강제 개방하고 들어가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전주환 부친의 신고 때문이었는데 당시 전주환은 방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고 한다.
2021년 10월 7일 피해 역무원 A 씨가 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음에도 전 씨는 문자 메시지 등을 이용한 스토킹을 계속했고 결국 A 씨는 2022년 1월 27일 전주환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다시 고소했다.
이 두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은 2022년 2월과 6월에 각각 기소했고, 이 두 사건이 병합된 재판이 서울서부지법에서 계속돼 8월 18일 결심 공판에서 검찰의 징역 9년 구형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즈음 전주환은 범행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주환이) 징역 9년이라는 중형을 받게 된 게 다 피해자 탓이라는 원망에 사무쳐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우선 전주환은 결심 공판이 열린 8월 18일과 9월 3일과 14일(2회) 등 4차례에 걸쳐 서울교통공사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주소를 거듭 확인했다. 그렇지만 이는 피해자가 이사 가기 전 옛집 주소였다. 이를 미처 몰랐던 전주환은 9월 5일, 9일, 13일, 14일(2회) 등 모두 5차례 옛집 근처를 찾았다.
9월 14일에는 서울교통공사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두 번이나 피해자 주소를 거듭 확인했고 두 번이나 직접 옛집 부근을 찾았다. 그럼에도 피해자를 만나지 못하자 오후 6시 서울 지하철 6호선 구산역 ‘고객안전실’을 찾아 자신을 불광역 직원이라고 소개한 뒤 서울교통공사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현재 근무지와 근무 일정 등을 파악했다.
2시간 뒤인 밤 8시 무렵 신당역에 도착한 전주환은 1시간 넘게 신당역 여자 화장실 인근을 배회하다 8시 56분 즈음 피해자 A 씨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 뒤따라 들어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9월 14일은 선고공판이 예정된 9월 15일 바로 전날이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