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과 ‘던지기’ 보편화로 아무나 구입…대형 클럽은 암암리에, 소규모 클럽은 대놓고 거래
최근 급증하는 마약 사건을 놓고 수사당국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내놓는 반응이다. 과거 일부 연예인이나 강남 부잣집 자제들의 일탈 정도로 국한됐던 것이 이제는 ‘보통 사람’들에게 전파됐다는 얘기다.
마약 판매의 본거지 중 하나인 강남 클럽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마약을 판매하지 않으면 영업이 어렵고, 마약을 판매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더 이상 마약 청정국 아니다
올해 4월, 경찰은 한 남성이 마약을 구입해 투약한 의혹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해당 남성은 지난 1월 온라인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판매업자에게 필로폰 0.5g을 구매·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 남성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재직 중인 인물이었다는 점.
마약 구매는 전형적인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텔레그램으로 판매업자와 접촉해 돈을 지급하면 판매업자가 약속된 장소에 필로폰을 숨겨두고 떠나고 구매자는 이를 가져가는 방식인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었다. 텔레그램을 사용한 던지기 수법은 마약 판매자와 구매자가 자신의 신원을 감추는 데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결국 검거됐고, 서울동부지검은 이 남성을 6월 30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초범이었던 점 등을 고려한 것인데, 청와대 직원이었던 그는 비슷한 시기에 ‘일신상의 이유’로 청와대를 그만뒀다.
이 사건을 놓고 정치권에서 다양한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마약의 보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마초 등보다 강력한 필로폰을 청와대 행정관이 하다가 적발됐다는 사실을 놓고 “구매가 쉬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는 비판이 나온다.
마약 사건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과거 마약은 판매자가 연예인이나 유학생 등 특정 대상에게 암암리에 공급하다 보니 불특정 다수가 구매하는 경우가 드물었다면, 이제는 텔레그램과 던지기 수법이 보편화되면서 아무나 구입할 수 있는 게 됐다”고 지적했다.
수사당국 통계를 보면 드러난다. 통상 10만 명당 마약 사범이 20명 이하여야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의 마약사범 수는 1만 6153명으로 10만 명당 31.3명에 해당한다.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약 사범은 2012년 9200여 명에서 2020년 1만 8000여 명으로 8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10대~30대의 마약 사범 비중이 높아진 것도 특징이다. 10대 마약 사범은 지난 2017년 119명에서 지난해 450명으로 4년 만에 3.8배, 20대 마약 사범은 2112명에서 5077명으로 2.4배 각각 늘었다. 10대부터 30대까지가 마약 사범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다. 특히 10대 마약사범의 증가세는 모든 마약 사범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직업별로는 학생과 회사원이 최근 5년 동안 각 5배와 2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거꾸로 40대와 50대의 마약 사범은 같은 기간 줄어들었다.
#"양형 약한 게 문제 아닌가 싶기도"
더 큰 문제는 버닝썬 사태 등으로 잠시 주춤했던 마약들이 강남 클럽 일대를 중심으로 버젓이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앞선 7월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유흥주점에서는 술을 마신 30대 여종업원과 동석했던 손님 중 1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망한 손님의 차 안에서는 무려 2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이 발견되기도 했다.
강남 유흥업소 일대에서는 ‘암암리에 이뤄지는 거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남의 한 클럽 대표는 “강남 클럽에서는 12시부터 2~3시까지 노는 1차 대형 클럽과 2~3시부터 5~6시까지 노는 2차 소규모 클럽으로 시장이 나뉘는데 2차 클럽들의 경우 ‘약을 구할 수 있느냐’ 여부를 놓고 매출이 판가름 난다”며 “1차 클럽은 암암리에 약을 파는 MD(영업직원)들을 허가한 것이라면 2차 클럽들 중에는 약을 대놓고 공급하는 곳이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클럽들마다 거래하는 장소도 특정됐다고 한다. ‘화장실 앞’처럼 아예 약을 공급하는 약속된 장소가 있다는 설명이다.
클럽 대표는 “버닝썬 사태 때처럼 MD들이 약을 공급하곤 하는데, VIP들은 룸 안에서 거래를 하고 보통 고객들은 폐쇄회로(CC)TV에 잘 잡히지 않는 화장실 앞에서 약을 주고받는다”며 “곧바로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약을 하고 나오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거래를 하면 공급자와 구매자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일부 클럽들은 VIP 고객의 경우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선호하는 약을 준비해놓을 정도로 영업에 적극적”이라며 “강남에서 마약 유통은 버닝썬 사태 2년여 만에 다시 ‘당연한 문화’가 됐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젊은층의 해외 경험 확대와 SNS(소셜미디어)와 암호화폐(가상화폐)를 이용한 음성적인 거래 시장 등장,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에 따른 우울감 증가 등을 마약 열풍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경각심 없이 자유롭게 거래되는 대마초를 경험한 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약을 찾는다는 것이다.
앞선 검사는 “과거에는 마약 사범들 대다수가 유흥업소나 조직폭력배와 연관된 인물이었고,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이 공급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보통 사람들,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 등이 검거되는 경우가 많다”며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공간 모두에서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호기심에 마약을 해보거나 친구의 손에 이끌려 경험해 본 이들이 큰 두려움 없이 다시 마약을 찾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초범의 경우 처벌이 약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방조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련 사건 경험이 많은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다수 마약 사건이 젊은 친구들이 호기심에 손을 대면서 비롯된다고 본다. 특히 대마초처럼 비교적 중독성이 약한 케이스의 경우 초범인 피고인이 반성하는 게 확인되면 아예 선고를 유예하고 검찰은 기소를 하지 않기도 한다”며 “이들 가운데 다시 마약을 하다가 걸려서 또 기소된 이들에 대해서만 실형이 선고되는데 가끔은 양형이 약한 게 되레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