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P “쓴 만큼 내야” vs CP “인터넷 생태계 관행”…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두고도 기싸움
#망 사용료 논쟁 격화
지난 9월 29일 전세계 최대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가 돌연 한국 거주 시청자가 수신하는 생방송 최대 화질을 720p로 조정하겠다고 공지했다. 트위치는 화질 제한 이유와 관련해 “한국의 현지 규정과 요건을 지속적으로 준수해왔으며 모든 네트워크 요금 및 기타 관련 비용을 성실하게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의 서비스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 대안적인 해결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최근 망 사용료 논쟁과 관련해 인터넷 서비스 제공 사업자(ISP)인 통신사와 유튜브, 넷플릭스 등 콘텐츠 사업자(CP)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트위치가 선제적으로 서비스 품질을 제한해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부사장도 지난 9월 20일 유튜브 공식 블로그에 “망 사용료는 CP와 국내 창작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면서 ISP만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망 사용료와 관련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2월 법안을 발의한 이후로 총 7건의 관련 법안이 계류된 상태다. 해당 법안들은 ‘망 사용료’를 놓고 벌어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소송에서 촉발됐다.
망 사용료 논쟁은 오랜 논란거리다. 하지만 찬성과 반대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박경신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는 9월 20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CP들이 통신사에 내는 비용은 일반 가입자도 내고 있는 인터넷 접속료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 비용을 따로 내지 않는 것은 본사가 있는 국가에 이미 인터넷 접속료를 납부하기 때문이다. 인터넷망은 아무리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용자라 할지라도 평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일일이 망 사용료를 정산해 주고받게 되면 전세계에 깔린 인터넷망을 통해 비용 걱정 없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선순환이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도준호 한국방송학회장은 “문제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너무 큰 동영상 트래픽을 보내기 시작하는 바람에 모든 이용자들의 인터넷 속도가 느려진다는 점이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트래픽이 많아진 것 때문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서 망을 증설해야 하는 만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상황’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밥값 내’ vs ‘윈윈이잖아’
망 사용료 관련 재판 1심에서는 넷플릭스가 패소했다. 항소심을 앞두고 양측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한 관계자는 “인터넷은 공짜가 아니고 원래도 지금까지 계속 망 사용료를 정산해왔다. 인터넷 네트워크도 회선을 깔아야 하는 만큼, 당연히 투자가 이뤄지고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걸 공짜로 무한대로 쓸 수 없는 게 당연한데 협상력이 국내 CP보다 월등히 높은 구글과 넷플릭스 두 사업자가 우리는 트래픽이 너무 많으니까 못 내겠다고 하면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트래픽을 처리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트랜짓과 피어링으로 나뉜다. 트랜짓은 CP가 특정 ISP한테 비용을 지불하면 해당 ISP가 이용자에게 트래픽을 전송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모든 인터넷 이용자가 공평하게 그 트래픽을 받아볼 수 있게 된다. 대신 일 대 다의 구조를 띠기에 비용 부담이 커지고 품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CP가 각각의 ISP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고 전용회선을 통해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한 방식이 피어링이다. 예컨대 네이버가 KT와 피어링 방식으로 계약하면 KT회선을 이용하는 고객한테까지만 네이버의 트래픽을 전송할 수 있게 된다.
앞서의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저희도 피어링 방식에 의해 넷플릭스와 직연동된 전용회선을 통해 서비스했기 때문에 비용지불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트랜짓 방식만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어서 우리가 같은 회선에 이중 과금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내는 게 원칙인데 그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생기니까 한국이 세계 최초로 법안을 만들어서 강제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넷플릭스 측은 “넷플릭스는 불필요한 국제회선 비용 없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오픈 커넥트(OCA)를 무상으로 제공해 ISP들과 직접 연결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저희가 제공한 OCA를 통한 직접 연결 방식 덕분에 자신보다 큰 규모의 ISP에 지급해야 했던 트랜짓 비용을 아끼고 넷플릭스 콘텐츠 역시 더 원활하게 전송할 수 있게 되어 2016년 계약 당시 비용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서로의 이득을 위해 직접 연결하기 때문에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인터넷 생태계의 관행이다. 넷플릭스는 현재 전세계 7200개가 넘는 ISP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중, SK브로드밴드를 제외하고는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ISP는 단 한 곳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와 국내 통신사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국내 일부 중소업체들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입법에 반대하고 나섰다. 코리아 스타트업포럼의 최성진 대표는 “통신사 입장에서는 글로벌 CP들이 ‘갑질’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저희 같은 국내 CP 입장에서는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통신 3사가 훨씬 우월적인 위치다. 통신사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법안을 입안할 경우 현재의 높은 망 비용이 유지되거나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이런 환경을 먼저 들여다보고 불공정과 불합리를 시정해 망 사용료의 적정가를 산출하는 게 순서지, 통신사 협상력을 높여주는 법안부터 만드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