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뱅크+커트 럼, 야마자키+오켄토션…수입사·도매상 ‘재고 떨이’에 영세 바 울며 겨자먹기
한 위스키 싱글몰트 바를 운영하는 A 씨의 말이다. 최근 위스키 열풍이 대란 급으로 번지고 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중장년층까지 단일 증류소 위스키, 싱글몰트 위스키 바람에 올라탔다. 네이버 위스키 관련 카페 가운데 가장 가입자가 많은 ‘위스키 코냑’ 카페의 경우 가입자가 2020년 약 1만 명 후반대에서 약 2년 만인 현재 7만 명 초반까지 4배 넘게 폭증했다.
최근 이런 열풍 탓에 몇몇 위스키 상품의 경우 해당 상품을 사려면 다른 위스키를 강제로 더 사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인기 품목을 사기 위해 강제로 사는 술을 흔히 '인질'이라고 부른다. 해가 갈수록 인질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인기 품목이 더 강해지는 이유는 결국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번 열풍의 중심은 단연 싱글몰트다. 과거 위스키는 블렌디드에 집중됐다. 몇 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 후 면세점에서 많이 사던 고급 위스키인 ‘발렌타인’ 30년, ‘로얄 살루트’ 32년, ‘조니워커 블루라벨’ 등이 블렌디드 위스키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여러 증류소에서 만든 원액을 섞어 만들고 대체로 몰트가 아닌 그보다 아랫급으로 여겨지는 그레인 위스키도 들어간다. 커피 원두로 보면 블렌디드(혼합) 원두인 셈이다.
반면 최근 뜨고 있는 싱글몰트는 커피 원두로 보면 싱글 오리진(단일 원산지)이다. 단일(싱글) 증류소 원액만 쓴다. 두 방식 차이도 위스키와 커피가 비슷하다. 싱글 오리진 방식에서 원두 특색이나 강점을 더 확연하게 맛볼 수 있는 것처럼 위스키도 싱글몰트에서 해당 증류소의 특징을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싱글몰트의 경우 생산량이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블렌디드는 여러 증류소 원액을 섞다 보니 한 증류소 생산량이 부족하면 다른 원액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반면 싱글몰트는 원액이 부족하면 증류소 생산시설을 증설하더라도 바로 공급할 수 없다. 최소 숙성 기간이 3년이고 상품으로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숙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질을 붙일 수 있는 건 압도적으로 수요가 몰리는 술(바틀)에 한해서다. 이런 술에 수입사, 도매상이 인질을 붙여도 싱글몰트 바 혹은 주류 판매 업장에서는 결국 사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인질을 붙이고 있는 술은 ‘맥캘란’, ‘스프링뱅크’ 등 스카치위스키와 ‘야마자키’, ‘히비키’ 등 재패니즈 위스키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들 위스키는 인질을 같이 사지 않으면 술을 받을 수 없다.
또 다른 싱글몰트 바를 운영하는 B 씨는 위스키 업계는 수입사의 영업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 하소연했다. B 씨는 “보통 영업직원이라고 생각하는 ‘을’ 이미지와 달리 몇몇 인기 품목 수입사 영업직원 같은 경우 철저히 ‘갑’ 입장이다. 다른 업계에서 위스키 업계로 이직해 온 직원의 경우 ‘자신도 이런 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놀랄 정도다”라고 말했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각 위스키에 따른 인질은 다음과 같다.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스키로 꼽히는 맥캘란의 인질은 옐로우로즈다. 옐로우로즈는 몇 가지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 버번이 아닌 아메리칸 위스키다. 옐로우로즈는 현재 지나치게 달기만 하다는 평이 많으며 소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진 않다. 맥캘란 12년 12병, 맥캘란 셰리 18년 6병, ‘클래식컷’ 2022년 2병을 받기 위해서는 인질로 옐로우로즈 24병, 휘슬피그 24병을 받아야 한다. 휘슬피그는 평이 나쁜 위스키는 아니다. 다만 휘슬피그가 맥캘란 수입사에서 다른 수입사로 교체되면서 재고 처리를 위해 인질로 묶었다는 평가다.
맥캘란 혹은 그 이상으로 구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위스키 스프링뱅크도 역시 인질이 있다. 스프링뱅크 18년을 구하기 위해서는 ‘커트 럼’이란 럼을 종류별로 1병씩 총 3병을 사야 한다. 스프링뱅크보다는 덜하지만 물량 자체가 적었던 ‘롱로우’ 18년, ‘킬커란’ 16년을 사기 위해선 리뎀션 버번 위스키를 역시 종류별로 1병씩 3병 사야 한다. 리뎀션도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위스키는 아니다.
B 씨는 일본 위스키가 가장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B 씨는 “재패니즈 위스키의 경우 빔산토리코리아에서 수입하는데 이곳의 인질은 오켄토션이다. 오켄토션을 24병씩 꾸준히 받지 않으면 아예 배정받지 못한다. 꾸준히 오켄토션을 받다보면 야마자키 18년 등 중요 바틀을 배정받을 수 있다지만 이마저도 확정은 아니다. 국내에서 오켄토션 24병씩을 소화할 업장은 칵테일이나 하이볼을 엄청나게 파는 몇몇 매장이 아닌 경우 거의 없다. 영세업자 사이에서 야마자키는 꿈도 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버번 위스키 경우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가 대표적으로 인질 문화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곳 증류소 한정판은 버팔로 트레이스 앤틱 컬렉션(BATC)이라 불린다. 조지 T 스택 등 한정판을 받기 위해서는 엔트리급 위스키인 버팔로 트레이스를 일정량 이상 받아야 한다.
이런 인질 문화에 대해 수입사나 도매상 측은 흔히 ‘증류소나 본사에서 인질 품목을 끼워 팔고 가격을 올린다’는 얘기를 영세상인 측에 한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A 씨는 “사실과 다르다”는 견해를 보였다. A 씨는 “만약 버팔로 트레이스처럼 같은 증류소 상품을 인질로 잡을 경우 그럴 수 있다 치지만 맥캘란과 옐로우로즈는 아예 다른 증류소인데 수입사만 같을 뿐이다. 스프링뱅크와 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수입사가 자신의 재고 떨이를 위해 인기 품목을 이용한다고밖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요신문은 수입사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맥캘란을 수입하는 D 사는 답변이 없었다. 빔산토리코리아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D 사 측은 외부적으로 '끼워팔기는 금시초문이고 내부적으로도 금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라고 알려졌다.
이에 바를 운영하는 영세업자들은 “영업사원이 대놓고 전화나 문자로 인질 관련 내용을 보내오는 데다, 업계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인데 어떻게 인질 영업을 금시초문이라고 할 수 있는지 황당할 따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세업자들은 주류수입사의 '끼워팔기' 갑질 사례를 수집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는 아직 인질 관련 신고가 접수된 건 없지만, 시장조사를 통해 공정거래법 위반이 밝혀지면 시정조치에 들어가겠단 방침이라고 전해진다.
B 씨는 인질 제안은 거절하기도 어렵고 신고는 더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B 씨는 “인질 제안이 오면 거절도 쉽게 못한다. 거절하면 다음에는 제안도 못 받을까봐서다. 업계도 좁은데 신고는 꿈도 못 꾼다. 신고하면 암암리에 알려질 수밖에 없고 그럼 이 업종 운영 못한다. 인질 영업이 계속되는데도 공정위 신고가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