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소각에도 주가 하락, 헤지펀드 “최대 30% 자사주 매입을”…SK케미칼 “기업가치 제고에 집중”
#하락장에 주주친화정책도 무용지물
최근 SK케미칼에는 호재성 공시가 이어졌다. 9월 23일 SK케미칼 지분 34.83%를 보유한 최대주주 SK디스커버리는 SK케미칼 주식 91만 9118주를 주당 10만 8800원에 공개매수했다. SK디스커버리는 SK케미칼 지분 5.22%를 약 1000억 원에 추가로 매수하며 SK케미칼을 연결 자회사로 편입했다. SK케미칼이 보유한 SK바이오사이언스의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공개매수 가격 헐값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공개매수 신고 직전 시장 가격(9월 1일 종가 9만 4600원)보다 높은 가격에 공개매수가 이뤄져 시장에서는 SK케미칼 주가 상승을 이끌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9월 28일 SK케미칼은 자사주 38만 9489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약 500억 원 규모로 총 발행주식의 2.22% 수준이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주주친화정책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줄어 기존 주식 가치가 오르기 때문이다. 기업이 주가를 관리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는 효과도 있다.
앞서 7월 27일 SK케미칼은 보통주 1주당 400원, 총 76억 6709만 원의 중간 현금배당을 실시한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7일 회사는 “2022년부터 중간배당을 시행하고 매년 별도 당기순이익 기준 배당성향 30% 수준에서 배당총액을 결정하겠다”고 공시했다. 당시 SK케미칼은 보통주 1주당 0.5주를 배정하는 무상증자도 결정했다.
해당 공시가 있을 때마다 SK케미칼 주가는 반등했으나 전반적으로는 하락 추세에 있다. 주주친화정책을 발표한 지난해 10월 7일 SK케미칼 종가는 29만 1500원이었다. 그러나 주가는 올해 10월 11일 8만 700원으로 떨어졌다. 가장 최근 있었던 자사주 소각 효과도 미미했다. 자사주 소각 공시 다음 날인 9월 29일 9만 4900원에서 9만 5400원으로 소폭 오른 후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다.
SK케미칼 주가 하락에는 증시 침체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하락폭이다. 코스피 지수는 10월 12일 2202.47로 올해 1월 3일 대비 약 26% 하락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SK케미칼 주가는 46% 감소해 증시 탓만 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주친화정책이 역부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일부 주주 및 헤지펀드들은 자사주 추가 매입과 소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철홍 안다자산운용 ESG투자본부 대표는 “(총 보유주식 수의) 최소 5~10% 추가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다자산운용은 현재 SK케미칼의 0.5~0.6%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헤지펀드 메트리카파트너스 측도 일요신문에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환영한다”면서도 “주가 할인 감소를 위해선 자사주를 계속 매입해야 하는데, 30% 안팎의 자사주 매입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메트리카파트너스는 SK케미칼 지분을 갖고 있으나 지분율이 5% 미만이라 공시되지는 않았다. 다만 올해 8월 31일 기준 SK케미칼 주식 보유량을 지난해 9월 대비 7배가량 늘렸다고 밝혔다.
통상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규모가 클수록 주가 상승 여지도 크다. 올해 상반기까지 SK케미칼의 연결 기준 이익잉여금은 약 8308억 원이라 자사주 매입에 나설 여력도 있지만, 투자 재원이 줄어든다는 단점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사주 매입이 소각까지 이어진다면 주가 상승의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단기간에 (총 보유주식 수의 30%에 해당하는 규모의) 자금을 동원해 자사주 매입을 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어떻게 활용하나?
행동주의펀드는 무엇보다 SK케미칼이 보유한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처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메트리카파트너스 측은 “SK바이오사이언스 주가가 30만 원이 넘었을 때 SK케미칼이 보유한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팔라고 요구했으나, 회사는 응하지 않았고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 주가는 8만 원을 밑돈다”며 “회사는 최대한 빨리 (SK케미칼이 보유한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처분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안다자산운용 및 주주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또 “다음 주주총회에서 주주들과 권리를 주장하는 게 우리의 다음 단계”라고 말했다.
박철홍 대표도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처분해 배당 혹은 회사를 위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SK케미칼 자산인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다음 주주총회 때 1% 지분을 모아 정식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다. 끝까지 주주가치 실현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2018년 SK케미칼은 백신 사업을 물적 분할해 SK바이오사이언스를 분사했다. 지난해 SK바이오사이언스가 상장한 이후, SK케미칼 주가에 SK바이오사이언스의 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10월 12일 종가 기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시가총액은 5조 5976억 원, SK케미칼의 시가총액은 1조 4114억 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68.18%를 보유한 SK케미칼의 확보한 지분가치는 3조 8164억 원이다.
행동주의펀드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잔소리를 하는 시어머니가 더 생긴 셈이라 경영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표현했다. 행동주의펀드는 단기적인 수익 실현을 목적으로 할 수 있어 주주가치 실현에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도 있으나, 명분이 없진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물적분할로 이익을 침해했기 때문에 무리한 요구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 주주는 종목토론방을 통해 “물적분할로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시켜놓고 주주가치 제고에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SK케미칼 관계자는 “이중상장에 따른 여러 문제에 대해 고민은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하려 한다. 그러나 백신 사업부를 떼어낼 당시 백신 사업부는 핵심 사업부가 아니었고 수익이 부족해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화학과 제약 사업을 함께 영위하다 보니 시장에서 불명확한 정체성 지적도 잇따랐다. 이러한 흐름에서 계획을 밝혀왔던 대로 SK바이오사이언스 IPO(기업공개)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지금 시점에서 처분하면 주주와 회사 모두에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시장 상황이 안 좋은 데다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에 따라 SK바이오사이언스 시가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엔 SK케미칼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작용할 수 있다. 때문에 일단은 SK케미칼과 SK바이오사이언스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 집중하려 한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주주들과 소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