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꽃가마(삼성SDS)’에 비밀병기 장착
▲ 황태자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
삼성증권은 지난 2001년 3월 홍콩 현지법인을 처음으로 열었다. 그러다 2009년 8월, 현지 종합 IB(투자은행) 사업 확대를 위해 1억 달러를 증자하며 대대적으로 규모를 확대했다. 폭넓은 해외 진출과 글로벌 IB로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증권은 글로벌 시장에서 먹히는 ‘삼성’이라는 브랜드와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삼았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인재를 파격적인 연봉으로 영입하면서 국내 증권사로는 최대 규모로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홍콩법인을 확대하던 2009년 당시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고 한다. ‘삼성이란 명패를 과신하는 것 아니냐’, ‘위험 요인을 너무 많이 안고 간다’는 지적이었다. ‘하이 리턴’을 위해 ‘하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성공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삼성SDS 본사 건물 입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증권 홍콩법인의 상황이 실은 더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적자를 넘어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홍콩에 있는 사람들이 삼성증권을 이용할 만한 메리트가 거의 없다”며 “이런 마당에 고액 연봉 등 경비만 계속 나가다 보니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증권 관계자는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금이 워낙 많아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2009년 8월 증자 후 삼성증권 홍콩법인의 자본금은 1300억 원이다.
홍콩법인 실패의 충격은 삼성이기에 더하다. 삼성증권은 싱가포르 영업 인가 신청도 철회했다. 뉴욕과 런던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고 홍콩법인을 기회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 했던 ‘1등 삼성’의 계획과 이미지가 훼손된 것이다. 결국 영업 실패와 이미지 실추에 대한 책임을 박준현 사장에게 물은 것이다.
홍콩법인의 실패가 작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4년 동안 삼성증권을 이끌어온 수장을 하루아침에 낙마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삼성자산운용 홍콩법인도 지난해 상반기 5억 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의 손실액과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어쨌든 손실을 낸 김석 사장이 삼성증권 사장에 오른 것을 감안하면 홍콩법인의 실패만으로 박 사장을 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박 사장의 신변에 뭔가 또 다른 일이 생겼을 것이라는 얘기가 돈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재계에서는 장차 삼성이 지배구조를 재편하고 ‘이재용 체제’로 가는 길목에서 삼성SDS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삼성의 일부 계열사 직원들에 따르면 “이건희 시대가 삼성전자라면 이재용 시대엔 삼성SDS라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오가고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곳곳에서 삼성SDS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삼성SDS가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몸집을 불린다든가 상장설이 나돌면 재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삼성SDS가 이재용 체제의 핵심이라면 고순동 사장은 ‘이재용 사장 라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고 사장은 이재용 사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0년 말 사장 인사가 났을 때 ‘이재용 체제를 대비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박준현 사장 역시 이재용 사장과 친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사장은 지난해 9월 20일 이재용 사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만찬을 하는 자리에도 동석했으며 이재용 사장이 종종 홍보차 외부활동을 할 때도 함께할 정도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박 사장이 고 사장과 마찰을 일으킨 것보다 삼성SDS의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구두일지언정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더 큰 원인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좌천이 아닐 뿐더러 사실도 아니다”라며 강력 부인하고 있다.
삼성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관측은 이미 재계에 널리 퍼져 있다. 만일 이 같은 소문이 사실이라면 박 사장으로서는 홍콩법인의 실패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던 중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그나마 자산운용 사장 자리를 준 것이 다행스러운 일일지 모르나 이마저도 박 사장에 대한 배려와 갑작스러운 교체에 따른 무성한 뒷말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새삼 주목되는 것은 장차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후계 승계 과정에서 삼성SDS의 역할이다. 삼성SDS는 지난해 물류사업 진출을 밝히면서 IT서비스 기업에서 범위를 확장시켜 종합물류관리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지난해 포스코와 손잡고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 때만 해도 뜬금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삼성SDS는 진작부터 물류사업을 준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TLC2011에서 고순동 삼성SDS 사장이 ‘컨버전스 빅뱅, 스마트로 열다’라는 제목의 오프닝 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출처=삼성SDS 홈페이지 |
물론 박 사장이 거부한 삼성SDS의 시스템은 첼로가 아니다. 삼성SDS 관계자는 “아직 삼성증권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첼로는 물류 관련 시스템이자 플랫폼일 뿐”이라고 답했다. 삼성SDS 측은 이 같은 이야기가 돌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난감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삼성그룹 측에서도 “소설 같은 얘기”라며 “어떻게 SDS가 전자를 넘어 다음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박준현 사장의 ‘좌천’에 숨은 삼성의 힘의 역학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관심을 모은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