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채 빌라 전세 사기꾼’으로 알려진 김 씨, 사실은 무자력자에 사기 건수도 총 900채 넘어
이 사건은 언론에서 꽤 많이 보도됐지만, 피해자들은 언론 보도가 실상과 크게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씨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김 씨 이름 초성을 따 ‘ㄱㄷㅅ 피해자’라고 부른다. 김 씨는 최근까지도 전세 사기에 연루됐다고 알려졌다. 일요신문은 빌라왕으로 알려진 김 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김 씨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언론 보도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대표적인 부분은 ‘무자본 갭투자’를 해서 전세 사기를 친 빌라왕이라는 표현이다. 전세 사기를 당한 A 씨는 빌라왕은 없다고 단언한다. A 씨는 “김 씨는 빌라왕이 아니라 명의를 대여한 바지일 뿐이다. 투자와도 거리가 멀다. 자기 명의를 빌려줘서 빚더미에 오른 빌라를 떠안은 사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김 씨는 무자력자(재산은 없고 빚만 있는 사람)에 불과했고, 빚이 많다는 점을 협박에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그가 전세사기를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김 씨는 언론에 300채 전세 사기와 연루됐다고 보도됐지만, 피해자들 얘기를 종합해보면 900채 이상이라는 얘기가 지배적이다. 전세 사기를 당했던 B 씨는 “경찰은 전세 사기를 집계하는 방식이 명의자보다는 법적으로 전세 사기에 해당하는지를 따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명의자가 전세 사기꾼이라고 해도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면 전세 사기로 집계하지 않더라”면서 “뻔히 전세사기꾼인데도 불구하고 계약기간이 며칠이라도 남아 있으면 기망 행위가 없다며 경찰 접수도 안 됐다”라고 말했다. 즉 이미 김 씨와 계약했기 때문에 전세 사기에 휘말려 들었지만,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아 사기로 집계되지 않은 수가 600채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다.
김 씨는 전세 계약 당시 김 씨 개인으로도 계약했지만, 법인을 내세워서 계약하기도 했다. 많은 전세 사기꾼들이 자신 이름이 너무 알려질 경우 페이퍼컴퍼니 법인을 내세워 전세 계약을 맺는다. 간혹 전세 사기꾼 이름으로 확인돼 전세 계약이 불발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김 씨가 내세운 법인은 자신의 이름을 딴 ‘XX하우징’ ‘XX하우스’ 두 개가 있었다.
수백 채의 전세 사기에 연루된 빌라왕의 법인 두 곳 주소는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한적한 시골 마을,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허름한 집으로 돼있다. 이 집은 김 씨 부모가 거주하는 곳이다. A 씨에 따르면 한 번은 피해자들이 모여 김 씨를 잡기 위해 법인 주소를 따라 김 씨 부모 집을 찾아냈고 집 앞에서 항의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당시 김 씨 부모는 ‘우리들도 아들(김 씨) 행적은 모른다’는 말을 했고 피해자들은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고 전해진다.
김 씨가 전세 사기를 시작한 시기는 당사자가 아니면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종합부동산세 교부 청구서로 짐작해볼 수는 있다. 김 씨가 처음 종부세 고지를 받은 시기는 지난해 11월로 추정된다. 종부세는 6월 1일 기준으로 집계된 종부세가 다음 해 11월에 고지된다. 김 씨가 2020년 6월 1일부터 2021년 6월 1일 사이에 처음으로 명의대여로 주택을 취득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 김 씨는 부동산 중개보조원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졌다. 그의 이름과 얼굴이 들어간 명함에는 김 아무개 과장이라고 적혀 있었고 강서구 화곡동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이름이 들어가 있다. 강서구 화곡동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전세 사기가 벌어진 곳이다. 명함을 통해 처음에는 총책의 중개보조원 역할을 하다 나중에 명의 대여자로 역할을 바꿨다고 추측할 수 있다.
김 씨가 사기 친 지역은 서울과 경기도 전역에 퍼져있다. 서울을 포함해 인천, 부천, 수원, 경기도 광주, 오산, 고양, 포천, 양주, 이천, 용인 등이다. 2~3년 사이 900채를 계약하려면 아르바이트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평일로 한정했을 때 하루에 약 2채씩 계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B 씨는 “김 씨는 모르겠지만 한 유명 전세 사기 명의자는 계약할 시간도 부족해 대리인을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역도 멀리 떨어진 경우도 있어 김 씨도 이 정도 개수면 혼자 전부 계약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김 씨가 전세 사기 주범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전세 사기 주범 혹은 총책은 자기 명의를 쓰지 않는다. 전세 사기 친 빌라를 자기 명의로 취득했을 때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 명의로 누적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수사기관에서도 명의자에게 수사가 집중되기 때문에 자기 명의를 쓸 이유가 없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총책이나 조직원 명의 통장 대신 대포통장을 쓰고 돈을 찾으러 갈 때 심부름 알바를 쓰는 이유와 비슷하다.
김 씨가 이렇게 명의를 빌려주고 계약하면서 얻은 이익은 2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명의대여 시세가 1채당 1~2년 전 약 300만 원에서 최근 200만 원 정도 되기 때문이다. 시세를 단순 계산해 따져볼 때 김 씨가 900채 이상을 명의 대여해준 대가는 20억 원 이상 된다고 볼 수 있다. 호텔에서 장기 생활한 그의 도피 자금이 여기서 나왔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다만 최근에는 이렇게 한 명 명의로 ‘몰빵’하듯이 빌라를 취득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 물론 한 명 명의로 계약하면 매우 편리하다. 새로 명의자를 구할 필요도 없이 똑같은 명의로 찍어내듯 계약서를 만들어내면 된다. 다만 최근 김 씨가 900채나 계약하면서 집중 수사 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전세 사기 조직도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사기관이 추적하다 보면 김 씨를 타고 전세 사기를 총지휘하는 컨설팅 조직이나 부동산 중개원에게도 닿을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총책은 한 명당 3채 정도 전세 사기 계약을 맺고 또 다른 명의자를 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3채 정도면 경찰도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명의 대여자는 일용직을 구하는 사이트에서 현재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어쨌든 김 씨가 이렇게 많은 명의자를 거느리게 되자 일종의 권력자처럼 행동했다고 전해진다. 전세 사기 피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C 씨는 ‘김 씨가 협박을 일삼았던 과거 행적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C 씨는 “김 씨는 전세 사기를 당한 세입자에게 전화해 보증금 외에 4000만 원, 2000만 원 등을 요구하며 이 돈을 주지 않으면 공매로 넘겨버리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김 씨 이름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 카페도 만들어져 있다”고 밝혔다.
김 씨가 공매를 운운한 건 엄청난 액수로 불어난 세금 때문이다. 김 씨는 약 60억 원 이상의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이 체납돼 있다. 유명 전세 사기 명의 대여자는 대부분 엄청난 액수의 세금이 붙어 있다. 명의 대여자가 빌라를 떠안은 조건으로 200만 원과 함께 안게 된 세금이 쌓여서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쌓인 세금은 국세 우선원칙에 따라 전세금보다 선순위다. 만약 김 씨 명의로 60억 원 세금이 있다면 전세금을 날릴 가능성이 생기는 셈이다. 이게 김 씨가 공매로 협박을 한 배경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방법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김 씨 명의로 60억 원 세금이 있고, 빌라 1000채가 있으면 세무서는 압류를 걸어둔다. 그런데 세무서에 60억 원을 1000채로 나눈 금액인 약 600만 원을 내고 해당 빌라 압류를 풀어달라고 협상할 수 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김 씨가 이렇게 협박해 600만 원보다 더 큰 금액인 수천만 원을 받아낸 뒤 세무서에 일부를 내고 나머지를 챙기는 방법을 썼다고 알려졌다.
물론 김 씨 협박은 큰 의미가 없는 데다 절대 응하면 안 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일단 김 씨가 돈을 받은 뒤 세무서와 협상조차 하지 않고 그 돈만 먹고 튈 수도 있다. 두 번째로 굳이 그런 방식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웃돈을 주는 것보다 공매가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절차상 이점 때문에 경매보다 공매를 선호하는 데다, 공매로 진행할 시 김 씨가 제시한 금액보다 적게 들여 집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C 씨는 “사실 잘 아는 사람이면 ‘그냥 공매에 넘기세요’라고 하면 되는데 잘 모르고 웃돈을 준 경우가 꽤 있다고 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사망하자 피해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먼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된 경우 보증보험을 받기 위해서는 집주인에게 전세 계약 종료 의사표시를 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 이 의사표시는 집주인에게 확인 답변이나 내용증명 수취를 받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런데 죽은 사람에게 계약 종료를 어떻게 확인받을지 선례가 없는 상황이다. 김 씨가 사망하면서 계약기간이 종료되었음에도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주택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인 임차권등기명령을 하기도 어렵다.
김 씨가 사망하면서 상속자에게 권리가 넘어가겠지만 상속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재산보다 빚이 수십억 원 더 있는 상황에서 상속을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상속 의사가 있는지, 상속 포기 절차를 할지 여부를 사촌까지 확대해서 알아봐야 하는 데 그 과정도 오래 걸린다. 이렇게 되면 전세 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전세 대출이 걸려 있다. 김 씨가 죽고 사고 물건이 확인되면서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전세 대출 연장이 안 돼 저신용자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 강남권에서 세무사로 일하고 있는 D 씨는 “개인적 의견으로는 사망 이후 상속인이 없는 경우에는 국세징수법에 따라 빌라 등 부동산은 공매 등을 통해 국가에 귀속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세징수법에 따르면, 세금 체납으로 인해 국가에 재산을 압류당할 수 있고, 압류 뒤에도 세금 납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경매 등의 방법으로 재산 매각을 통해 체납 세금을 충당하고, 충당한 이후에 나머지는 체납자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김 씨 사망을 두고 또 다른 의혹도 나오고 있다. A 씨는 “김 씨가 1980년생으로 40대 초반 나이인데 지병이 있어 사망했다는 얘기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 김 씨에게 수사를 집중하자 총책이나 전세 사기 조직이 자신들까지 다칠까 봐 미리 꼬리 자르기를 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 음모론 같지만 그만큼 피해자들은 지금 황당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의 우려와 달리 경찰은 빌라 건축주와 부동산 중개 브로커 등 전세 사기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라고 전해진다. 경찰은 김 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 처리하는 한편, 빌라 건축주 및 부동산 브로커 등 다른 관련자를 상대로 수사를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피해자들은 ‘가짜 빌라왕’인 바지 김 씨가 아닌 김 씨를 이용한 진짜 빌라왕까지 수사가 이어져 나가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