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하우스 푸어’보다 고통 더 커…‘모 아니면 도’식 레버리지 투자 되짚어 봐야
10년 만에 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또 등장했다. 2012년에는 ‘하우스 푸어’였다면 지금은 ‘영끌 푸어’다.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이자 부담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어휘다. 하지만 고통을 겪는 세대가 다르다. 하우스 푸어는 베이비부머, 영끌 푸어는 2030세대인 MZ세대 ‘집 테크’의 수난사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집을 산 영끌 푸어는 하우스 푸어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10년 전보다 집값이 많이 오른 만큼 대출금액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빚은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 잘만 활용하면 삶의 언덕이자 후원자가 되지만 잘못 쓰면 나락으로 이끈다.
이번 상승 사이클, 특히 2~3년간은 MZ세대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10년 전과는 부동산 흐름이 딴 판이다. 요즘 집값 하락 폭은 서울보다 인천·경기, 강남보다 강북에서 더 가파르다. 자금력이 부족한 MZ세대가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비서울과 비강남으로 몰려갔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키워드는 ‘탈서울 내 집 마련’, ‘비강남의 반란’이었다. MZ세대는 ‘영끌’ 혹은 ‘빚투(빚을 내서 투자)’, 전세 레버리지를 통한 갭투자 방식으로 집을 사들였다. 집값이 당연히 부풀려질 수밖에 없다. 세상 이치가 그렇듯 많이 오르면 많이 떨어지는 법이다.
요즘 아파트 값은 대형보다 소형, 구축보다 신축에서 하락폭이 깊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재건축보다 일반 아파트 값이 더 떨어진다. 이 역시 MZ세대의 주거 소비 니즈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MZ세대는 돈을 벌기 위해 불편함을 무릅쓰고 낡은 집에서 거주하는 ‘몸테크(몸과 재테크를 합성한 신조어)’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욜로족이라고 할 만큼 당장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 부모세대가 낡은 재건축이나 재개발구역에 살면서 시세차익과 새 아파트를 얻는 ‘일석이조’ 투자를 했던 것과 다른 패턴이다. 새 아파트를 좋아하니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많이 올랐다. 하지만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비싼 새 아파트 구매 수요가 급감했다. 수요의 큰 공백이 발생하니 하락폭은 클 수밖에 없다.
또 MZ세대는 중소형 아파트를 선호한다. 1~2인 가구가 주류를 이루는 데다 목돈도 많지 않으니 중소형을 당연히 많이 찾을 것이다. 우리는 중소형 아파트는 수요가 튼실해 불황에도 강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대형 아파트는 수요가 많지 않아 위기에 취약하다고 여긴다. 이번 하락기에는 이런 고정관념이 무참히 깨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2012년 당시 대형 아파트, 재건축 아파트값이 급락했던 상황과 정반대 현상이다.
MZ세대는 이번 하락기를 겪으면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듯하다. 사회에 진출한 뒤 처음으로 급락 사태를 겪으니 멘탈 붕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코인과 주식에 이어 부동산까지 급락하니 그 고통은 오죽하랴. 이번 기회에 투자방식을 되짚어 봐야 한다. 레버리지를 많이 쓰면 쓸수록 위험이 증가한다는 점, 투자열풍 뒤에는 반드시 침체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인 투자가 아니라 혹시 ‘모 아니면 도’식의 베팅이 아니었는지 체크하길 바란다. 빚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부채주의’의 함정도 경계해야 한다. 반성적 사유를 통해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MZ세대는 이번 영끌 푸어 사태를 겪으면서 더 성숙한 세대로 거듭나길 희망해본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