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47억 7800만 신규 배정 요청, 뒤늦게 정책 설계 의혹…통일부 “광복절 이후 준비하느라 늦어져”
그런데 최근 통일부가 ‘담대한 구상 전략위원회 구성 및 운영’을 위한 예산 47억 7800만 원을 신규 편성해달라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에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가 ‘담대한 구상’을 북한에 제안하고서 뒤늦게 정책 설계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조만간 담대한 구상의 구체화 된 부분을 준비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말한 뒤 예산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10월 28일 국회 외통위 소속 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는 ‘담대한 구상’ 의 구체화 및 공감대 형성을 위해 ‘(가칭)담대한 구상 전략위원회’ 등을 구성 및 운영하겠다는 2023년 사업 계획을 뒤늦게 밝혔다. 이 같은 사업 추진을 위해서 예산을 신규 편성해달라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요구했다. 예산은 정부안(23억 7800만 원)에서 24억 원 증액을 요구한 총 47억 7800만 원이다.
구체적인 항목을 보면, 경제·정치·군사 등 세부추진계획을 구체화하는 ‘분야별 연구용역’이 9억 원으로 가장 많다. 국내외 전문가 네트워크(6억 6000만 원)와 정책홍보 등 공감대 형성(4억 5000만 원) 순이다. 민간단체, 전문가 등 분야별 협의체 운영에는 2억 6000만 원이 책정됐다. 국내·외 명망 있는 전문가 등으로 ‘(가칭)담대한 구상 전략위원회’를 구성하고, 통일부 장관 주재로 정례적 회의를 열어 자문을 구하는 데 사용되는 비용이다. 자문은 ‘통일·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미래·과학·경제 등 균형 있는 인사로 구성하여 폭넓게 실시할 계획이다. 이 밖에 운영비가 4000만 원이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윤석열 정부가 ‘담대한 구상’을 구체적으로 정립하지 않은 채 북한에 제안부터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23년 통일부 예산은 8월 30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일반회계(2187억 원)와 남북협력기금(1조 2334억 원)을 더해 모두 1조 4520억 원가량으로 편성됐다. 당시 예산안에는 ‘담대한 구상’ 예산이 포함되지 않았다.
10월 7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담대한 구상’에 십자포화를 날렸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통일부가 자신 있게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통일부 패싱’을 언급한 것으로 읽힌다. 이에 권영세 장관은 “담대한 구상의 초기 아이디어는 대부분 통일부에서 제공했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여러 부처가 관련돼 국가안보실이 취합하고 있다”며 “조만간 담대한 구상의 구체화 된 부분을 준비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10월 28일 통일부는 ‘담대한구상 전략위원회 구성 및 운영’을 위한 예산을 신규 편성해달라고 국회 외통위에 요구했다.
국회 외통위 소속 의원실 한 보좌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담대한 구상’을 외부에 정책 용역으로 맡긴다는 건, 실질적인 내용도 없는 ‘담대한 구상’을 북한에 선제적으로 제안만 한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며 “통일부에서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정책을 어떻게 구체화할지를 맡기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밝힌 뒤부터 준비했기 때문에 시기상으로 8월 예산안에 태우기 어려웠다”며 “국회 국감 때도 의원들이 구체화를 요청했고, 내년부터 실질적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예산을 뒤늦게 요청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담대한 구상’을 받아들이라고 북한에 외쳐왔다. 8월 19일 권영세 장관은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대한 구상’을 비난하면서 거부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는 입장까지 밝힌 바 있다. 10월 5일에는 권 장관이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만나서 ‘담대한 구상’에 대해 설명하고 독일의 적극적인 지지를 요청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 무력 도발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담대한 구상’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11월 2일 대통령실은 “누누이 말하지만 대화의 문은 늘 열려있다”며 “북한이 한시라도 대화의 장으로 나와 이미 제안 드린 담대한 구상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박진 외교부 장관은 2022년 국제문제회의 화상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북한의 도발로 위협을 받았다”며 “(북한은) 실질적 비핵화에 착수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담대한 구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미래를 위한 바른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1월 4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7~8일 종합정책질의 △9일~10일 비경제부처 예산심사 △14~15일 경제부처 예산안 심사를 각각 진행할 예정이다. 내년도 예산안의 증·감액을 심사할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는 17일부터 가동된다. 이후 여야 예결위 간사는 30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할 방침이다. 내년도 예산안의 본회의 처리 법정시한은 12월 2일이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