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5명 중 1명 포르셰 소유, 20대 개발자 초호화 아파트 이사…검찰 사기 혐의 입증 주력
지난 10월 20일과 24일 테라폼랩스 관계사 커널랩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건물 지하주차장에선 포르셰 차량 6대가 포착됐다. 이 중 4대는 테라폼랩스 직원들 소유로 확인됐다. 이들은 현재 커널랩스 소속인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단독] ‘테라’ 개발 관여 국내 법인 포착…검찰 합수단 1호 타깃 되나). 국민연금 데이터에 따르면 커널랩스 직원은 지난 9월 기준 21명이다. 적어도 20% 가까운 직원이 포르셰 소유자인 셈이다.
테라폼랩스 개발자 A 씨는 슈퍼카를 몰면서 초호화 아파트에 살고 있다. A 씨가 소유한 포르셰 타이칸 4S는 가격이 1억 4850만 원에서 시작돼 추가 옵션에 따라 2억 원이 넘어가기도 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로 이사했다. 한강 조망이 좋은 40평형 호실에 세 들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트리마제 40평형은 월세 1500만 원대에 계약됐다. 트리마제는 축구선수 손흥민,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 등 여러 유명인이 소유해 '연예인 아파트'로 불리는 곳이다.
1993년생인 A 씨가 근로소득으로 재력을 쌓았을 가능성은 작다. 국민연금 데이터로 추산한 커널랩스 직원 평균 월급은 세전 400만 원 후반대다. 테라폼랩스 직원 평균 월급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2017년 석사 과정을 졸업한 A 씨는 2018년부터 약 1년간 암호화폐 거래소 개발자로 일했다. 2019년 테라폼랩스로 이직했다. A 씨는 부를 대물림한 '금수저'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2019년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투룸 빌라에 살았다.
현재 포르셰 차를 모는 테라폼랩스 개발자 B 씨도 최근 1~2년 사이 상당한 부를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B 씨는 2020년까지는 서울 성동구 사근동에 있는 대학가 원룸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B 씨가 거주했던 원룸 건물엔 주차공간이 따로 없었다.
테라폼랩스 직원 C 씨 또한 재력이 상당하다. C 씨는 올봄 결혼한 아내에게 지난 10월 포르셰 차량을 선물했다. C 씨 부부가 결혼한 예식장은 연예인과 재벌들이 식을 올리는 곳으로 유명한 최고급 호텔 영빈관이었다. 영빈관 결혼 비용은 최소 1억 원대로 알려졌다. C 씨 부부는 신혼집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구했다. C 씨는 지난 2월 해외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엔젤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테라폼랩스 임원 E 씨 또한 초호화 아파트에 사는 포르셰 차량 오너다. E 씨는 지난 3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주상복합아파트 갤러리아포레로 이사했고, 지난 9월 갤러리아포레 다른 호실로 다시 이사했다. 현재 사는 집은 전용면적 170.98㎡(52평), 전세 보증금은 45억 원이다. 갤러리아포레는 서울숲과 한강 조망이 가능해 2008년 분양 때부터 주목받았다. 트리마제와 마찬가지로 여러 연예인과 기업인이 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3월엔 역대 최고 전세가를 경신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갤러리아포레 전용면적 271.21㎡(82평)는 75억 원에 전세 계약됐다.
E 씨는 갤러리아포레로 이사하기 전에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아파트에 세 들어 살았다. E 씨가 살았던 아파트 같은 평형 전세가는 현재 5억~6억 원대로 형성돼 있다.
테라폼랩스 직원들의 재력은 회사로부터 받은 암호화폐 테라 등을 활용한 시세차익에서 비롯된 것으로 의심된다. 전직 테라폼랩스 직원에 따르면 테라폼랩스는 암호화폐를 거래소에 상장하기 전에 직원들에게 싼 가격에 미리 팔았을 뿐 아니라 성과급 형태로도 지급했다. 암호화폐 성과급은 직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된 것이 아니라 개별 연봉계약에 따라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과 비슷한 형태로 지급됐다.
주식시장에선 회사 임원이나 주요 주주가 주식을 대량 매매할 시 사후 공시하게 돼 있다. 이 같은 규정이 암호화폐 시장엔 없다. 따라서 일반 투자자들은 발행사 직원들이 대량 매도를 해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검찰은 테라폼랩스 직원들이 암호화폐를 처분하기 전 가격을 끌어올려 수익을 챙기면서 일반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이 테라폼랩스 직원들에게 지급된 암호화폐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직원들이 이 중 얼마를 어느 시점에 현금화했는지 등을 파악해 투자자 기망 등 사기 혐의와 연결 짓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라폼랩스는 숨겨놓았던 암호화폐 지갑을 주는 방식으로 직원에게 성과급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물화폐에 비유하면 금융실명제 이전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로 돈을 전달한 것과 비슷하다. 결국 수사의 핵심은 당사자 진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테라폼랩스 직원들은 지난 10월 검찰 조사 때도 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더군다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검찰 수사를 피해 반년 넘게 해외 도피 중이다. 지난 3일 여권이 무효화된 권 대표는 온라인을 통해 해외 도피가 아닌 체류라고 주장하는 한편 자신의 혐의도 부인하고 있다.
권 대표는 지난 9일 암호화폐 관련 해외 인터넷 방송 '업온리'(uponly)에 영상 통화로 출연했다. 권 대표는 다른 출연진과 달리 자신의 뒤 배경을 안 보이게 설정한 상태였다. 한 출연진은 권 대표에게 "보트에 있는 것 같다. 그런 소리가 들린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권 대표는 자신의 허세가 테라·루나 몰락에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보이는 모습이 달랐다고 해서 테라에 다른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긴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테라는 강세장이라는 배경 덕분에 (시가총액) 200억 달러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며 "당시 많은 레버리지(대출)와 거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업가 마틴 쉬크렐리는 이날 방송에서 권 대표에게 "감옥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알려주고 싶다. 최악은 아니니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감옥에 가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권 대표는 웃으면서 "그렇구나"(Good to know)라고 짧게 답했다. 마틴 쉬크렐리는 증권사기 혐의로 2018년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 5월 석방된 인물. 그는 자신이 창업한 제약회사 주식을 불법적으로 취득해 개인 빚을 갚는 데 쓴 혐의로 구속됐다. 치료제 판권을 인수한 뒤 가격을 55배 이상 올려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