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루나 피했더니 클레이튼, 납득 안돼” 불만…클레이튼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투자 제안 받은 듯
테라월드 NFT(대체불가토큰)에 투자했던 A 씨의 말이다. 테라월드는 디지털 환경에서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간단하게 말해 테라월드 땅 NFT를 사면 이 가상공간 속 땅을 임대해주거나 광고할 수 있는 자리로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땅에 건물을 건설하거나 아바타, 장식을 배치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테라월드는 ‘자신만의 비즈니스 공간을 만들고 싶거나 무한한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테라월드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테라월드는 루나와 연동된 테라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하는 응용프로그램(DApp)이다. 테라월드는 NFT 민팅(발행)을 통해 랜덤하게 땅을 나눠줬다. 1칸이 99% 확률로 대부분이고 약 1% 확률로 나머지 큰 땅을 받을 수 있었다. 소형(9칸), 중형(36칸), 대형(144칸), 초대형(576) 칸 필지를 랜덤하게 받는데 큰 땅을 받을 확률은 극도로 떨어진다. 마치 복권에 당첨되듯 여러 번 도전해야 큰 땅을 받을 수 있다. 당시 랜드 민팅 가격이 평균 300만 원이었고 약 4000개를 팔았으니 테라월드가 받은 투자금은 약 120억 원에 달했다.
2022년 테라월드 민팅에서 A 씨는 대형 칸에 당첨돼 뛸 듯이 기뻐한 바 있다. 당시 144칸에서 나오는 보상코인만 모아도 금세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 씨는 “3×3 칸인 9칸을 받아서 농담 삼아 곧 퇴사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9칸은 출시 초기 약 7만 달러에 달했다. 땅 가격이 오르고 여기서 받는 보상으로 여유가 생기길 희망한 것이다. 더군다나 5월 중순 조건에 맞는 투자자에게 펫(반려동물)도 에어드롭(기존 가상자산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행위)해준다는 말에 한층 더 들떴다.
하지만 곧 5월 9일 역사적인 ‘루나 대폭락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테라월드는 NFT를 발행하고 투자금을 루나와 UST로 받았는데, 이렇게 받아 넣어둔 금고 자산이 거의 휴지조각에 가깝게 폭락했기 때문이다. 테라월드는 일부 자산은 손절해서 최소한은 건졌다고 알려졌지만 대부분 자산이 말 그대로 녹아버리면서 프로젝트 추진이 어렵게 됐다. 테라월드는 몸담고 있던 테라 체인조차 사실상 기능을 상실하면서 국적도 없는 난파선 상태가 된 셈이다.
루나 사태 이후 약 두 달 동안 테라월드는 새로운 체인으로 이전을 검토한다고 알려졌다. 별다른 공지 없이 약 두 달이 지난 7월 4일, 테라월드는 트위터를 통해 ‘프로젝트를 리브랜딩했다’면서 ‘어나더월드’라는 새로운 이름과 로고를 공개했다. 테라가 사실상 끝난 상태에서 테라월드라는 이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7월 11일 어나더월드는 드디어 ‘탐색을 끝냈다. (이주할) 새로운 체인을 공개하겠다’고 밝혀 기대감을 높였다. 테라월드 투자자 B 씨는 “체인 공개 전 소문에는 글로벌 체인인 바이낸스 체인(BSC)이나 폴리곤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가치가 폭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7월 18일 드디어 공개된 어나더월드의 새로운 체인은 클레이튼이었다. A 씨는 “김치 코인(국내 코인) 피해서 또 다른 김치로 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특히 과거에는 시총 7위 글로벌 코인이었는데 이번에는 프로젝트가 떠나고 있는 클레이튼으로 간 걸 납득하기 어렵다. 클레이튼은 글로벌 인지도가 거의 없고 해외로 뻗어나가기 매우 어렵다는 게 대부분의 인식”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커뮤니티 용도로 많이 쓰이는 디스코드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투자자들은 ‘클레이튼은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어나더월드의 이번 클레이튼 이적을 두고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클레이튼이 일종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고, 이를 어나더월드가 받아들인 게 아닌가라는 얘기다. 특히 클레이튼이 제안한 투자금이 다른 체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200억 원이라는 얘기도 돈다.
B 씨는 “사실 어쩔 수 없다는 면도 이해는 한다. 가장 큰 투자금을 약속한 곳이 클레이튼이라고 들었다. 여기서 프로젝트가 도망가도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프로젝트를 이어가려는 면은 이해한다”면서 “이왕 클레이튼으로 된 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프로젝트가 잘되길 응원하지만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클레이튼으로 넘어가면서 설정된 베스팅(Vesting·조건부 불완전 부여) 기간도 논란이다. 어나더월드는 베스팅 기간을 4년으로 설정했다. 약 4년 동안 서서히 잠금이 해제되는 조건이다. A 씨는 “클레이튼이 출시된 지도 4년이 안됐는데, 4년은 너무 길다”는 입장이다.
A 씨는 “앞으로 월드컵을 두 번 더 봐야 갖고 있던 가상자산에 대한 주권을 모두 되찾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저 달관하고 있다”면서 “투자자 바람이 100%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논의할 수 있었던 부분이 존재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일방통행식 클레이튼 이동은 아쉬운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가상자산 전문가는 일단 투자금을 받고 이적은 했으니 앞으로 출시될 서비스가 중요할 것으로 봤다. 그는 “어나더월드는 메타버스 세상 구축을 어느 정도 했으니 실제 출시될 서비스가 중요할 것 같다”면서 “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본다. 소문에 따라 클레이튼이 제안한 투자금이 200억 원이 맞다면 앞으로 몇 년을 이끌 자금을 준다는 곳이기에 거절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나더월드 측은 “투자금 규모는 답변드리기 힘든 부분이다. 프로젝트 관련해 팀에서 말한 게 아닌 외부 소문은 확실한 정보가 아니다”면서 “현재 메타버스에 들어갈 게임들을 개발 중에 있으며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베스팅 기간이 길다고 하지만 VC(벤처캐피털) 베스팅 기간이 홀더들보다 짧지 않다. 베스팅 기간을 기다릴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출금 물량의 일정량을 수수료로 소각하고 출금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