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 4가지 과제 중 북한 붕괴 시 대응통화 활용 눈길…2020년 3월 송금 중단, 창립자 안 회장이 ‘키맨’
11월 10일 안 아무개 아시아태평양교류협회 회장이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서 체포됐다. 안 회장은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에 깊숙하게 개입했다는 의혹 중심에 서 있다. 쌍방울이 직원 60여 명을 동원해 약 500만 달러 규모 외화를 반출하는 과정에 안 회장이 ‘키맨’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다.
일각에선 안 회장 주도 아래 추진됐던 가상자산 사업이 대북사업 관련 의혹 스모킹건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태협은 대북사업과 대북지원 등을 목적으로 가상자산 APP427을 발행했다.
APP는 아시아(Asia)·태평양(Pacific)·평화(Peace)를 의미하는 약어다. 427은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종전과 더불어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확인하는 것을 핵심으로 공동 발표한 판문점선언 날짜를 상징한다. APP427이 제시한 로드맵은 경기도·쌍방울·아태협을 둘러싼 각종 대북사업 관련 의혹과 묘하게 그 궤를 함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APP 코인 백서 ver 2.0’에 따르면 아태협은 가상자산 사업을 통해 여러 분야에 걸친 대북사업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28쪽 분량의 백서엔 아태협이 가상자산 APP427을 연계해 추진하려는 사업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아태협은 백서를 통해 APP427의 네 가지 과제를 언급했다.
첫 번째는 남북경제협력 프로젝트 활성화였다. 평양냉면 브랜드 옥류관과 맥주 브랜드 대동강맥주에 대한 한국 내 유통을 활성화시킨다는 목표였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자회사인 중소기업유통센터와 국내 제조기업을 통해 OEM 위탁생산, 제품 개발 및 공급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두 번째 과제는 민간 주도의 남북교류협력 선도였다. 아태협이 구상한 남북교류협력 핵심은 미술품이었다. 백서엔 대북제재 대상인 북한 만수대창작사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 사진이 게재돼 있다. 아태협은 “민간 주도의 남북 간 교류 협력 선도를 위해 다양한 상품 중 북한 예술품을 주 타깃으로 선정한다”면서 “북한 예술품은 세계 유일의 미개척시장으로 이를 국내 다양한 수집가들에게 알리고 입찰한다면 좋은 시장이 돼 남북교류 협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는 ‘자발적 대북지원 투명함 유지’였다. 아태협은 백서에서 “대북이라는 지역 특성상 다른 기부 단체 투명성에 비해 오픈돼 있는 항목이 적거나 기부금이 적절하게 사용되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이 높다”면서 “이에 개인 혹은 집단의 올바른 기부 문화 정착을 위해 내가 사용한 기부금의 절차 내용 등에 대한 블록체인 기반 투명함을 유지해 자발적 참여 선순환 구조를 유지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네 번째 과제는 ‘기존 화폐가치 붕괴 시 대응통화로 사용’이었다. 백서에 따르면 아태협은 북한 경제 붕괴로 인한 외화통용현상을 지적했다. 아태협은 APP427을 활용함으로서 외화통용 현상을 줄이고 북한 원화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아태협은 “아태협 주관 사업 외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APP427 코인이 대용통화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아태협은 엘살바도르가 2021년 6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한 사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기존 화폐 가치 붕괴 시 대처 수단으로 가상자산이 떠오를 가능성을 암시했다. 아태협은 “북한의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협회에서는 충분한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백서에 언급된 네 가지 과제와 관련해 “옥류관·대동강맥주 한국 도입 및 북한 예술품 교류 등은 대북 자금줄에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조치로 보일 수 있다”면서 “자발적 대북지원 투명함 유지 항목엔 대북제재 사각지대를 노려 대북기부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마지막 과제가 다소 의외”라면서 “북한이 내수경기에 활용할 수 있는 대체통화 역할을 APP427이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인데, 이런 계획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태협이 대북사업 관련 통로를 ‘일통’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친 것으로도 보인다”고 주장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자발적 대북지원 투명함 유지 항목이 가장 눈에 띄었다”면서 “국민모금 방식과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대북사업 활로를 개척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고 했다. 강 대표는 “전반적으론 북한 지하자원 독점을 담보로 코인을 발행하는 개념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 아닌가 하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태협은 백서를 통해 각종 과제를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처리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아태협은 대북사업권 계약시스템, 북한예술품 경매시스템 등 앞서 언급한 과제들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구현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아태협은 APP427이 이더리움 블록체인 네트워크(ERC-20)를 통해 출시되며 10억 개 코인을 발행한다고 백서를 통해 설명했다. 백서에 따르면 발행 코인 10억 개 중 4억 개는 재단인 아태협이 보유하고, 1억 개는 초기 기금 국내외거래소 판매 물량이다. 2억 개는 프로젝트 참여하는 국가 및 단체(기업) 보상 물량이며, 1억 개는 프로젝트 공로자 보상이다. 사회봉사 및 인도적 지원 등 사회적 참여에 따른 배분 물량은 2억 개로 명시돼 있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전체 물량의 10%가 시장에 풀리는 구조로 설계가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구조의 경우 시장에 코인이 상장된 뒤 일부 물량이 시장에 풀린 뒤 초기 보유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구조”라면서 “지속가능성에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APP427은 태국 모 거래소에 상장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히 어떤 거래소에 상장이 됐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APP427은 사실상 버려진 코인이었다. ‘디지털 조각’처럼 표류하고 있다.
11월 11일 오후 2시 기준 이더리움 기반 토큰의 송금 및 보유 기록을 제공하는 ‘이더스캔’에 따르면 APP427을 보유하고 있는 홀더는 총 23명이었다. APP427 최초 발행일자는 2019년 7월 20일이었다. 최초 발행 이후 APP427 송금은 총 36차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송금은 2020년 3월 17일 이뤄졌다. APP427 200만 개가 송금됐다.
대북 소식통은 “2020년 3월에서 5월 사이는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시작한 시점”이라면서 “남북관계 경색과 동시에 아태협 코인 관련 프로젝트도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코인이 발행된 뒤 처음 10억 개 코인이 들어간 지갑을 ‘창립자’ 지갑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서 “송금기록 대부분에 창립자 추정 지갑 주소가 등장하고, 마지막 송금 역시 이 주소에서 코인이 빠져나갔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23명이 보유하고 있는 APP427 실소유자를 모두 밝혀낼 수 있다면, 그 소유자 명단 자체가 스모킹건이 될 수 있다”면서 “블록체인 특성상 모든 송금과 보유 기록이 추적 가능하다. 창립자가 입을 연다면 23명 정도 되는 보유자를 검찰이 세부적으로 추적하는 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APP427 실소유자 중 쌍방울 관계자 혹은 정치권 관계자가 포함돼 있을지 여부에 초점이 모아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소유자를 추적할 실마리를 쥔 키맨은 APP427 창립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백서에 따르면 APP427 창립자는 11월 10일 체포된 안 아무개 아태협 회장이다. 일요신문은 APP427 관련 세부 내용을 질의하려 아태협 사무실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