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소식통 “국정원 직원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 당국자에 전달” 주장…국정원 “아는 바 없음”
2018년 11월 11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침 우리 군 수송기가 제주산 귤을 싣고 제주공항을 출발해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감귤 200t을 10kg 상자 2만 개에 나눠 북한으로 보냈다. 배송엔 공군 C-130 수송기가 투입됐다. 정부는 공군 수송기 4대를 활용해 이틀 동안 감귤을 실어 날랐다. 통일부 당국자들 사이에선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최대 규모 대북 물자 제공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감귤 선물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사항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선물’에 대한 답례품을 전달한 격이었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은 문 전 대통령에게 송이버섯 2t을 선물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북측이 송이버섯 2t을 선물한 것에 대한 감사 표시로 남측이 답례를 하는 것”이라고 감귤 200t 수송 경위를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2018년 9월 20일 오전 5시 30분경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 수송기 편으로 도착한 ‘북한발 송이버섯’을 미상봉 이산가족에게 나눠줬다.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송이버섯 2t은 아직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한 미상봉 이산가족들에게 나눠드릴 것”이라고 했다.
송이버섯을 수령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문재인 정부는 귤 200t을 답례품으로 보냈다. 당시 무르익어 있던 남북 평화 무드에 추진력을 더해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연내 방한’을 성사하려는 포석을 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답례품으로 감귤을 제공했을 때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 보낸 감귤의 양은 국내산 송이버섯 시세를 고려해 액수를 맞췄다”고 밝혔다. 당국자는 “통일부 예산이나 교류협력기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국자 발언을 두고 당시 정치권에선 감귤 선물에 청와대 예산이나 대통령 특수활동비(특활비)가 활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18년 11월 1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귤 구입 비용과 관련해 "총무비서관이 연말 예기치 못한 소요에 대비해 저도 모르게 아껴둔 업무추진비가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감귤 선물이 유엔 대북 제재 위반 소지가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정부 측은 감귤을 보내는 것이 유엔 대북 제재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감귤 선물은 김정은 답방 시 진행하려 했으나 감귤이 11월에 제철이기 때문에 기왕 선물을 보낼 거면 상품성이 가장 좋을 때 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1월 11일 시작된 감귤 수송엔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서호 청와대 통일정책 비서관이 동행했다. 감귤 수송을 둘러싼 정치권 설전도 벌어졌다. 주인공은 홍준표 대구시장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었다.
홍 시장(당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은 감귤 수송 당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귤 상자 속에 귤만 들어 있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이미 그들은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수억 달러를 북에 송금한 전력도 있다”고 했다. 홍 시장은 “최근엔 유엔 제재를 무시하고 석탄을 몰래 거래한 사건도 있었다”면서 “이러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했다.
박 전 원장은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 신분으로 SNS를 통해 홍 시장 의견을 맞받아쳤다. 박 전 원장은 “이건 너무 나갔다”면서 “귤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의심한다면 그게 무엇인지를 밝히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은 “차라리 귤 보내는 것을 노골적으로 반대하지, 이렇게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국민을 현혹시키려는 꼼수”라고 했다.
2022년 10월 27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유력 대북 소식통 A 씨는 4년 전 남과 북이 송이버섯과 감귤을 주고받은 이야기를 꺼내며 국정원의 현찰 전달 의혹을 제기했다. A 씨는 북한 현지 파이프라인을 통한 풍성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국내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빈번히 교류하는 인물이다.
A 씨는 “4년 전 김정은 송이버섯 선물에 답례품을 보낸 것과 관련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면서 “2018년 11월 감귤이 북으로 운반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 신뢰할 만한 북한 현지 소식통 B 씨가 ‘국정원 직원이 캐리어에 현찰 250만 달러를 담아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주장했다. A 씨에 따르면 B 씨는 북한 당국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A 씨는 “당시 현지 소식통의 증언이 상당히 구체적이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B 씨가 현찰은 캐리어에 담겨져 전달이 됐고, 전달자는 국정원 직원이라고 했다. B 씨가 말한 현찰 액수 규모는 250만 달러였다. 국정원 직원이 가져온 캐리어는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측 당국자에게 전달됐다고 했다. 북한 당국 내부에서 250만 달러라는 현찰 규모에 대해 이런저런 품평도 있었다고 했다.”
A 씨는 “당시 북한이 송이버섯을 선물한 배경에 대해서도 B 씨에게 설명을 들었다”면서 “북한이 대북 제재로 인해 특산품인 송이버섯 해외 판로가 전부 차단된 상태였다”고 했다. 그는 “좀만 더 놔두면 송이버섯이 다 썩어버리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남쪽에 생색내는 것처럼 물량을 던져놓고 한국 정부에 답례 관련 대응을 위임한 형국이었다는 게 현지 소식통 B 씨 설명이었다”고 덧붙였다.
4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A 씨는 “당시엔 정보기관 내부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면서 “의혹을 제기한다면 금방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A 씨는 “전 정부가 북한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로 감귤에 현찰까지 줬다면 이는 명백한 유엔 대북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진상 규명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A 씨는 “한국 정부에서도 갑자기 돈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국정원 자금이 넘어갔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이런 사실관계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사실관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이런저런 루트로 대북 송금을 했다는 의혹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면서도 “증언뿐 아니라 확실한 입증 단서가 있어야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선제적으로 규명해야 할 여러 가지 사실관계가 있기 때문에 자금 전달 경위 및 자금 출처 등을 규명하는 데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그런 류의 의혹을 제기하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나왔다”면서 “해당 사업 자체가 통일부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진행한 행사인데, 공개적으로 한 행사에 국정원이 은밀하게 나섰을 가능성에 대해선 개연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국정원 측에 현찰 전달 의혹 등을 질의했다. 11월 4일 국정원 측은 이와 관련해 “아는 바 없음”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