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유동규·남욱 수사 협력으로 김용·정진상 압박…‘쌍방울’ 핵심 인물 도주로 ‘북으로 간 돈’에 초점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먼저 주목 받은 것은 쌍방울 사건이었다. 하지만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해외로 도주한 뒤 돌아오지 않으면서 서서히 수사는 ‘북한에 건네진 자금’을 향해 가고 있다. 거꾸로 올해 초만 해도 ‘새로운 것을 찾기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던 대장동 사건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의 수사 협조를 받아내는데 성공하면서 빠르게 이재명 대표를 향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11월 16일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책기조실장에 대해 구속영장도 청구하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용 이어 정진상까지…검찰 “물증 있다” 자신감
대장동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11월 16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최측근인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책조정실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정진상 실장이 2013년 7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성남도시개발공사 관련 직무상 비밀을 이용해 남욱 변호사 등 민간업자들로 하여금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해 개발수익 210억 원을 취득토록 한 것에 대해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또, 2013년 2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유동규 전 본부장으로부터 각종 사업 추진 등 편의제공 대가로 6회에 걸쳐 1억 4000만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도 적용했다.
2015년 2월에는 유 전 본부장,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구속)과 함께 대장동 개발 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되게 해주는 대가로 김만배 씨(화천대유자산관리 실소유주)의 천화동인1호 지분(49%)의 절반인 24.5%를 약속 받았다는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각종 비용을 공제하면 42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정 실장에게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휴대전화를 버리라”고 지시한 증거인멸교사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영장 청구 하루 전인 15일 정진상 실장을 소환해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13시간 30분 동안 조사했다. 정 실장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는데 이를 이미 예상했던 검찰은 정 실장이 청사를 떠난 지 12시간여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관련 흐름에 정통한 대검찰청 관계자는 “이미 체포영장을 청구할 때부터 정진상 실장의 신병 확보는 정해진 수순이었다”며 “언론 등에 혐의를 부인하는 것을 보고, 검찰에서도 증거들을 내밀었을 때 똑같이 부인으로 대응하면 기본적인 질의만 하고 영장을 청구해 법원의 판단을 받는 쪽으로 가이드를 잡아놨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수사팀 관계자는 15일 이뤄진 티타임에서 “(정진상 실장의 혐의를 입증할) 충분하고 다양한 인적 물적 증거를 저희들이 확인하고 있다”며 “진술만 갖고 수사할 수는 없지 않나. 재판까지 고려해 증거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규 전 본부장, 남욱 변호사의 진술을 토대로 김용 부원장, 정진상 실장의 뇌물 수수 등을 입증할 객관적인 근거를 확보했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유동규 전 본부장, 남욱 변호사가 ‘수사 협력’으로 태도를 바꾸면서, 대장동 사건으로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2명을 모두 구속할 수 있는 상황까지 급변한 셈이다. 관련 변호를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확보된 정황들을 토대로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진술이 필요했는데, 유 전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의 진술 덕분에 구조를 정리할 수 있게 된 셈”이라며 “이를 토대로 다시 증거를 모으고 수사를 하다 보니 빠르게 성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은 정 실장과 이 대표 관계를 정치적 공동체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정 실장이 구속될 경우 이르면 11월 말, 늦어도 12월에는 이재명 대표에게도 소환 통보가 갈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성태 출국에 멀어지는 쌍방울 관련 이재명 대표 수사
반대로 윤석열 정부 출범 초만 해도 주목을 받았던 쌍방울그룹 관련 사건은 수사가 암초를 만난 모양새다. 5월 즈음만 해도 쌍방울그룹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변호사 비용 대납을 했다는 의혹 등 돈이 직접적으로 오간 흐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쌍방울그룹과 이재명 대표 측 인물 간 자금 흐름 및 교류를 설명할 수 있는 김성태 전 회장 등 핵심 인물들이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주하면서 갑작스레 이재명 대표가 아닌 ‘북한’으로 수사 대상이 바뀐 모양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당초 쌍방울그룹을 수사할 때에는 ‘돈’이 이재명 대표 등 핵심들에게 올라간 정황을 찾아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했는데 돈을 건넨 일련의 과정을 설계하고 지시한 김성태 전 회장의 신병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수사 대상을 찾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대검에서는 김성태 전 회장이 귀국해 수사에 협조할 가능성을 현재는 ‘없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신 수원지검은 쌍방울그룹이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를 매개로 대북 이권 사업 관련 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북한 측에 돈(달러)과 선물(시계 등)을 준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영남)는 2019년 1월 중국 선양에서 북한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온 경기도, 아태협, 쌍방울 관계자들을 잇달아 불러 조사하면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진술을 확보했다고 전해진다.
이미 구속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안부수 아태협 회장(구속)과 함께 중국 선양에서 송명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실장 등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쌍방울과 북한 사이 남북 경협이 추진됐다. 이 소식이 알려진 덕에 쌍방울그룹 계열사들 가운데 일부 상장사들의 주식은 수배 이상 급등했는데, 검찰은 이 자리 등을 빌미로 쌍방울과 아태협 측이 수십억 원을 북한에 건넨 정황을 확인했다. 안 회장은 2019년 1월 북한 측에 14만 5000달러, 180만 위안(약 28만 5000달러) 등 총 43만 달러(약 5억 7000만 원)어치의 외화를 직접 전달한 혐의로 이미 구속됐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북한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간 것을 수사하는 것은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 가운데 가장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이재명 대표까지 올라가려면 입증해야 할 게 많다”며 “김성태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수사가 차질이 생긴 것은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검찰 윗선에서도 쌍방울그룹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이 아닌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사건을 더 많이 챙긴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