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책임론 막자” 윤 대통령 중심 똘똘…전당대회 내년 4~5월 유력 ‘윤심’ 향배 촉각
지난 9월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윤계’ 중심으로 ‘합의추대설’까지 거론되던 주호영 당시 후보를 상대로 이용호 후보가 42표로 예상 밖 득표를 거뒀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윤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10월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리스크’를 해소하고,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가 안정화되면서 당내 분란도 수그러드는 모양새를 보였다.
최근 이태원 참사 수습 과정에서 당내 삐걱거림이 다시금 감지되고 있다. 참사의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자 ‘친윤계’를 중심으로 이를 막기 위한 강경 목소리들이 나오면서다. 당 지도부 역시 ‘선 수습·후 책임’이라는 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 와중에 당 일각에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자진사퇴 혹은 경질 목소리가 나왔다.
4선 중진 윤상현 의원은 11월 8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무한책임은 정치적 책임이다. 현명하신 분이니까 사태 수습하고 진상규명 후 본인 거취에 대해 말씀하지 않겠느냐”며 “장관은 정치적으로 결과적으로 책임지는 자리다. 저라면 자진사퇴를 할 것 같다”고 이상민 장관을 압박했다.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이상민 장관은 사태 수습 후 늦지 않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최측근’ 이상민 장관을 유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과 11월 2일과 3일 연달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 조문을 함께한 것을 두고 소위 ‘재신임’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또한 4박 6일간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이 환영 나온 이 장관에 악수를 나누며 “고생 많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이 ‘정부 책임론’이 거세지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말까지 전해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윤 대통령이 일부 친윤계 의원과 통화에서 “당이 왜 이리 ‘매가리’가 없나, 당은 도대체 뭐하는 것인가. 장관 한 명 방어도 못하나”라고 야권의 이 장관 사퇴 파상공세에 여당이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것에 불만을 내비쳤다는 후문을 전했다.
더 나아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인 주호영 원내대표가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웃기고 있네’ 메모로 논란에 휩싸인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퇴장시킨 것을 두고도 윤 대통령이 불만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8일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은혜 수석과 강승규 수석이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을 주고받은 게 언론에 포착돼 논란이 불거지자, 운영위원장인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들을 퇴장 조치했다.
그러자 ‘친윤계’ 의원들이 앞장서서 주호영 원내대표에 압박을 가하고 나섰다.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11월 10일 국회 본회의 중 기자들에 “의원들이 부글부글하더라”며 “당원들이 (퇴장 조치에) 모욕감을 느낀 것 아니냐는 감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 의원은 같은 날 의원총회에서 비공개 발언으로 “민주당은 자기 의원들과 장관들을 보호하는데, 우리 당은 왜 이상민 장관을 지켜주지 못하나”라며 “일치단결해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의 수행팀장을 맡아 ‘친윤계’로 분류된다.
이를 두고 친윤-비윤계 간 갈등이 다시 떠오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야권이 ‘정부 책임론’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정부를 중심으로 여권이 뭉쳐야 한다는 기류가 더 강하긴 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주호영 원내대표도 친윤계를 등에 업고 원내대표직에 오른 것이다. 이상민 장관 언행 비판, 국정조사 수용 여지 입장, 김은혜·강승규 수석 국감 퇴장 조치 등 윤 대통령에 거스르는 모습을 보였다고 윤 정부나 친윤계와 다른 입장을 가졌겠느냐. 장제원 의원과 이용 의원의 발언도 국민의힘이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한다는 주의환기 차원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여당 내부에서도 ‘원내대표 흔들기’를 멈추고 힘을 실어주는 모습으로 전환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14일 중진 의원들과 간담회를 마치고 “나는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인 주호영 원내대표에 전폭적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장제원 의원 역시 “민주당의 행태가 국정 발목 잡는 것을 넘어서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당내 강한 기류들이 표출되지 않으면 원내대표가 어떻게 협상을 하겠느냐”며 “그런 강한 기류들을 레버리지(지렛대) 삼아서 협상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야기한 거지, 일부 언론의 ‘갈등을 야기했다’는 보도는 이해 못하겠다”고 반박했다.
이태원 참사 수습 과정을 겪으면서 국민의힘은 ‘친윤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습이 차기 당대표 선거까지 이어질지도 관심사다. 당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내년 1~2월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출범 및 당무감사 착수 등으로 인해 당 안팎에서는 내년 4~5월쯤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원내에서는 권성동 김기현 안철수 윤상현 정진석 조경태 의원 등이, 원외에서는 유승민 나경원 전 의원이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친윤 체제’가 다시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차기 당대표에 오르기 위해서는 결국 윤심의 낙점을 받아야 한다는 게 정치권 전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들 당권주자 중 ‘윤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당대회가 늦춰지면서 내년 초 윤석열 정부 개각을 통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당으로 복귀해 당대표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권영세 장관의 경우 이번 이태원 참사로 사실상 당대표 출마의 길이 막힌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권영세 장관은 지방선거 용산구청장 후보 공천 과정이 투명하고 문제없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컷오프된 후보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 장관은 공직자로서 검증이 되지 않은 자신의 정책특보 박희영 구청장을 공천했고, 결국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또한 권영세 장관은 국무위원이라는 이유로 이번 이태원 참사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 본인의 지역구에서 발생한 참사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사과하고 사태 수습에 적극 나서야 한다. 만약 당대표로 출마한다면 ‘책임론’ 문제 제기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원희룡 장관이 ‘윤심’을 단독으로 업고 큰 경쟁 없이 의외로 쉽게 당대표직에 오를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오르내린다. 원희룡 장관은 지난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와 맞붙은 이후 선대본부 정책본부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을 거쳐 국토교통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이 원 장관을 차기 당대표를 맡길 정도로 신뢰를 보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그렇다고 현재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 중 윤심을 확실히 대변한다고 보이는 후보가 없다. 그게 딜레마”라고 전했다.
국민의힘에선 전당대회 때까지 현재의 ‘친윤’ 단일대오가 이어질 수 있을지에 회의를 갖는 전망도 있다. ‘비윤’으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이태원 참사 등 현재의 정치 구도가 차기 당대표 선거에 영향을 끼치긴 어려울 것”이라며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친윤 후보가 국민들로부터 큰 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후보군 중 누가 당대표가 되든 그 사람과 관계를 개선해서 협조해 나갈 생각을 해야지, 후보를 만들어서 당대표에 올리려고 하면 어려울 것이다”고 충고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