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행사 거짓말 의혹 이어 귀가길 순찰 논란…국민의힘 탈당 요구 및 징계 검토 착수
10·29 이태원 참사 당일 행적을 두고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거짓말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박 구청장은 이날 오후 10시 51분 참사를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최초 신고 시점(10시 15분) 이후 36분 만이다. 그마저도 박 구청장에게 참사 상황을 알린 건 구청이 아닌 이태원 상인연합회였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11월 7일 박 구청장을 입건했다.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대형 인파 운집으로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해 353명의 사상자를 초래한 혐의다.
박 구청장은 7일 국회 행안위에 출석해 ‘4개월 구청장’ 신분임을 강조하며 “마음의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정치권 사퇴 촉구에 선을 그은 셈이다. 박 구청장은 핼러윈 대책 회의를 ‘부구청장 주재가 관례’라며 대책 회의 불참 사유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부터 줄곧 구청장이 해당 회의를 주재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박 구청장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정치권에선 박 구청장 당일 행적을 놓고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박 구청장은 10월 29일 경남 의령군 ‘리치리치 페스티벌’ 초청을 받아 아침 6시 30분 경남 의령으로 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구청장이 지역 행사가 아닌 집안 제사에 참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남 의령은 박 구청장 고향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공개한 의령군 행사 초청 공문에 따르면, 박 구청장이 받은 행사 초청 날짜는 이태원 참사 전날인 10월 28일이다. 이날 박 구청장은 개막식 행사에 참여하는 대신 축사 영상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의령군 초청으로 참사 당일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는 박 구청장 해명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박 구청장은 오후 2시쯤 오태완 의령군수를 만나 10분가량 티타임을 마쳤다. 용혜인 의원은 행안위 질의에서 “개막식 축사 보내고 집안일 때문에 의령에 가서 ‘군수님, 얼굴 한 번 보시죠’ 티타임 한 거 아닌가”라며 “구청장이 애초부터 솔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했으면 절대 문제 되지 않았을 사안”이라며 박 구청장의 거짓말을 질타했다. 박 의원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행사(축제)에 참석하지는 않고 면담만 하고 왔다”고 해명했다.
박 구청장은 10월 29일 오후 4시에 의령을 출발해 오후 8시 20분경 용산구청으로 복귀했다. 참사 후 용산구청은 박 구청장이 오후 8시 20분과 9시 30분 두 차례 ‘이태원 퀴논길’ 일대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퀴논길은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 한 골목 도로 맞은편 길로, 인파가 몰렸던 메인 도로와 직선거리로 100m가량 떨어져 있다. 박 구청장은 두 차례 방문 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퀴논길이 박 구청장 자택 근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귀가길 순찰’ 논란이 일었다. 박 구청장 자택 앞 건물 CCTV 화면에는 오후 8시 22분경 박 구청장이 퀴논길에서 약 70m 떨어진 자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박 구청장이 자택으로 들어가는 길을 ‘점검했다’고 말한 것 아니냐고 의심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용산구청에서 퀴논길을 거쳐 자택까지 걸리는 시간은 도보 6분 거리다.
오후 9시 30분경 자택 인근 퀴논길을 다시 둘러본 박 구청장은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이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인파가 많이 몰려 걱정된다. 신경 쓰고 있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도 박 구청장의 조치는 없었다.
박 구청장은 밤 10시 51분쯤 첫 보고를 받고 8분 뒤인 밤 10시 59분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태원상인연합회 회원이 박 구청장에게 압사 사고 소식을 밤 10시 48분경 알렸다고 한다. 박 구청장은 11월 7일 행안위 질의에서 “현장에 도착해 긴급 구조활동을 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용산구청 등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다음날 새벽 1시 30분까지 긴급 구조활동 보조 및 현장 통제를 했고, 긴급 의료지원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다만 용산 지역정가에서는 사고 당시 박 구청장을 현장에서 본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용산구 지역 소식에 밝은 한 관계자는 “새벽 3시경에 원효로 체육관에서 박 구청장을 봤다는 사람들은 있지만, 현장에서 본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고 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구청장이 현장에서 직접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피해자 시신 운반을 위해 새벽 2시 40분 원효로 다목적 체육관을 열었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 행적을 두고 여러 의문이 남는 가운데,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손절’ 분위기가 흐른다. 당내에서는 박 구청장을 향한 탈당 요구에 더해 징계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31일 박 구청장의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된다”는 발언에 대해서다. 당시 박 구청장은 “구청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하지만 박 구청장은 참사 이틀 전 열렸던 핼러윈 대책 회의조차도 불참했다. 참사 직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참사 3일 만에 공식 사과문을 냈다.
정치권에서는 유권자 투표를 거쳐 임기 만료 전에 해임하는 주민소환제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주민소환법 8조에 따르면 선출직 지방 공직자는 임기 개시일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없다. 박 구청장 임기는 7월 1일 시작됐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