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역 유해진과 함께 평단 호평 쌍끌이…“변화 즐기는 편, ‘너 변했다’는 말도 좋아해요”
“유해진 선배님은 좋은 얘기를 해주실 때 걱정도 많이 해주셔요. 워낙 좋은 분이셔서 ‘내가 선배니까 너 내 얘기 들어’ 이런 게 아니라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도 찝찝해 하시면서 ‘괜히 말한 것 같다, 넌 잘하고 있는데’ 하며 미안해하세요(웃음). 하지만 이 자리 빌어서 저는 그런 말씀이 너무 좋았다고 감사드리고 싶어요. 정말 진심으로, 많이 고민하고 얘기해주신 거란 걸 저도 아니까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시면 그게 계속 제 다음 작품에 묻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11월 23일 개봉하는 영화 ‘올빼미’는 조선 인조 시대에 발생한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 속 진실을 추적하는 스릴러 사극 영화다. 류준열이 맡은 경수는 낮에는 맹인이지만 밤에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주맹증을 앓고 있는 침술사로, 소현세자(김성철 분)를 곁에서 모시던 중 그의 죽음을 유일하게 목격하게 된다. 광기에 휩싸여 폭주하는 인조(유해진 분)에 맞서 소현세자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남은 세손과 세자빈을 보호하려 발버둥치는 그의 처절한 연기는 평단의 큰 호평을 이끌어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땐 짧아서 좋더라고요(웃음). 90페이지를 넘어가면 제가 읽기가 좀 어려워서, 제목이 주는 첫 인상도 좋았지만 저는 두께를 보고 출연을 결정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작품 자체가 정말 박진감 있고 몰입감도 굉장했어요. 하룻밤 만에 일어나는 일인데도 그런 부분들이 잘 녹아있거든요. 제가 맡은 경수가 맹인인데도 뛰어다니는 걸 보며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는데 막상 주맹증을 앓고 계시는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 보니 실제로 뛸 수 있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에게서 힌트를 얻어 연기에 녹여내려고 했죠.”
극 중에서 침술과 뜸을 다루는 어의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만큼 침술사 역인 류준열도 무엇보다 침을 놓는 연기에 공을 들여야 했다. 물론 현장에서 실제로 배우들의 피부에 직접 침을 놓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무로 만든 분장 위에 놓더라도 정확한 혈 자리에 놓아야 전문가가 봐도 거슬리지 않을 만큼 좋은 신이 탄생하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류준열은 현직 한의사들에게 직접 침술을 배울 수 있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의사 모임’이 있는데 그분들이 영화에 침술이 필요하면 도와주세요. 저희 현장에서도 오셔서 훈련을 시켜주셨고 침을 놓는 법도 알려주셨죠. 두루마리 휴지에 침을 꽂으면 사람 피부에 놓는 것과 비슷하대요. 얼마 전에 제가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을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께 ‘저도 침놓을 줄 알아요.’ 그랬거든요. 선생님이 제가 배운 침술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이 정도면 본인 침은 알아서 놔도 되겠다’고 대단하다고 해주시더라고요(웃음).”
영화에서 류준열의 경수와 극적인 대립을 이어가는 것은 유해진의 인조지만, 이들이 본격적으로 맞붙기 전에 류준열은 ‘인조의 사람’인 어의 이형익 역의 최무성과 먼저 한 판을 붙어야 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에서 시작된 인연이 7년 만에 스크린 재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두 배우 모두 상상도 못 했다고.
“사실 최무성 선배님과는 ‘응답하라 1988’ 때도 자주 뵙지 못했었는데 이번 촬영에서 오래 뵈니까 굉장히 푸근하시고, 농담도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란 걸 알게 됐어요. 좋은 형을 한 분 알게 된 거죠(웃음). 극 중 이형익이 경수의 눈에 침을 갑자기 가까이 갖다 대는 신이 있는데 현장에서 선배님이 진짜로 침을 들고 계셨어요. 끄트머리가 짧은 침이었고, 완성본에서는 그걸 CG(컴퓨터 그래픽)로 늘리는 식으로 편집했는데 그래도 제 입장에선 무섭잖아요. 그런데 선배님이 ‘내 옆에 아무도 오지 마!’ ‘내가 앉은 방석이 좀 불편한데 이러면 나 (침 갖다 대다가) 넘어질지도 몰라!’ 하셔서 저까지 괜히 긴장이 되더라고요(웃음).”
두 주연인 류준열과 유해진, 그리고 무게감 있는 조역으로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낸 최무성과 소현세자 역의 김성철 등이 극의 무거움을 담당할 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에서 신 스틸러로 활약했던 박명훈이 등장해 통통 튀는 가벼운 유머 코드를 심어줬다. 궁에 처음 들어온 경수를 이끌어주는 선배 침술사 만식 역을 맡은 그가 있어줬기에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다는 게 류준열의 이야기다.
“배우는 눈으로 많은 것을 표현해야 하고 저도 그러려고 애쓰는 편인데 눈이 작아서 어려워요(웃음). 그런데 명훈 선배님은 눈이 엄청 크셔서 그 안에 정말 많은 것을 담고 계시거든요. 이번 ‘올빼미’는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영화라서 쉬는 구석이 없는데도 선배님 덕에 그렇게 잘 나온 (쉴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극에 몰입하면서도 선배님이 나올 때만큼은 긴장을 풀고 무장해제하면서 볼 수 있는 장면요. 선배님이랑 저랑 같이 나오는 신을 보면 저도 정말 평소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있거든요. 그런데 티가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웃음).”
고생스러웠을 연기와 현장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실제 영화에서 류준열은 누구보다 진지한 모습으로 스크린을 채웠다. 유해진이 보여주는 광기 어린 연기에도 결코 휩쓸리거나 묻히지 않고 마지막 동이 틀 때까지 제 자리를 지키는 그의 연기력은 유해진의 변신과 함께 평단의 호평을 쌍끌이로 이끌어낼 정도였다. 류준열이란 배우에 아직까지 의구심을 가진 대중이 있다고 해도 ‘올빼미’만큼은 트집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의 말마따나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갖춰지는 ‘좋은 변화’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저는 변화가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너 변했어’라는 말도 늘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고요. 처음 데뷔했을 때 ‘갑자기 주목받고 있는데 주변 반응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도 변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해주신 분들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으면 네가 진짜 이상한 사람인 거야. 주목을 많이 받으면 변해야지 안 그러면 병도 나고 인간관계도 이상해진다’고 하셨어요. 주목을 받아서 변했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보기 마련인데 저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해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가 있을 때마다 맞춰서 저 역시 변해가야 한다고요. 제가 변화를 즐기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