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환원 효과 강조하지만 조 회장 최대 수혜, 불황 대비 대주주 부담 최소화 분석도…메리츠 “대주주 입장 고려 안해”
2011년 3월 25일 메리츠화재는 지주회사인 메리츠금융을 설립하기 위한 인적분할을 단행한다. 지주회사 설립으로 자본 조달의 효율을 높이고 새로운 사업분야로의 진출을 모색하겠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가장 큰 성과는 조정호 회장의 지배력 강화였다.
인적분할 전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화재 지분율은 24.6%에 불과했다. 분할 후 조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지분을 지주회사 신주와 바꾸면서 메리츠금융 지분율을 75%까지 높였다. 자사주를 활용해 자회사 지배력도 강화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배력을 높이던 인적분할의 마법이다. 당시 재계에서 널리 유행하던 방식이었다.
11년이 지난 2022년 11월 21일 메리츠금융은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는 주식이전·교환을 결정한다. 자회사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자회사의 영업현금흐름을 내재화해 지주사의 재무유연성을 증가시키겠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11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배구조 개편 내용을 꼼꼼히 살피면 최대 수혜자는 역시 조정호 회장이다.
메리츠금융은 이번 개편으로 조정호 회장 지분율이 79%에서 47%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주주환원을 강화하고 경영권 세습은 하지 않기로 한 조 회장의 ‘통 큰 결단’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발표 다음날 메리츠금융 3사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한다.
내용을 살펴보자. 메리츠금융은 연내에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주식(메리츠금융 보유분, 자사주, 우선주 등 제외)을 자사 주식으로 바꿔준다. 이 같은 상장사 간 주식 교환에서는 상대적 가치가 어떤 수준인지가 관건이다. 메리츠금융 기업가치가 메리츠화재나 메리츠증권보다 높을수록 대가로 지급할 신주가 적게 발행된다. 신주가 덜 발행되어야 메리츠금융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조정호 회장의 지분율 하락도 최소화된다. 메리츠금융 주가가 계열사들보다 높은 시점을 택해야 한다.
2011년 분할 후 3년가량은 메리츠금융 상장 3사 시가총액에서 지주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대에 머물렀다. 2014년부터 지주사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이 비중은 한때 40%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후 자회사들의 주가가 더 선전을 하면서 지난해 1월에는 다시 인적 분할하던 때와 비슷한 23%까지 떨어진다. 이후 반전이 이뤄진다.
지난해 메리츠금융 주가가 무려 350% 폭등한다. 메리츠화재도 130% 올랐지만 지주사에는 못 미친다. 메리츠증권은 40% 오르는 데에 그쳤다. 덕분에 올 1월 3사 시총에서 메리츠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43.75%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다. 이번 개편의 기준 주가로 메리츠금융 시총의 3사 내 비중은 33.86%다. 최근 10년 평균보다 5%포인트가량 높다. 메리츠금융 가치가 자회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시점을 골라 조정호 회장의 지배력 약화를 최소화시켰다는 뜻이다.
지난 3분기 말 메리츠금융 자본은 연결기준 5조 5505억 원이다. 자회사 자본이 반영된 부분은 약 3조 9000억 원이다. 화재와 증권이 완전자회사가 되면 이 수치가 배 가까이 늘어난다. 개편 후 메리츠금융 자본은 10조 원 정도로 예상된다. 이번 개편 이전 메리츠금융의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은 0.6배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는 자회사를 완전히 지배하는 메리츠금융의 기업가치를 8조 원 정도로 예상한다. PBR로 따지면 0.8배가량인 셈이다. 국내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메리츠화재 수익성의 비결은 자동차보험 같은, 돈이 잘 안 되는 보험부문은 최소화하고 자산운용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접근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한 중소기업 대출이다. 올해도 이 부문에 운용자산의 40%가량을 투입해 8% 이상의 수익률을 거뒀다. 위험관리가 잘 됐다는 전제로 기존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을 배제하더라도 고금리로 불황이 깊어지면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고수익 기회 자체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메리츠증권도 그동안의 주력 부문이던 자기매매와 투자은행(IB) 부문의 영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역시 수익 환경 악화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메리츠금융이 PBR 0.8배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기 쉽지 않은 시장 환경이다.
메리츠금융 자회사 주주들의 득실을 따져 보자. 메리츠지주 시총이 8조 원이 된다고 가정하고, 지배구조 개편 이후 발행주식수로 역산해보면 1주당 3만 7000원 정도가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주식교환의 대상이 될 메리츠화재·증권 주식의 가치를 추정하면 각각 4만 7572원, 6041원이다. 개편 발표 전보다는 33%가량 높은 주가다. 이 값은 개편 후 메리츠금융 기업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주식교환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으로 인해 메리츠화재·증권 주가는 이론적으로 3만 2793원, 4109원 아래로는 떨어지기 어렵다.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금융 보유지분 가치는 이번 교환 기준가격 기준 2조 4824억 원이다. 메리츠금융 주가가 시총 8조 원 수준(3만 7584원)까지 오르면 조 회장 지분가치는 3조 6394억 원으로 46.6% 불어난다. 반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일반주주들의 보유주식 가치는 교환가액 기준 각각 1조 3167억 원, 1조 10억 원이다. 메리츠금융 시총이 8조 원이 되면 이들 주식의 가치는 3조 924억 원으로 33.4% 커진다. 불리한 교환비율이 수익률의 차이로 이어지는 셈이다.
메리츠금융은 내년 3월까지 2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향후 3년간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의 50%를 주주에게 환원하기로 했다. 교환비율의 불리함은 배당에서도 이어진다. 배당 증가율에서도 조정호 회장이 일반 주주를 앞서게 된다. 자사주 매입이 병행될 경우 발행주식수가 줄어 조 회장 지분율을 높이는 효과가 발휘된다. 조 회장이 과반 지분율을 회복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경영권 승계는 하지 않더라도 주식을 물려줄 수는 있다. 해마다 수천억 원의 배당소득이 발생한다면 지분율 축소 없이 상속·증여를 할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만하다.
조 회장의 나이는 이제 64세이고, 자녀는 1남 2녀다. 부인인 구명진 씨는 아워홈 구자학 회장과 삼성 이재용 회장의 고모인 이숙희 씨의 딸이다. 구 씨는 아워홈 지분 19.6%도 보유하고 있다.
메리츠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불황에 발생할 수 있는 자본 확충 과정에서 대주주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 메리츠화재 자본은 6181억 원으로 경쟁사인 DB손보(5조 2364억 원)나 현대해상(4조 1749억 원)에 한참 못 미친다. 투자자산과 부채의 시가평가에서 발생한 기타포괄순손실이 지난해 3571억 원에서 올해 2조 8051억 원으로 폭증했다. 자칫 자본이 부족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메리츠화재는 올해 4월과 6월 1800억 원의 신종자본증권까지 발행했다.
기존 지배구조에서는 자회사 자본을 보강하려면 지주사가 상당한 자체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자회사에서 배당을 해도 절반이 외부 주주에게 유출되기 때문이다. 지주의 완전자회사가 되면 배당을 통해 외부로 나가는 현금흐름이 줄어든다. 메리츠증권은 그룹 내에서 이익 규모가 가장 크고 자기자본도 무려 5조 8000억 원에 달한다. 메리츠증권을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면 메리츠화재에 투입할 재원을 마련하기 쉽다.
이와 관련, 메리츠금융 관계자는 “특정 시점이 아닌 기준가격 산정 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완전 자회사 편입 시점이 지주사 주주에게는 오히려 불리하다. 대주주 입장을 고려한 결정이 아니다”면서 “장기적으로 이번 결정을 통해 주가가 상승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