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호날두 ‘마지막 도전’ 네이마르 ‘대표팀 무관’ 케인 ‘우승컵 0개’…살라·홀란드 본선조차 못 밟아
#이제 남은 것은 월드컵뿐
축구 역사에서 최고 평가를 받는 이들은 대부분 월드컵 우승으로 커리어에 방점을 찍었다. 펠레(브라질)는 10대 나이에 월드컵에 나서 6골을 넣으며 우승을 차지했고 그 이후 2개의 월드컵 트로피를 추가했다.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혼자 팀을 이끌다시피 한 활약으로 우승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독일), 지네딘 지단(프랑스), 호나우두(브라질)도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현재 역대 최고로 꼽히는 선수는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이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발롱도르를 주고받으며 현대 세계축구를 양분해왔다. 한 시즌에만 50~60골을 기록하는 등 경이적인 개인기록을 세워왔다. 개인 기록만큼 대회 우승 경험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각자의 리그에서 숱하게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각각 4회와 5회 경험했다.
각자 소속팀에서는 승승장구했지만 둘은 대표팀에서는 과거 레전드만큼 빛나지 못했다. 베테랑이 돼서야 코파아메리카(2021), 유로(2016)에서 정상에 오르며 대륙 챔피언을 경험했다. 메시와 호날두는 각각의 우승 순간 약속이나 한 듯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월드컵이다. 두 선수는 이전까지 월드컵과 유독 인연이 없었다. 메시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연장 승부 끝에 독일에 밀렸다. 호날두는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등 ‘황금세대’ 선배들과 함께 나선 2006 독일 월드컵(4강 진출)이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대회였다. 이후 세 번의 월드컵에서는 16강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메시와 호날두 모두 30대 후반에 접어든 만큼 이번 대회가 마지막 월드컵이 될 확률이 높다. 어느 때보다 의욕적으로 대회에 임하고 있다. 마침 각자의 팀 전력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에게 불안 요소는 존재한다.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최근 3년여간 무패행진을 달리며 호조를 보였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중원에서 조타수 역할을 맡는 지오바니 로 셀소가 부상으로 빠졌다. 공백은 대회 첫 경기부터 드러났다. 약체로 평가받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역전패하며 대회 최대 희생양이 됐다. 메시도 좋은 컨디션을 보이지는 못했다.
호날두는 소속팀과 문제로 한 바탕 소동을 벌였다. 대회 직전 TV쇼에 나서 "감독을 존중하지 않는다" 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향해 가시 돋친 발언을 쏟아냈다. '디스'에 대한 여파는 컸다. 맨유 관계자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계의 비판이 호날두를 향했다.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맨유는 호날두와 계약 해지를 발표했다. 포르투갈에는 현재 맨유에 소속된 선수도 있어 이 같은 잡음은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월드컵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절호의 기회 잡은 영원한 우승후보
메시, 호날두와 함께 한때 3파전 양상을 만들었던 네이마르(브라질) 역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앞선 두 명의 슈퍼스타와 비슷하게 네이마르는 모든 우승을 경험했으나 국가대표팀에서는 '우승복'이 없었다. 메시가 단번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올림픽에서도 한 차례 은메달에 그쳐 와일드카드로 다시 한 번 나섰다.
야심차게 뛰어든 자국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중도 하차했다. '에이스' 네이마르가 빠지자 브라질은 4강에서 독일에게 1-7로 참패하는 재앙을 겪기도 했다.
메시와 호날두가 우승을 맛본 대륙 대회에서도 네이마르는 불운했다. 나서는 대회마다 조기 탈락을 경험했다.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발목 부상으로 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밖에서 대회를 바라봤다. 그 사이 동료들은 네이마르 없이 우승에 성공했다.
강력한 전력이 유지된 2021년 대회,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 속에서 대회에 나섰고 결승에 진출하며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메시를 위해 똘똘 뭉친 아르헨티나를 넘지 못했다. 이로써 네이마르의 '대표팀 무관'은 10년 이상 진행 중이다.
이번 대회는 네이마르가 그간의 좌절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다. 다수의 축구계 인사들이 브라질을 '우승후보 1순위'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우승 경쟁국들이 부상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브라질은 두드러지는 전력 손실이 없는 점도 호재다. 네이마르도 부침이 있었던 지난 시즌과 달리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다.
#우승 트로피 0개 '무관의 제왕'
전 세계 스타들이 집결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제는 '또 다른 슈퍼리그'로 불릴 정도다. 이 리그에서 해리 케인(잉글랜드)은 최고 공격수로 불린다. 2014-2015시즌부터 단 한 시즌도 빠지지 않고 최소 17골 이상, 20개 이상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만 득점왕을 3회 수상했다. 2020-2021시즌을 기점으로 패스에도 눈을 뜨며 도움 능력도 향상됐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을 이어갔다. 17세 이하 대표팀부터 각 연령별 대표를 계속 거친 그는 2015년 3월 A대표팀에 데뷔했다. 통산 76경기에서 51골을 기록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역대 최다득점 기록(53골, 웨인 루니)까지 2골만 남겨두고 있다. A매치 20경기 출전을 채우기도 전에 대표팀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어왔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7경기에 출전, 6골을 넣으며 골든 부츠(득점왕)를 수상했다.
현 시대 최고 공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케인은 우승컵과 인연이 없다. 토트넘 홋스퍼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 임대 시절을 제외하면 줄곧 토트넘에서만 활약했지만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오랜 기간 토트넘에서 동고동락하고 있는 손흥민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이름값에 비해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는 잉글랜드 대표팀은 최근 수년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우승권에 근접한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회를 치렀지만 우승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케인이 득점왕에 오른 2018년 러시아에서는 4강에 머무르며 최종 4위를 기록했다. 유로 2020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선 케인은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에서 순조로운 시작을 알렸다. 대회 첫 경기, 까다로운 상대로 간주되는 이란을 만나 6-2 대승을 거뒀다. 직접 득점은 없었지만 동료들의 골을 도우며(2골)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우승 후보로 불리던 일부 국가가 어려움을 겪는 것에 비하면 기분 좋은 출발이다.
#월드컵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폴란드)도 현 시대 최고 공격수로 통한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2시즌간 활약하며 384경기 312골 75도움을 기록했다. 5년 연속 득점왕을 포함해 통산 7회 득점왕에 등극했다. 이에 더해 2020-2021시즌에는 리그 41골을 기록, 독일의 한 시즌 역대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한 시즌에 34경기만 치르는 분데스리가로선 놀라운 기록이었다. 레반도프스키는 그중에서도 29경기에만 나서면서 41골을 넣었다.
한 시즌 앞서서는 10경기에서 15골을 넣으며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시즌을 마치고 레반도프스키는 유력한 발롱도르 수상자로 떠올랐으나 최종 수상에는 실패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탓에 시상식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당시 시상식이 열렸다면 레반도프스키가 발롱도르를 차지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레반도프스키는 최고 공격수로 활약했다. 메시, 호날두, 케인보다는 국가대표팀의 전력이 떨어지기에 높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레반도프스키만큼은 맹활약을 이어갔다.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인 월드컵 무대에는 2018년 러시아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전까지는 유럽 지역예선에서 슬로바키아, 잉글랜드 등에 막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절치부심한 레반도프스키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본선으로 이끌었다. 10경기에서 15골을 넣는 골감각을 선보였다. 당시 월드컵 유럽 예선 최다골 기록이었다.
예선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였던 레반도프스키는 그러나 본선에서는 차갑게 식었다. 세네갈, 콜롬비아, 일본을 상대로 무득점에 그치며 팀의 16강 진출 실패를 지켜봐야 했다.
4년이 지난 이번 대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플레이오프를 거쳐 어렵게 월드컵 무대를 밟았지만 첫 경기 멕시코와 경기에서 페널티킥마저 골로 연결시키지 못한 채 침묵했다. 팀도 0-0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 1점에 그쳤다. A매치 135경기에서 76골 29도움이라는 화려한 기록을 갖고 있는 레반도프스키의 월드컵 본선 성적은 4경기 0골이다.
#본선 무대라도 밟았으면…
메시, 호날두, 케인, 레반도프스키가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이들이 마냥 부러울 스타들이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슈퍼스타인 카림 벤제마(프랑스), 모하메드 살라(이집트), 엘링 홀란드(노르웨이) 등은 부상 혹은 지역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집에서 월드컵을 지켜보게 됐다.
지난 10월 발롱도르 수상으로 명실상부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벤제마(프랑스)는 대표팀과 함께 카타르에 입성했으나 부상으로 중도 하차했다. 안타까운 점은 그의 프랑스 대표팀 동료들이 이미 대부분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을 하던 때 벤제마는 대표팀에서 문제아적 행동으로 선발에서 제외됐다. 야심차게 대표팀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엔 불의의 부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됐다.
살라와 홀란드는 지역예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살라는 아프리카 지역 예선 2라운드를 통과했으나 3라운드에서 난적 세네갈을 만났다. 당시 소속팀 리버풀 동료였던 사디오 마네가 이끄는 세네갈과 1, 2차전 합계 1-1로 동률을 이뤘고 승부차기 끝에 월드컵 티켓을 놓쳤다. 살라는 승부차기에서 실축으로 기회를 날렸다.
‘차세대 공격수’ 홀란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2~3년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그는 노르웨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23경기 21골이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 같은 괴력에도 월드컵 본선 진출은 역부족이었다. 홀란드의 월드컵행을 막아세운 주인공은 네덜란드였다. 노르웨이는 튀르기예에도 밀리며 플레이오프로 가는 기회조차 놓쳤다.
메시부터 홀란드까지 슈퍼스타들이 이번 대회를 포함해 앞으로 월드컵에서 우승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뛰어난 선수임에는 변함이 없다. 축구 역사에서 대회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충분한 기량을 선보인다면 최고의 반열로 함께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우어 등과 함께 ‘위대한 전설’로 불리는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미셸 플라티니(프랑스), 지쿠(브라질) 등은 모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