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명줄’ 좌우…실적 때빼고 광내고
▲ 지난해 열린 공공기관 선진화 위크숍. 청와대사진기자단 |
실제로 지난해 201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기관장 중 최하등급을 받은 조남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기획재정부의 해임 건의가 나오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9년에 이어 2년 연속 미흡 평가를 받은 민계홍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이사장, 심호진 한국어촌어항협회장도 해임 건의에 사퇴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공기관은 경영실적 보고서를 낸 뒤 6월 말에 평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슴을 졸이는 시간을 보낸다.
기획재정부는 이미 최종원 서울대 교수를 단장으로 한 149명의 경영평가단을 구성하고 공공기관의 경영실적 보고서 제출을 기다리고 있다. 교수와 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경영평가단은 경영실적 보고서를 바탕으로 109개 공공기관의 2011년도 경영실적과 6개월 이상 근무한 기관장 76명, 상임감사 59명의 직무이행 실적을 6월 20일까지 평가하게 된다. 이들의 평가 결과에 따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기관 임직원의 성과급이 결정되며 실적이 부진한 임원은 해임이 건의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공공기관들로서는 경영평가단에게 제출할 경영실적 보고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경영실적 보고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다. 3개월 사이에 경영실적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해야 하는데 계량평가는 수치가 적용되기 때문에 작성에 어려움이 다소 적은 편이다. 계량평가는 전년도에 비해 예산이나 인원, 영업이익, 국민만족 여론이 늘었는지, 줄었는지에 따라 작성되기 때문이다.
반면 비계량평가는 계량평가와 달리 명확한 수치화가 되어 있지 않아 작성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우수한 경영실적을 거뒀다고 했다가는 페널티를 받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
계량평가와 비계량평가의 항목별 점수배점은 공공기관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공공기관은 크게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으로 나뉜다. 공기업은 인천국제공항공사나 한국도로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사회기반시설(SOC) 계획과 건설, 운용 등을 하는 곳으로 총 27개다. 준정부기관은 총 82개인데 이는 다시 공무원연금공단과 같은 기금관리형(13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위탁집행형(19개),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중소형(50개)으로 나뉜다.
점수배점은 크게 공기업과 위탁집행형, 기금관리형, 중소기업형 네 가지에 따라 다르게 주어진다. 공기업의 경우 계량평가가 60점, 비계량이 40점이다. 위탁집행형은 계량평가와 비계량평가가 각각 50점씩이다. 기금관리형은 계량평가는 48∼51점, 비계량평가는 49∼52점이다. 이들 간 점수 차이는 ‘주요사업 평가’에 대한 점수 비중의 차이에 따른 것이고 다른 평가지표 당 점수 배정은 대동소이하다. 한편 중소형은 비계량평가 10점, 계량평가 50점 등 총 60점이다.
중소형을 제외하면 비계량평가가 40∼52점이나 되지만 자체 평가를 내리기에 애매하다. 비계량평가 중 리더십은 5점, 책임경영 3점, 조직 및 인적자원 관리 4점, 노사관리 3점 등으로 점수가 상당히 높다. 또 비계량평가는 C등급(보통)을 기준으로 A에서 E까지 5개 등급을 구분하고, 각각의 등급에서 보다 우수한 성과를 낸 경우 플러스(+) 점수를 부여해 총 9개 등급으로 이뤄져 점수 편차가 심한 편이다. 이처럼 점수 비중이 높고 점수 편차가 크지만 작성을 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많다.
기획재정부가 각 공공기관에 내려 보낸 <2012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을 봐도 애매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리더십의 경우 △기관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비전과 핵심가치 설정을 위한 기관장의 노력과 성과 △중장기 경영전략 수립과 실행을 위한 기관장의 노력과 성과 등으로 되어 있다. 사회적 기여는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의식, 관행, 제도 등의 불공정 사항을 개선하고, 균등한 기회 및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과 성과 △기관 설립 목적과 업무 특성에 맞는 사회봉사활동 수행, 물가안정 및 사회적 신뢰구축 등이 평가내용이다.
이처럼 비계량평가의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보니 공공기관들은 경영실적 보고서 작성을 위해 외부 교수나 학자들의 손을 빌리는 일이 다반사다. 모 대형 공기업의 경우 경영실적 보고서 작성을 위해 박사급 자문위원만 50여 명 동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교수들 중에서도 공공기관 평가위원이었던 교수들이 공공기관 경영실적 보고서 작성 자문위원 영순위 대상자라고 한다. 정부는 공공기관 평가위원으로 선정된 교수들이 자문위원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정부의 공공기관 평가가 지나치게 계량평가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 2007년 공공기관 중 공기업의 평가 점수 배정은 계량평가가 100점 만점 중 40점에 불과했다. 그런데 계량평가가 2008년 45점, 2009년 50점, 2010년 55점으로 점차 오르더니 2011년으로 60점까지 높아졌다. 기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경영의 효율성만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공공기관들은 인력규모가 적은 곳은 300명, 많은 곳은 1만 명이 넘는다. 매출액도 600억 원부터 20조 원까지 격차가 크다. 이들 공공기관을 한데 묶어 경영 효율로만 평가받는 것 자체가 불공평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공공기관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단순히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가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 물론 방만 운영 등으로 국민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곳도 있지만 공익성 때문에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지난해 물가안정을 위해 전기료, 가스료 등의 인상폭을 최소화하면서 한전과 가스공사 등은 적자폭을 줄이지 못했다”면서 “너무 평가 비중을 수익에만 맞추다보면 공익성을 놓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공공기관 설립 목적이 민간기업이 하기 어려운 공익적 업무를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지나치게 계량평가 쪽으로 흐르는 평가 지표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