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미술계·종교계 1인3역 척척
▲ 지난 2004년 1월9일 이건희 회장 부부가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올해도 이 시상식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1월9일 전에 귀국할 것이란 말이 돌았으나 이 회장은 귀국하지 않았다. | ||
때문에 외부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첫째는 홍씨 가문의 장녀이자 보광그룹 홍씨 형제들의 버팀목으로서의 모습이고 두 번째는 미술경영자로서의 활동이고, 세 번째는 종교인으로서의 활동이다.
홍 관장은 부친인 홍진기 회장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전주에서 판사 생활을 하다 얻은 첫딸에게 홍 전 회장은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이라는 뜻의 라희(羅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이름 외에 집안에서는 ‘선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름 그대로 홍 전 회장에게 홍 관장은 기쁨이었다. 모친을 닮아 외모도 출중했고 부친의 기대대로 반듯하게 크고 효심이나 형제 간의 우애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게다가 공직자 가문이던 홍씨가 재벌 반열에 오른 것도 홍 전 회장이 삼성 이병철 회장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이건희 회장을 사위로 맞았다는 점이 한몫했으니 홍 관장이 홍 전 회장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홍 관장은 동생들도 지극히 배려했다. 지난 86년 부친이 세상을 뜨자 홍 관장은 자신의 유산을 하나뿐인 여동생 홍라영 삼성미술관 부관장에게 돌렸다. 현재 홍라영 부관장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수석부관장이자 휘닉스벤딩서비스의 최대주주이며 보광그룹의 주요주주다. 이는 홍라희 관장의 ‘배려’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보광의 대도시 음료자동판매기 사업을 시작으로, 편의점 사업인 훼미리마트나 스키리조트인 휘닉스파크,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휘닉스피디이, 광고대행사인 휘닉스커뮤니케이션, 지금도 제일제당 등 범 삼성가의 지분이 남아있는 중앙일보 등 홍씨 일문 소유의 기업군들에서 ‘홍라희’라는 버팀목의 그림자를 찾기 어렵지 않다.
홍 관장은 최근 미술계 설문에서 영향력 1위 인물로 꼽힐 만큼 미술계 최고의 파워우먼이기도 하다.
홍 관장은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에 재학중이던 지난 65년 국전 공예부문에 입선한 경력도 있다. 그때 홍진기 전 회장이 수상작품 관람을 이유로 전시회장을 찾은 이병철 회장의 안내를 홍 관장에게 맡겨 이병철 회장의 셋째 며느리감으로 낙점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당대 최고의 고미술 콜렉터로 평가받던 이병철 회장은 셋째 며느리인 홍 관장에게도 소액의 돈을 쥐어주면서 미술품을 사오게 하는 등 콜렉터 교육을 시켰다.
▲ 홍라희 리움 관장(오른쪽서 세 번째)이 지난 98년 차녀 서현씨(오른쪽서 두 번째)와 함께 미술관을 돌아보고 있다. | ||
현재 삼성은 용인의 호암미술관, 삼성본관 옆의 로댕갤러리, 그리고 한남동 리움까지 세 곳의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자체에서도 이런 미술과 문화 분야 활동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한용외 사장이나 부산상고를 나온 이실 부사장은 모두 삼성그룹 비서실을 거친 인물. 홍 관장이 관할하고 있는 미술관 사업도 이 회장 부부의 개인재산을 다룬다는 점에서 구조본 관재팀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얘기다.
홍 관장의 활동 중 세 번째 분야는 종교. 알려진 대로 홍 관장은 독실한 원불교 신자다. 이는 집안 내림이다.
부친인 홍진기 전 장관이 자유당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에 이어 내무부 장관을 지내다가 4·19 혁명이 일어나고 영어의 몸이 됐다. 당시 홍 관장의 친정은 원남동쪽에 있었다. 홍진기 전 회장의 부인인 김윤남씨는 남편이 곤경에 처하자 종교에 의지하며 마음을 달랬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원남동 홍 전 회장 집에서 길만 건너면 갈 수 있던 곳이 원불교 원남교당. 그때부터 홍씨 집안은 원불교를 믿었다. 홍 전 회장의 부인 김윤남씨와 처남 김홍준씨가 모두 원불교 평신도 단체에서 가장 높은 직함을 갖는 등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다.
홍라희 관장도 집안내력으로 원불교 신앙생활에 열심이다. 막내딸 이윤형씨의 49제가 진행된 곳도 원불교 원남교당이다.
또한 홍 관장은 불이회라는 여성불자 단체의 회장이기도 하다. 불이회에선 20년째 불교계 젊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제정한 불이상을 시상하고 있다. 매해 전국 명찰을 찾아 법문을 듣는 불이회 회원에는 홍 관장의 사돈인 박현주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부인 등 재벌가 여성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홍 관장과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은 불이회를 통해 사돈의 연을 맺었다.
이런 미술계쪽 일이나 사회사업쪽 일 등 홍 관장을 바쁘게 하는 일은 많지만 홍 관장이 1순위로 두는 것은 이건희 회장과 관련된 일이다. 홍 관장은 이 회장이 외국 출장을 나갈 땐 될 수 있으면 동행한다. 이 회장이 폐암 진단을 받은 뒤에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홍 관장은 이 회장과 함께하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