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안하고 배당 쥐꼬리…‘ 넌 뭐니?’
한국장학재단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각 결과를 놓고 증권가에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일단 주간사인 동양증권 측에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한 투자자가 적지 않은 만큼 어찌됐건 이번 매각 결과 삼성에버랜드의 주주 구성이 바뀔 확률이 높아졌다. 이제 당분간 삼성에버랜드의 주주는 삼성의 특수관계인과, KCC, 그리고 제3의 투자자로 이뤄질 듯하다. 현재로선 ‘제3의 투자자’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쥐게 될 삼성에버랜드 지분의 의미는 묘하다.
애초에 이번 지분매각은 일반적 투자대상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삼성그룹 측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등을 앞으로 상당기간 상장하지 않겠다고 공식화하면서 환금성에 치명적인 약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삼성에버랜드가 상장을 통해 그룹의 빚을 갚아준 삼성생명과 같은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여지없이 빗나간 셈이다.
사실 이는 삼성카드가 보유지분을 KCC에 매각하면서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됐다. 삼성카드로서는 합리적인 수준에 금산법이 금지하는 5% 초과지분을 매각했어야 했는데, 팔 곳이 마땅찮다보니 상장설이 흘러나왔다. 삼성에버랜드의 ‘강철 같은’ 재무구조를 감안하면 자금이 필요해 상장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하지만 어찌됐건 KCC가 지분을 인수했고, 삼성카드는 상당한 짐을 덜게 됐다. 이 시점에서 사실상 한국장학재단의 지분매각 실현 가능성은 상당히 떨어졌다.
이와 관련, 시장에서는 한국장학재단이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매각 전에 매각작업을 완료했었어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장학재단은 2011년 초부터 계획을 밝히고 절차를 진행했지만 행보는 더뎠다. 5월에야 매각 주간사로 동양증권을 정했고, 9월에야 매각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매각공고가 나온 것은 올 들어서다. 그 사이인 지난해 12월 초 삼성카드는 KCC에 보유지분을 전격 매각했다.
동양증권 측은 검토대상이 많아 시간이 지연된 것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매각을 기다렸다는 의혹이 나왔다. 일각에선 지난해 9월 매각안이 확정됐을 때도 이미 투자자는 상당히 많았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삼성카드가 KCC에 지분을 매각하기 전만 해도 삼성에버랜드의 상장가능성이 점쳐졌고, 삼성그룹도 이에 대해 구체적인 부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KCC를 상대로 한 매각이 이뤄지면서 사실상 상장 가능성은 없어졌다. 상장의 필요성은 합리적인 매각을 위해 제기됐는데, 합리적인 매각이 이뤄진 만큼 상장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향후 상장 가능성도 거의 사라졌다. 삼성카드는 장부가보다 할인된 값으로 KCC에 보유지분을 넘겼다. 할인의 이유는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KCC에 지분을 매각한 이후 삼성은 두 차례에 걸쳐 삼성에버랜드 상장 가능성을 부인했다.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입’을 통해 한 번, 그룹 공식 발표를 통해 한 번이다. ‘대못’을 박은 셈이다.
지분매각에 관여한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매각작업이 쉽지 않았다.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게 치명적 약점이었다. 그런데 KCC는 환금성이 떨어지는 점을 감수했다”면서 “이면계약은 없었지만 아마 삼성그룹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사업기회를 가져보자는 뜻으로 보였다”고 귀띔했다. KCC의 주력사업은 도료 및 소재와 실리콘이다. 이 분야에서는 최근 IT와 연관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IT 거인이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17%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상법상 3% 이상 주주가 가진 권한은 이사선임과 회사 검사, 주주대표소송 등 상당하다. 증권가 관계자는 “이 정도면 삼성그룹이 KCC와 거래를 늘려야 할 이유도 될 만하다”면서 “KCC쯤 되는 회사라면, 삼성에버랜드 주식에서 직접적인 현금흐름은 만들지 못해도 사업협력을 통한 간접적인 수익은 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그런데 한국장학재단 보유지분 4.25%의 의미는 다르다. 동양증권이 작성한 투자설명서를 보면 앞으로 기업가치가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삼성에버랜드 기업가치가 더 좋아져도 비상장사라면 주주혜택은 배당뿐인데, 연 0.2%로 은행이자도 안 된다. 상장을 안 한다면 사실상 ‘종이쪽지’인 셈이다. 주주제안을 활용하면 사외이사 자리나 하나쯤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투입 자금대비 수익이라 할 정도의 돈은 안 된다.
흥미로운 점은 삼성그룹 측으로서는 이번 한국장학재단의 지분매각이 흥행하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카드는 아직도 8%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 가운데 5% 초과분을 매각해야 한다. 한국장학재단이 너무 잘 팔아버리면 삼성카드도 부담이다. 4% 미만의 지분 정도면 삼성의 다른 계열사나 우호세력에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장학재단의 매각가격이 너무 높아지면 이전 KCC로의 지분매각은 물론, 앞으로의 지분매각도 세간의 입방아에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국장학재단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각에는 꽤 많은 입찰이 있었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증권사, 자산운용사는 물론 기관투자자까지 입찰에 참여했다. 구체적인 매각 규모와 매각 가격은 오는 26일 본입찰에 확정되겠지만, 성공적이 매각 작업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귀띔했다.
그럼 투자자산으로서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관심을 받는 이유는 뭘까? 주식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지만, 옵션으로서의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실상 만기미정의 옵션이다. 수익률 역시 미지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상장이 된다면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입찰에 참여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재용 사장의 후계구도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 상장 외에 거액을 만들 방법은 거의 없다. 5년 후가 될 지, 10년 후가 될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반드시 상장을 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즉 거액자산가들의 경우 당장이 아니라 10년, 20년까지 내다보고 투자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한편 상장이 아니더라도 투자자산으로서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의미를 가질 실낱같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가능성이 아주 낮기는 하지만, 삼성그룹에 지분경쟁이 벌어지는 경우다.
최근 불거진 삼성가의 유산다툼은 그중 하나다. 삼성생명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지배력이 낮아진다면, 삼성에버랜드가 가진 삼성생명 지분의 가치가 높아진다. 또 다른 가능성은 현재 삼성그룹의 후계구도에 변화가 올 경우다. ‘황태자’ 이재용 사장이 가진 지분은 25%. 만에 하나 후계 경쟁이 벌어진다면 KCC 등 다른 주주들의 지분은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