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부 검사 일부 쌍방울 수사팀 파견 성과 내지만 한편에선 검사 1인당 미제 100건 ‘산처럼 쌓여’
윗선에서도 챙기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때문에 연말마다 모든 지청에서는 “미제사건을 최대한 해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지청이나 부 특성 상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형사부의 경우 검사마다 미제사건 규모를 정해주고 “최대한 사건을 마무리해 미제사건을 최소화하라”고 독촉한다.
하지만 최근 검찰은 미제사건이 고민이다. 사건 수에 비해 검사들의 수가 적다 보니 형사부 검사들은 ‘미제사건과의 전쟁’을 벌이는 판국이다. 이런 문제가 심각한 곳은 대규모 특수 수사가 진행 중인 곳들이다. 검사들이 대거 특수 수사에 동원되면서 형사부에 빈자리가 발생했기 때문인데, 최근 검사들 사이에서는 ‘수원지검 장기미제’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검사 1명당 장기 미제 100건 넘어
수년 전만 해도 검사 1명당 미제사건은 10~20건 수준이었다. 연말이 되면 10건 밑으로 미제사건 수를 줄여놓는 것이 인사고과에 유리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검사 수에 비해 쌓이는 사건 수가 더 많으면서 최근 미제사건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2020년 기준 검찰의 미제사건은 총 9만 2869건으로 2015년 4만 1826건에 비해 2.2배 증가했다. 2020년 기준 서울중앙지검이 3개월 초과 미제사건 3970건, 6개월 초과 미제사건 8977건이었다. 형사·공판부를 확대하는 조치들이 있었지만, 검사 인력 부족이 고질적으로 누적된 탓이다.
증권·금융범죄 사건처럼 복잡한 사건의 경우를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2017년도부터 2021년도까지 5년 동안 검찰은 증권·금융범죄 사건을 7903건 접수했지만, 처리한 것은 5177건에 그쳤다. 5년 동안 2726건의 미제사건이 쌓인 것인데, 문제는 쌓이는 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지검과 대전지검 역시 2015년과 2020년을 비교했을 때, 최근 5년 사이 미제사건이 각각 5배(344건→1682건)와 3.55배(2505건→8874건) 늘었다.
#‘산처럼’ 사건 쌓였다는 수원지검
이런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수원지검이 거론된다. 미제사건이 ‘산처럼 쌓였다’는 애기가 나온다. 실제로 수원지검 형사부 검사들의 1인당 평균 미제 사건은 평균 100건이 넘을 정도라고 한다. 수원 일대에 사건이 급증한 것에 비해, 형사부 검사 수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몇몇 검사실에는 300건 이상의 미제사건이 있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수원지검에 미제사건이 가장 많은 이유는 형사부가 위치한 1차장검사 산하의 검사와 수사관들 중 일부가 2차장 산하 쌍방울 관련 수사팀에 파견을 갔기 때문”이라며 “검사 수가 적다보니 형사부 사건 처리 속도가 현격히 낮고 그러다 보니 미제사건은 쌓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원지검에서 특수 수사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 부서들(형사6부, 공공수사부 등)은 이미 한 차례 대검찰청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수사 미진을 이유로, 차장검사가 교체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후 수원지검은 강도 높게 대북송금 등 쌍방울 관련 사건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쌍방울 관련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회장의 매제 신병 확보에도 성공했다.
김 전 회장을 잘 아는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매제는 CB(전환사채) 발행부터 돈 흐름까지, 김 전 회장의 옆에서 자금 관련을 총괄하던 최측근”이라며 “태국에서 귀국을 원치 않고 있지만, 한국으로 신병을 데려올 수 있다면 검찰 수사는 8부 능선을 넘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그만큼 형사부 소속 검사들은 힘들어한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수원지검의 주요 사건들에 대해 대검찰청에서는 만족도가 높다고 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수원지검의 일반적인 사건들을 처리하는 형사부 검사들은 힘들어서 죽으려고 한다”며 “이는 꼭 수원지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등 굵직한 사건들이 진행되는 곳들은 특수 사건을 수사하는 부서와 형사 사건 부서 간 분위기가 조금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나서 ‘증원’하는 이유
법무부가 검사 증원을 통해 미제사건 해결 및 분위기 개선을 추진하는 이유다. 법무부는 검사 정원을 220명 늘리는 내용이 담긴 검사정원법 개정안을 12월 9일 입법예고했다. 현행 법률상 검사는 2292명으로 정원이 묶여 있는데 개정안에 따르면 검사 2512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검사 정원은 2014년 법 개정으로 350명이 늘어난 이후 지금까지 변동이 없었는데, 법무부는 제대로 된 업무 처리를 위해 검사 정원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수사권조정 이후 형사사건 처리 절차가 복잡해졌고 업무 비효율성이 증대해 사건 처리 지연, 재판 지연 등 국민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5년 동안 검사 정원을 매년 40~50명씩 증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특수통 전성시대’가 다시 온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부 소속 경험이 많은 한 전관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특수부에서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검사들을 중용하면서 특수부와 형사부로 나뉘어 갈등 분위기가 있었다”며 “최근에도 특수 수사를 하는 이들이 언론은 물론 대검찰청 등 수뇌부의 주목을 받다 보니 형사부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는 보통 검사들의 사기가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수통은 분명 검찰 안에 필요한 인재지만, 보통 검사들의 사기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