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효성 3세 등 ‘VIP 모임’ 중심 수사망 확대…확실한 성과로 ‘검수원복’ 필요성 입증하려 할 듯
마약을 판매한 이들을 통한 ‘수사 대상 확대’ 패턴도 여전히 유효하다. 서울중앙지검도 최근 가수와 재벌 3세들이 대거 엮인 마약 투약 일당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대마를 재배해 판매한 이를 검찰에 넘겼는데,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이들과 거래한 ‘재벌 3세’를 잡는 데 성공했다. 사정당국 안팎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만큼, ‘공급책 검거를 통한 마약 매수자들 기소’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연스레 연예계와 재벌 3세들이 언론에 등장하는 일도 많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혐의 모두 인정한 돈스파이크
12월 6일 열린 돈스파이크 재판은 15분여 만에 끝이 났다. 검찰에 따르면 돈스파이크는 전형적인 마약 거래 방식을 따랐다. 지인이나 판매자와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한 뒤, 던지기 방식(특정 장소에 마약을 두고 가면 이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패턴이었다. 2021년 12월부터 2022년 9월까지 10개월 동안 9회에 걸쳐 구매한 필로폰의 양은 105g, 약 4500만 원 상당이다. 김 씨는 주사기나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후리베이스)으로 필로폰을 투약했다. 다른 사람에게 필로폰이나 엑스터시를 건네는 ‘매매상’의 역할도 했다.
관련 검찰 관계자는 “마약은 혼자 하지 않고 여럿이 하는데, 검찰 수사를 하다 보면 마약을 판매한 이들이 처벌을 덜 받기 위해 수사에 협조하고 함께 마약을 투약한 이들의 신병을 넘긴다”며 “마약 투약 경험이 많은 이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패턴의 사건이 돈스파이크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재계 3세들 마약 모임도 ‘검거’
12월 2일에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신준호 부장검사)가 마약 수사 성과를 공개했다. 남양유업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의 손자인 홍 아무개 씨와 가수 안 아무개 씨 등 7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범 효성가 3세인 조 아무개 등 2명을 함께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방 소재 금융지주사의 회장을 역임했던 이의 사위도 포함된 VIP 마약 모임이었다. 특히 남양유업 창업주 손자 홍 씨는 대마초를 투약한 것에 그치지 않고, 친한 지인이나 유학생들에게 자신의 대마초를 나눠준 뒤 함께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경찰이 검거해 넘긴 대마 재배·판매상 A 씨를 추가 수사해, 가수 안 씨 등과의 거래를 확인했다. 안 씨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안 씨의 마약 투약 멤버들을 확인하는 수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남양유업 창업주 손자와 범 효성가 3세 등 재계 3세들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검찰의 수사는 9명에서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은 다른 재벌 기업 자제 등 부유층 자녀들도 함께 마약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망을 넓히고 있다. 재벌가 3세와 연예인 등의 마약 스캔들이 계속 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찰과 검찰로 수사 주체는 달랐지만 ‘공급책 검거를 통한 마약 매수자들 기소’로 가는 전형적인 수사 방식이었다. 마약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마약하는 이들끼리는 ‘의리’가 없는 편”이라며 “검찰이 마약 판매·투약 횟수를 제한적으로 기소하는 방식으로 수사 협조 시 배려를 하면 거의 모든 마약 판매상들은 구매자들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다. 전형적인 마약 수사하는 방식이 이번에도 유효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동훈 장관 전쟁 선포 속 ‘마약’ 사건 늘어날 듯
문제는 마약 유통과 마약사범 검거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함께 마약 투약한 이들이 있는지 추가 수사하고 있는 상황으로, 더욱 속도를 내 12월 중순에는 사건을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최근 한국은 마약이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최종 소비지가 되어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마약 사범은 857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562명)에 비해 13.4% 증가했다. 마약류 공급사범(밀수·밀매·밀조 등) 역시 243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8%나 늘었다.
한동훈 장관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다. 한 장관은 올해 열린 국정감사에서 “마약 청정국과 오염국 사이에 중간은 없다고 본다. 무리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10월에는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달라”며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 이원석 검찰총장 역시 국정감사에서 “관세청, 식약처 등 유관 기관과 마약류 밀수, 의료용 및 인터넷 마약 불법 유통을 단속하는 광역 단위 합동 수사를 벌이겠다”며 수사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국내 마약 유통 범죄 수사를 검찰이 다시 할 수 있게 한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도 11월 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검찰 수사권이 다시 생긴 만큼 ‘수사권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동시에, 전통적인 홍보 효과를 위해 유명인(연예인), 재벌 3세 등을 집중적으로 검거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동훈 장관의 전쟁 선포 이후, 한 달 보름여 만에 서울중앙지검이 ‘재벌 3세 마약 일당 검거’라는 성과를 공개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평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한동훈 장관과 검찰 수뇌부는 국민들을 상대로 ‘검찰의 수사권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줘야 하고 마약 사건은 전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전형적인 민생 범죄”라며 “마약 사건은 언론이 모르는 인물 10명을 잡는 것보다 유명인 1명 잡는 게 경고 효과가 더 크기에 항상 유명인을 향해 가는 부분이 있다”며 향후 검찰의 수사 방향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