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흑자 불구 “곽재선 회장이 지시” 소문…KG그룹 “소통 과정에서 오해로 빚어진 실수”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KG스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여기서 회장은 곽재선 KG그룹 회장을 의미한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곽재선 회장과 KG스틸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KG스틸 전신은 동부제철이다. 중견 철강사였던 동부제철은 2014년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가 5년 만에 KG그룹을 만나 결합한 바 있다. KG그룹은 2019년 동부제철을 인수했고, 2022년 2월 KG스틸로 사명을 변경했다.
KG스틸을 만나기 전부터 곽재선 회장은 인수합병(M&A) 대가로 불렸다. 그는 적극적인 M&A로 회사를 키웠다. 곽 회장 인수 건은 경영난에 시달리던 회사를 인수해 숨통을 틔운 경우가 많았다. 곽 회장이 인수한 회사는 종목도 가리지 않는 듯했다. KG케미칼, KG ETS 같은 중후장대 산업도 있지만, 언론사도 있었고, KFC나 할리스 같은 식음료(F&B)도 있었다. 그렇게 곽 회장은 KG그룹을 일궈냈다.
곽 회장 명성의 화룡점정은 KG스틸이다. KG그룹이 KG스틸을 인수할 때 우려 목소리가 컸다. KG스틸 인수 전 KG그룹 전체 자산 규모와 KG스틸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부채 비율도 엄청나 이자 비용도 막대했다. 항간에선 곽 회장이 만용을 부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인수전은 성공했지만, ‘승자의 저주’처럼 곧 회사 전체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우려와 달리 KG스틸은 2020년부터 본격적인 턴어라운드를 시작해 2021년 7년 만에 매출액 3조 원을 다시 회복했다. 영업이익은 인수 직후인 2019년 346억 원에서 2021년 2970억 원으로 약 8배 늘어났다. KG스틸은 2022년 영업이익 3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KG스틸은 곽 회장이 경영 정상화의 대가란 얘기가 나오는 가장 큰 배경이 됐다.
그런데 정작 KG스틸 내부 구성원과 곽 회장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다. KG스틸 내부에서는 회사가 영업이익 3000억 원을 기록했지만 곽 회장이나 그룹 본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한 KG스틸 관계자는 블라인드 글이 사실이라고 얘기했다. 이 관계자는 “곽 회장 직접 지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장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사표를 받아 놓고 내년 1월까지 실적을 더 개선하지 못하면 바로 자르겠다는 식이다. 법적 강제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요식행위라 하더라도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어이없어했다.
KG그룹 관계자는 “KG스틸에서 사업 계획과 실제 성과가 다른 부분이 있었고, 책임감을 갖고 하라는 뜻으로 강하게 얘기했는데 이를 계열사 관계자가 확대 해석해 행동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계열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 줄 몰랐다. KG는 직원들한테 실적으로 사직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해명했다.
곽 회장이 이런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철강업계 전체 분위기도 좋지 않아 KG스틸 실적이 내림세를 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철강업계 관계자 A 씨는 “연초 좋았던 분위기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재고가 쌓이고 적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KG스틸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2분기는 영업이익 1230억 원을 기록했지만, 3분기는 757억 원을 기록해 흑자 폭이 줄어들었다.
논란이 된 블라인드 글은 “이때까지 곽 회장 자신이 잘해서 회사 실적이 개선된 줄 아는데 어이없다. 운으로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겠다”며 “정말 암흑기가 오면 철강 바닥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고도 했다. 블라인드 글처럼 KG스틸 내부에서는 곽 회장의 사표 요구에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철강업계에서는 곽 회장 지시와 블라인드 글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또 다른 철강업계 관계자 B 씨는 “2020년, 2021년은 철강업계 역대급 해였다. 곽 회장이 M&A 전문가인 만큼 뛰어난 전략을 발휘했을 수도 있고, 철강업계 활황기를 미리 예견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운도 따라준 건 사실”이라고 평했다. B 씨는 “지금 생각나는 철강회사 재무제표를 보면 대부분 2020년부터 2022년 3분기까지 역대급 실적을 쓴 곳이 많을 거다. 철강업계가 역대급 호황을 누린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B 씨는 곽 회장이 사표까지 받으며 실적 개선을 지시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B 씨는 “여러 가지 지표가 앞으로 철강업계가 짧게 봐도 당분간은 좋기가 매우 어렵다”고 봤다. 그는 당분간 4가지 이유로 철강업계 실적이 2020년부터 2022년 이상을 기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그가 앞으로 철강업계를 어둡게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수요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인테리어, 리모델링 붐이 불었고 가전제품 수요도 불이 붙었다. 신차 출고 대기가 1년 이상 길어질 정도로 차량 주문이 쇄도했다. 리모델링이나 가전제품은 한 번 바꾸면 교체 시점이 오래 걸린다. 당분간 그 시절 호황을 기대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금리 인상으로 각 회사에서 투자를 줄이면서 장비나 설비 교체 주기가 길어지게 되면서 생기는 문제다. 생존하던 회사도 부도가 나고 있고, 스타트업은 투자 받지 못해 사라지고 있다. 각 회사는 창고나 공장을 새로 짓는 일도 뒤로 미루고 있다. 각 회사가 설비 교체를 미루고 장비를 바꾸지 않으면 그만큼 철 소비는 줄어든다.
세 번째는 건설 경기 악화다. 금리가 오르며 전세계적으로 건설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특히 레고랜드 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이 망가지면서 건설 수요가 완전히 꺾인 상황이다. 앞서 세 가지 요인 탓에 재고가 빠르게 쌓이고 있다는 얘기는 국내외 철강회사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네 번째는 보너스와 같았던 환율 요인이다. KG스틸을 포함해 글로벌로 물건을 판매하는 철강 회사는 환율 효과를 꽤 짭짤하게 봤다고 한다. 최고의 시절로 꼽히는 2021년 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환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보통 글로벌 회사 간 계약은 2개월 뒤에 물건을 넘겨줄 걸 가정하고 당시 환율로 계약을 맺는다. 이때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환차익을 얻게 된다.
철강 회사들은 2021년 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는 대체로 환차익이 발생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반면 2022년 11월부터는 환차손이 발생하고 있다. 2022년 10월 말 약 1440원을 터치한 원·달러 환율은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해 2022년 12월 15일 129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런 시기는 적절한 이익을 얹어서 계약해도 손해가 날 수 있다. 환율의 향방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2022년 4분기는 약 2년 동안 글로벌 무역에서 큰 수혜를 보게 해준 한 축이 이제는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B 씨는 이렇게 4가지 요인으로 철강업계 호황이 당분간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B 씨는 “혹자는 KG그룹이 인수한 쌍용차에 KG스틸 철이 들어가면 되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건 아예 철강업계 사람이 아닌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얘기다. KG스틸은 차량에 쓸 수 있는 강판을 만들지 않는다. 생산하던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 차량 강판 생산 자체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KG스틸은 고로(철강 원료를 만드는 설비)가 없는 데다, 당장 차량에 들어갈 강판을 만들 방법도 없다는 평가다. 이 같은 이유로 업계에서는 곽 회장이 강경책을 쓰더라도 KG스틸 실적이 급반전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한편 KG그룹 관계자는 “팀장은 임원도 아닌데 법적으로 사직이 가능하지도 않다. 오해로 빚어진 실수였다. ‘존경받는 기업’과 ‘자랑스런 회사’를 지향하고 있는 KG 명예에 손상이 가는 일이다. 소통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인 만큼 나쁘게 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