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 측근들 줄기소 되자 적극 엄호서 신중 기류로…수사 결과 및 지지율이 관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2월 13일 충남 천안중앙시장을 찾았다. ‘국민 속으로, 경청 투어’라는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민생투어의 첫 행보였다. 이날 이 대표는 즉석연설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 온 민주주의인데, 몇 개월 만에 과거로 되돌아가느냐”면서 “이젠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고 윤석열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가 민생투어 방침을 밝히자 당 내부에선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예산안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여의도를 비워두고 현장에 가는 게 적절하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대표 뜻이 강했고, 그 첫 일정으로 ‘윤석열 대망론’ 발원지였던 충청권을 찾았다.
정치인들 언행은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이 대표 민생투어를 두고도 수많은 해석이 쏟아졌다. 검찰 수사가 턱밑으로까지 치고 올라오자 장외 여론전을 통한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이재명 vs 윤석열 대결’ 프레임을 강조해 1야당 차기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평가도 나왔다.
어찌됐건 이 대표 민생투어 밑바탕에 위기감이 깔려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검찰이 겨누는 사법리스크, 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양상들이 이 대표 행보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특히 이 대표 측은 비명계를 중심으로 비토 기류가 퍼지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관련기사 단일대오는 깨진 지 오래…‘이재명 사퇴론’ 뒤숭숭한 민주당).
지난해 대선 경선 때 이재명 대표와 맞붙었던 이낙연 전 대표의 조기귀국 가능성이 점쳐졌고, 비명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친문계는 진영을 정비하며 ‘이재명 사퇴론’의 불씨를 당겼다. 친문 인사들은 “개인 자격으로 수사를 받은 뒤 떳떳하게 돌아오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친명계는 “윤석열 정부가 바라는 것은 당의 분열”이라면서 날 선 반응들을 쏟아냈다.
그런데 최근 친명계 단일대오에도 틈새가 보이고 있다. 이 대표가 과연 사법리스크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민생투어를 결심한 진짜 이유는 친명계의 이탈 움직임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친명이 흔들리면 이 대표는 고립무원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주류인 친명계는 지난해 대선 경선, 그리고 올해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등을 거치며 이재명 대표 지지 성향을 나타냈던 의원들이다. 민주당 의원들 중 대략 80명가량이 친명으로 분류된다. 전체 169석의 절반이 친명계인 셈이다. 강경한 것으로 유명한 이 대표 팬덤의 지원사격까지 받으면서 친명계는 당 주류로 떠올랐고, 주요 현안마다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사법리스크가 길어지며 피로감이 쌓이고, 또 이 대표 측근들 비리가 연이어 드러나자 친명계의 스탠스 또한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적극적인 엄호에서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선 의원들이 많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12월 15일 여러 친명 의원들을 만나 속사정을 들어봤다. 그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대장동 사건’ 핵심 인물인 김만배 씨가 자해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이었다.
“다들 불안해하는 것이다. 이 대표 측근들이 체포되자 일단은 거리를 두려는 것 같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캠프에 있었던 한 의원은 ‘내가 왜 친명이냐’며 화를 내더라. ‘정치적 뿌리’가 약한 비주류 대표의 한계다. 위기를 함께할 정치적 동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멀리는 김영삼 김대중, 가깝게는 박근혜 문재인만 보더라도 끝까지 주군을 따르는 세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대표는 거대 야당 대표인데도 외로워 보인다.”
또 다른 친명 의원도 비슷하게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뭉쳤던 친명계가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은 2024년 총선 공천 때문이다. 이 대표가 전대에 나와 승리하면서 많은 의원들이 모여들었다”면서 “하지만 이젠 이 대표의 정치적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총선에 모든 시선이 가있는 의원들로선 주판알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이 대표가 당 안팎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6월 보궐선거 및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한 것은 총선 공천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차기에 도전하기 위해선 대선 경선 때 형성된 기반을 바탕으로 당내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친명계는 당 주류이자 최대 계파로 올라서긴 했지만, 우려했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일차 관건은 검찰 수사다. 사법리스크 해소 여부에 따라 이 대표 정치적 운명이 좌우될 전망이다. 검찰이 여러 의혹 중 하나라도 입증에 성공할 경우 이 대표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반면, 이 대표가 면죄부를 받는다면 차기주자로서의 행보에 탄력이 붙는 동시에 윤석열 정부가 거센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도 변수다.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차기주자로서의 독보적인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민주당의 ‘대안 부재론’과도 맞물려 있다. 하지만 이 대표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언제든 플랜B는 작동될 수 있다. 벌써부터 민주당 일각에선 이낙연 전 대표, 김동연 경기지사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당내 상황에 대해 이 대표 최측근 인사는 12월 16일 일요신문과에 “비주류에다가 원외였던 이 대표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면서 “이 대표의 정치적 뿌리는 국민이다. 그거 하나로 대선 후보, 1야당 대표까지 됐다. 이 대표가 탄압을 받을수록 그를 지지하는 여론은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