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계 비대위·조기 전대 논의, 이낙연 귀국론과 맞물려…친명계 “이 대표 지켜야 당 산다” 격앙
최근 민주당에서 가장 핫한 인사는 이낙연 전 대표다. 그는 올해 지방선거가 끝난 후 미국으로 떠났다. 1년 일정 연수를 마친 뒤 2023년 6월 귀국할 예정이다.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이 전 대표를 다시 정가의 중심으로 소환한 것은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였다.
검찰 수사가 이 대표를 옥죄자 민주당엔 위기감이 고조됐다. 당 대표인 동시에 차기 유력 주자이기도 한 이 대표가 사법 처리를 받을 경우 당이 벼랑 끝에 설 것이란 얘기가 퍼졌다. ‘이재명 지키기’를 고수할 경우 방탄 국회라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였다.
그러자 ‘플랜B’ 마련의 필요성이 고개를 들었고, 한동안 잊혔던 이낙연 전 대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대선 경선 때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둘은 정치적으로 따졌을 때 대체재 관계다. 이 대표가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이 전 대표 주가는 높아진다는 의미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 전 대표는 측근들을 통해 민주당 현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전 포인트는 이 전 대표의 조기 귀국 여부다. ‘이낙연계’ 한 의원은 앞서 일요신문에 “이 전 대표가 지금 들어온다고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아직은 때가 아닌 게 분명하다. 조기 귀국은 현실성이 없다. 이 전 대표 뜻도 확고한 것으로 들었다”면서도 “다만, 당이 절체절명 위기에 빠지면 모른 체하긴 힘들 것이다. 이 대표가 검찰 수사를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관련기사 이낙연·김동연…민주당 ‘이재명 대안론’ 고개 든 까닭).
지난해 대선 경선 때 이재명 대표를 거세게 몰아붙였던 친문계는 전당대회 전까지도 비슷한 스탠스를 유지했다. 이 대표 보궐선거 출마에 쓴소리를 냈고, 전당대회 기간엔 사법 리스크를 부각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압도적인 결과로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후 당 주도권의 무게추는 친명계로 기울었다. 친문계를 포함한 비명 진영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 초반 민주당의 표면적인 단일대오는 이런 배경에서 바라봐야 한다. 친명계의 ‘이재명 지키기’ 목소리가 당 전반을 휘감았고, 비명계의 비토 기류는 수면 아래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다 이 대표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이 구속되면서 비명계의 불만이 분출했다.
한 친문 의원은 “이 대표가 ‘정치적 동지’라고 했던 측근들이 결국 구속됐다. 이 대표는 야당 탄압이라고 하지만 과연 국민들 눈에도 그렇게 비칠까. 윤석열 정부에 실망한 중도층이 민주당 지지세로 돌아섰는데,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조국 시즌2’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당 차원에서 검찰 수사를 막다간 그 후유증이 너무 클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최소한의 유감 표명을 한 뒤, 대표직에서 물러나 개인적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게 옳다”고 말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이었던 이 대표 사퇴를 공론화한 건 이낙연계 설훈 의원이다. 설 의원은 11월 28일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 “‘나는 당에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겠다. 나는 떳떳하기 때문에 내가 혼자 싸워 돌아오겠다’고 선언하고 당대표를 내놓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며 “저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 의원은 김용·정진상 의혹과 관련해선 이 대표가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도 했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친명계는 그동안 ‘검찰이 이 대표를 잡은 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노릴 것’이라며 친문계 협조를 요구했었다. 일정 부분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해서 친문 쪽에서도 이 대표를 지원사격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은 이 대표 측근들의 부정한 자금 수수 혐의다. 이것을 막으려다간 문 전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나락에 빠질 수 있다. 이 대표를 손절해야 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시점에 친문계가 진열 정비에 나선 것도 미묘한 파장을 불렀다. 친문 모임인 ‘민주주의 4.0’은 11월 22일 전해철 의원을 이사장으로 추대하는 한편, 비명 성향 의원 10여 명을 새로운 회원으로 영입했다. 회원 중 일부는 11월 29일 ‘반성과 혁신’ 토론회를 열어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대한 민주당 방어 전략을 비판했다. 이 토론회에선 ‘민주당의 사당화’를 꼬집는 견해들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민주주의 4.0 소속 한 의원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이재명이다. 이재명 대표가 설령 사법처리를 받더라도 민주당은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한다. ‘방탄 정당’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재명은 죽더라도 당은 살아야 한다”면서 “이 대표가 측근들의 구속에 대해 무조건 탄압이라고만 하지 말고 최소한의 정치적 유감을 표명하며 출구전략을 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친문계 좌장으로 꼽히는 전해철 의원은 11월 30일 대구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해 “(당이) 검찰 수사의 무리함과 잘못된 부분은 확실하게 지적을 하고 단일대오로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내로남불은 안되기에 당이 때로는 아주 철저하게 또 아주 정확하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당이 굳건히 서는 길”이라고 했다. 이 대표 측근 의혹에 대한 당 대응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현재 친문 진영에선 의원들이 이 대표 사퇴 후를 논의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비대위 전환 또는 조기전대 등의 시나리오다. 여기엔 차기 주자들인 이낙연 전 대표, 김동연 경기지사 등의 거취 예측도 따라 붙는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계기로 친명과 비명 간 계파 내홍이 수면 위로 떠오른 형국이다
전대 후 민주당 신주류로 자리 잡은 친명계에선 격앙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 대표 최측근 정성호 의원은 11월 23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총선을 앞두고서 당이 분열하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다. 모든 의원들이 거기에 대해서 공감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친문계를 겨눴다.
11월 30일 만난 한 친명 의원은 “결국 모든 조직은 분열로 망한다. 검찰이 당의 대표이자 차기 주자를 노리고 있는데, 의원들이 이렇게 이 대표를 흔들면 어쩌자는 것이냐. 윤석열 정부가 노리고 있는 것도 이 지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만큼 이 대표가 무섭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검찰로부터) 이 대표를 지키는 게 민주당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