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경쟁 정치권에 ‘살림은…’ 흘겨보기
▲ 박재완 장관이 종교인 과세의 필요성을 언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박 장관은 지난 19일 MTN과의 인터뷰에서 “(종교인 과세는) 국민 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 관점에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원칙적으로 과세가 되어야 하고 지금까지 느슨했던 과세 현실을 감안해 (종교인 과세를) 시작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의 이와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종교계와 정부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과거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해 그동안 ‘목회자는 성직자지 근로자가 아니다’며 종교계 중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개신교는 원칙적 찬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입장은 통일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측은 교회 신뢰 회복을 위해 재정 운용을 투명하게 하겠다며 오는 11월 총회에서 목회자 세금 납부를 결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다른 기독교 단체들은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를 원론적으론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기독교계 실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단지 여론에 등 떠밀려 졸속 적용해선 곤란하다”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이에 비해 불교계는 사찰 재정 파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이를 근거로 소득세가 부과된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천주교 사제들은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1994년부터 소득세를 내고 있다.
여론은 종교인 과세에 찬성이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지난 2월 27일 19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직자 세금 부과에 찬성하는 비율은 64.9%로, 반대 19.5%에 비해 세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종교 신자별로는 찬성 비율이 천주교(71.4%), 불교(69.8%), 기독교(60.4%) 순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인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종교인 비과세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소득세법이나 소득세법 시행령의 비과세 조항을 살펴봐도 종교인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도록 한 규정은 찾을 수가 없다. 이처럼 규정에 없는 종교인 비과세 관행은 과거 보시 풍습을 이어왔던 불교와 해방 및 한국전쟁 이후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교회 등의 재정상황을 감안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종교인 과세 논란은 지난 2006년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가 종교인 과세를 주장하고 과세를 하지 않는 국세청장을 검찰에 직무유기로 고발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국세청의 유권 해석 요청에 기획재정부가 침묵하면서 잠잠해졌다.
박 장관이 6년이나 묻혀있는 종교인 과세 문제를 들고 나오고, 종교계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정해진 것은 없다’는 분위기다. 백운찬 세제실장은 20일 기자단 오찬에서 “장관 말씀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원칙론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당장 과세를 추진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종교인 과세 문제는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고, 그동안 내부적으로 다각도로 검토했고 준비했던 문제”라며 “민감한 문제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평소 기획재정부 간부 오찬에는 20명 안팎의 기자들이 참석하던 것과 달리 이날 백 실장과의 오찬장에는 30명 이상의 기자들이 몰릴 정도로 종교인 과세는 핫이슈였다.
기획재정부는 20일 오후에는 해명자료를 통해 종교인 과세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처럼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표시한 것은 과세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탓이다. 과세를 위해서는 종교인들의 소득을 확인해야 하는데 교회나 절의 회계가 미흡한 점이 많다. 일부 종교단체의 경우 불투명한 회계 관행 때문에 분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도 종교인에 대해 과세를 하려는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당장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정부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마저 크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박 장관의 종교인 과세 발언이 실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 아니었겠냐는 해석이 무게를 얻고 있다. 정부는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복지 확대와 고소득층 증세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국민개세주의라는 원칙으로 맞서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득세를 내지 않는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41.1%나 된다. 복지 확대와 고소득층 증세를 이야기하기에는 소득세 면세 근로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득세의 불합리한 점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법에 없고 비판적 여론이 많은 종교인 비과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종교 문제를 건들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지만 개신교에서 최근 소득세를 자발적으로 내자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는 것과 여론 역시 종교인도 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는 점에서 반발이 적을 것으로 보고 박 장관이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권에서 반발이 있겠지만 증세에 앞서 세제의 문제점부터 고쳐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도 “국세청에서 유권해석을 요구한 것에 대해 6년이나 뭉개고 있으면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실제 과세보다는 소득세의 모순을 보여주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국세청의 유권해석 요청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종교인 과세가 박 장관 언급의 핵심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