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문화 신사업 눈길, 이사회 진입 여부 주목…섣부른 홀로서기보다 ‘남매경영’ 유지 전망
#존재감 드러내는 조현민 사장
조현민 사장은 (주)한진의 신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주)한진은 최근 도로정보 데이터베이스(DB) 사업, 친환경 사업, 배송용 전동대차 등 다양한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조 사장은 물류와 문화를 접목시킨 신사업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한진은 2021년 택배·물류를 소재로 한 게임 ‘택배왕 아일랜드’를 출시했고, 최근에는 후속작 ‘물류왕 아일랜드’를 출시했다. 영화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 사장은 지난 2022년 12월 23일 (주)한진이 투자한 영화 ‘백일몽’ 시사회에 직접 참석했다.
조현민 사장이 추진하는 문화 사업과 물류 사업의 결합은 본업의 경쟁력 강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적 측면에서도 무난한 평가를 받고 있다. (주)한진의 매출은 2021년 1~3분기 1조 8024억 원에서 2022년 1~3분기 2조 1287억 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43억 원에서 915억 원으로 상승했다.
조현민 사장은 2022년 6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로지스틱스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로지테인먼트는 마케팅의 하나이자 변화와 혁신의 일환”이라며 “컨테이너 운송부터 택배까지 국내 첫 역사를 써온 (주)한진의 무한한 잠재력과 성장 동력 그리고 사회 공헌의 가치들이 로지테인먼트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재미있고 활기차게 전달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조현민 사장이 이르면 2023년 주주총회에서 (주)한진 이사회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한다. 조 사장은 2022년 6월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추모 사진전에서 이사회 합류 가능성에 대해 “저는 아직 능력 검증이 안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백일몽 시사회에서는 “인정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고 책임영역에 관한 문제도 있다”며 “현재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반년 만에 입장에 변화가 생긴 셈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조현민 사장이 이사회에 진입하면 (주)한진의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할 전망이다. 조원태 회장은 (주)한진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대신 조 회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로서 항공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조현민 사장이 각종 신사업으로 존재감을 보이는 반면, 조원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조 회장은 2022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에어라인 스트레티지 어워드’ 시상식에서 ‘2022년 올해의 항공화물 리더십’ 상을 수상했다. 2022년 10월에는 ‘한불클럽-불한클럽’ 회의에서 항공업계 기후변화 대응 사례에 대한 주제 발표를 진행하는 등 한진그룹 내 항공사업을 대표하고 있다.
#조현민 사장의 한계
세부적인 영역에서는 역할이 나뉘지만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이는 조원태 회장이다. 조원태 회장은 지주사인 한진칼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한진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조현민 사장은 2020년 12월 한진칼 전무에서 퇴임한 후 (주)한진 경영에만 집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 사장은 항공 계열사 이사회 합류가 불가능하다. 항공사업법상 외국인은 한국 항공사 등기임원에 취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자다.
특히 한진그룹 항공 계열사 내부에서는 ‘물컵 갑질’ 사건의 장본인인 조 사장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하다. 조 사장이 2019년 6월 한진칼 전무로 경영에 복귀할 당시 진에어 노동조합은 “조현민 사장은 회사와 직원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이 17억 원의 퇴직금을 챙겨 나간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경영자”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조현민 사장이 한진그룹 내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일각에서는 조 사장이 한진그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조양호 회장이 2019년 별세한 후 한진그룹 계열분리설은 꾸준히 제기됐다. 대신증권은 2019년 4월 보고서를 통해 “당분간 조원태 회장에게 경영권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장기적으로 남매간의 지분정리 및 계열분리 등 숙제는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현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계열분리 가능성은 낮게 본다. 조원태 회장 입장에서는 조현민 사장을 우군으로 두는 것이 유리하다. 조 사장이 조 회장을 지원하지 않으면 외부 세력이 한진그룹 경영권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회장과 조 사장의 한진칼 지분율은 각각 5.78%, 5.73%다. 한진칼 주요 주주인 호반건설(지분율 11.50%)이나 팬오션(5.85%) 등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주식을 갖고 있다지만 언제든지 태세를 전환할 수 있다.
한진칼 지분 10.58%를 가진 KDB산업은행(산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산은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러나 해외 국가가 기업결합 승인을 내주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실패하게 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영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지 못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실패할 경우 산은은 한진칼에 증자한 금액을 회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산은 관계자는 “비밀 유지 협약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조현민 사장 입장에서도 독립 후 외부 세력이 한진그룹을 장악하면 이전과 같은 (주)한진과 한진그룹 계열사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독립 경영보다는 조원태 회장과 함께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 사장의 항공사 경영 참여는 불가능하지만 오너 일가라는 점을 활용하면 실질적인 그룹 2인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조원태 회장이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면 조현민 사장에게도 좋을 것이 없으므로 현 상황에서 굳이 남매간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진 관계자도 “분리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