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마련 위해 택배비 인상 필요성 대두…경쟁사들 풀필먼트 주력 반면 한진은 자율배송·환경에 ‘심혈’
그간 (주)한진의 경영 환경은 조현민 사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경쟁사 CJ대한통운의 내홍과 물류대란으로 (주)한진의 지난해 실적은 예상보다 좋았고, 올해 1분기 실적도 나쁘지 않을 전망이다. (주)한진의 택배 사업이 탄탄했기 때문에 조현민 사장도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이후로는 택배비 인상, 시설 투자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주)한진이 물류시장 내에서 입지를 넓히고, 그 과정에서 조 사장이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실적은 양호했으나…
한진의 2021년 4분기 매출은 7009억 원으로 2020년 4분기 대비 16.6% 증가했다. 택배 단가 인상과 물량 증가, 항만하역 부문의 요율 인상과 부대수익 증가, 육상운송 사업 호조 등 여러 호재가 겹친 덕이다. 경쟁사인 CJ대한통운의 경우 지난해 4분기부터 대리점과 기사 간 갈등이 표출되면서 일부 영업에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택배업계에서는 후발주자인 (주)한진이 CJ대한통운의 악재 속에 시장점유율을 높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 기준 택배 시장점유율은 CJ대한통운 50.1%, (주)한진 13.8%, 롯데글로벌로지스 13.4% 등이다.
매출은 상승했지만 택배비 인상이라는 숙제가 남아있다. (주)한진은 올해 택배 분류 인력 2000명을 추가 고용하고, 자동 소팅(택배 분류) 기기 투자에 따른 감가상각비 증가 등으로 수익성이 훼손될 전망이다. (주)한진의 매출만큼 영업이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택배비를 인상해야만 한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월간 약 25억 원의 비용 증가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박스당 60원 수준의 인상이 필요했다”고 분석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최근 CJ대한통운에 대한 보고서에서 “(주)한진과 롯데로지스틱스는 택배사와 택배기사 간 사회적 합의 관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택배 단가 인상을 CJ대한통운보다 더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 과정에서 CJ대한통운의 가격 경쟁력이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연승 연구원은 올해 택배 물동량이 지난해 대비 6.2%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업계 1위 CJ대한통운의 물동량 증가율은 경쟁사 대비 높은 6.5%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이 택배비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주)한진의 입장은 미적지근하다.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난 1월 1일 기업 고객에게 각각 50~100원, 75원의 인상안을 통보했다. (주)한진도 이마트24 등 일부 고객에 인상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규모는 경쟁사들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한진은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해서라도 수익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주)한진은 택배 생산능력 확충 및 설비 자동화를 위해 대전 메가허브 물류센터에 2850억 원을 투입하는 등 총 4234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대전 메가허브 물류센터는 2023년 가동될 예정이다. 가동이 시작되면 (주)한진의 일평균 처리 가능 택배 물량이 167만 박스에서 260만 박스로 늘어난다. 이를 통해 2023년 택배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높인다는 것이 (주)한진의 목표다.
(주)한진은 모회사와 주력 계열사들이 모두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투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주)한진은 주주총회에서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주식 발행 한도를 각각 200억 원, 200억 원, 3000만 주에서 1000억 원, 1000억 원, 1억 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주)한진 관계자는 “아직 택배비 인상과 관련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며 “활용성이 낮은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투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소 뜬구름 잡는 (주)한진 신사업
조현민 사장은 2005년 LG애드(현 지투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항공에서 광고·마케팅을 담당했다. 지금도 공식 직함은 ‘한진 마케팅 및 미래성장전략 총괄 사장’이다.
최근 조현민 사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신사업은 도로정보 데이터베이스(DB) 사업이다. 도로정보 DB 사업은 2019년 사내 신규 비즈니스 공모전에서 1위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주)한진이 보유한 약 800개의 택배, 물류 인프라를 활용하자는 의도로 기획됐다.
(주)한진은 지난 3월 14일 가상·증강현실(VR·AR) 콘텐츠솔루션기업 유오케이와 공동 출자해 휴데이터스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주)한진은 2020년 3월 유오케이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지난해에는 도로정보 DB를 수집할 택배차량 및 소형차량용 고해상도 카메라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완료한 바 있다. (주)한진 관계자는 “휴데이터스는 한진의 인프라를 통해 거리뷰 수집 및 도로·시설물 등의 최신 공간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자율배송 등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주)한진은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오는 3월 24일 열리는 주주총회 안건에는 태양력발전업, 전기판매업, 전기신사업, 전기자동차 충전업 및 관련 일체 사업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주)한진은 터미널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확충해 택배기사들의 운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주)한진의 미래 신사업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지적한다. 일례로 CJ대한통운은 2조 5000억 원을 투자해 풀필먼트 인프라 확장 및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풀필먼트는 물류 업체가 판매자 대신 주문에 맞춰 제품을 선택하고 포장한 후 배송까지 마치는 방식의 서비스다. 물류 업체가 직접 관여하다 보니 초고속 배송에 유리하다.
풀필먼트는 네이버 등 자체적인 배송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서비스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풀필먼트는 아직 전체 물동량의 2.2% 수준이지만 2023년까지 투자가 진행될 때마다 비중이 빠르게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들은 풀필먼트 등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는데 (주)한진은 한참 후발주자인데도 너무 먼 미래만 그리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