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건 직거래 큰 건 변호사 ‘먹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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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을 통한 부동산 직거래가 활성화 되며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현재 웬만한 부동산 정보 사이트는 물론 대형 인터넷 포털까지 자체적으로 직거래 코너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인터넷 블로그와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직거래 게시판을 운영하는 곳까지 합하면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 사이트는 단순히 지역 생활정보지에서 취급하던 매물 정보를 넘어 직거래에 필요한 각종 정보가 총망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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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홈페이지. |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피터팬’은 업체가 아니다. 부동산 카페를 개인이 열어 운영하는 비영리의 카페일 뿐이다. 카페 소개에 보면 “부동산중개업자는 가입 및 활동을 제한하니 가입하지 말아 달라. 발견 시 강퇴시킬 것”이라는 글까지 올려놓았다. 영리 목적의 중개업자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직거래를 하겠다는 목적에 충실한 셈이다. 부동산 직거래가 얼마나 활기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서울 경희대 인근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진 아무개 씨는 “요즘 대학생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원룸, 오피스텔 등을 구하는 경우가 상당히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며 “대학가에선 중개업자에 수수료를 줘가며 집을 구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를 위협하는 건 인터넷과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다. 이미 빌딩 등 고가의 부동산은 부동산 전문 법률사무소를 통해 중개업무를 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됐다. 아예 중개사 자격증을 따는 변호사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중개업무를 병행해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이는 무엇보다 올해부터 로스쿨 졸업생이 매년 1000명 이상씩 배출되면서 변호사들도 새로운 일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서비스가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강남의 한 법무법인 부동산본부장은 “중개업무 외에도 다양한 법률 자문과 회계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어 고객에게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은행과 대형마트 등도 중개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올 초 스마트폰뱅킹 서비스에 부동산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인 자산관리 애플리케이션인 ‘KB 스타플러스’에 국민은행의 부동산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시세와 매물 정보는 물론 부동산 담보대출, 상담 서비스까지 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이 은행은 기존 PB센터와 서울·경기 300여 지점에 부동산 중개와 대출을 알선하는 부동산 거래 창구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은행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것은 공인중개사법 위반이라고 강력히 항의하는 공문을 보내자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한발 빼긴 했지만, 은행은 이미 직간접적으로 중개업에 진출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엔 홈플러스가 전국 매장에서 부동산 서비스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점마다 ‘부동산&경매센터’를 열어 마트 인근 지역의 상가나 도시형생활주택 등의 분양대행과 이에 수반된 업무, 그리고 각종 부동산 상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개업자를 둘러싼 제도적인 환경도 계속 변화할 전망이다. 국토해양부는 최근 부동산 관리대행, 상담 및 분양대행에 제한되던 부동산중개법인의 업무영역을 풀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 세무 등 전문 서비스도 병행하도록 해 대형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적인 변화는 지금같이 소규모 중개업자 중심의 시장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중개업체의 등장은 소규모 업체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과 부동산경기 침체로 최근 서울 및 수도권 중개업자 수는 지속적인 감소 추세다. 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서울 중개업자수는 2만 3421명으로 전년(2만 4062명)에 비해 641명 줄었다. 하락세가 시작된 2009년(2만 5394명)과 비교하면 2000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최근 은퇴자들이 늘어나면서 너도나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보고 있어 전체 중개업자 수가 시장 상황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들진 않고 있다”면서 “다만 거래 건수가 너무 많이 줄어들며 폐업하는 곳이 늘어나 중개업자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3월 서울 시내 전체 부동산 실거래 건수는 7729건에 불과하다. 모두 중개업소를 통해 거래를 했다고 가정하면 서울에 있는 등록 중개업자수가 2만 3421명이므로 올 들어 3개월 동안 303개 업소당 한 곳만 매매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이야기다. 전세거래가 종종 있었다고 가정해도 중개업소들이 사실상 제대로 일을 한 곳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서일대학교 이재국 교수는 “주택시장 침체로 거래량은 급감하고 있는데 그나마 있는 매매 건수도 직거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면서 “중개업 환경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개업은 앞으로 고객에게 매매는 물론 세무, 법률 상담 서비스는 물론, 수수료 할인, 이사, 인테리어 등 각종 서비스를 하는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