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5일 방송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60회는 '安(안)의 전쟁, 나는 아직 할 말이 많다' 편으로 꾸며진다.
"코레아 우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총성과 함께 한 남자의 뜨거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러시아 군인에게 붙들린 남자는 하늘을 향해 목이 터져라 '대한국 만세' 를 외친다.
체포된 직후에도 당당한 태도와 의연한 표정을 잃지 않았던 그의 이름은 안중근. 그가 쏜 총탄에 쓰러진 자는 일본의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였다. 의열 항쟁의 상징이자 많은 애국지사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의사 안중근의 이야기는 간절한 맹세에서 시작된다.
4년 전 1905년 11월 17일.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을사늑약이 강제적으로 체결된다. 이 소식을 들은 안중근은 뼛속까지 차오르는 분탄함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얼마 후 병세가 악화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중근은 가장 소중한 두 가지 '나라'와 '아버지'를 한꺼번에 잃게 되었다.
"조국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 일본과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 중근의 첫 번째 맹세였다. 그는 의병부대를 만들고 참모 중장 자리에 오른다. 의병들은 목숨을 걸고 일본군에 맞섰지만 한 달 반 만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채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맹세를 다짐했다. 1909년 봄 안중근을 중심으로 한 열두 명의 남자들은 왼손 무명지를 자르고 태극기에 '대한독립' 네 글자를 붉게 물들인다.
새롭게 의열 항쟁을 시작한 중근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나라를 빼앗은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내 손으로 반드시 처단하겠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 안중근'은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망국의 전조가 어둡게 드리우던 그 시절 순국 직전까지 고독한 전쟁을 이어갔던 안중근의 모습을 통해 왜 그가 민족의 영웅으로 불리는지 알아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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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사 ( 2024.11.20 1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