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여권 만들기 쉽고 물가 저렴한 데다 코로나19로 중국 문턱 높아져 동남아 선호…사실 ‘밀입국’ 더 고민
필리핀이나 베트남, 중국 등에서는 위조 여권을 구입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돈만 있으면 다 구할 수 있다’는 게 다수의 이야기다. 심지어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중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출국금지로 묶일 것을 대비해 사전에 이중국적 목적의 여권을 구입해 둔다고 한다. 이런 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은 마셜제도다. 국적 취득이 쉽고, 우리나라와 데이터베이스(DB) 정보 교환이 제한적인 탓이다.
#마셜제도 여권 들고 해외로…
횡령과 배임, 주가조작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기업사냥꾼 A 씨는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사전에 마셜제도의 여권을 확보했다. 국적을 취득해 시민권을 얻는 합법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A 씨는 마셜제도 여권을 들고 해외로 나가 검찰 수사를 피하는 동시에 공소시효도 그대로 흘러가게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A 씨의 한국 국적 상으로는 출입국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꼼수였다.
하지만 문제는 귀국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터졌다. 국내 입국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중국적을 가진 사실이 드러난 것. 결국 A 씨는 입국을 시도하면서 ‘한국 국적도 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A 씨는 이 때문에 자연스레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이 됐고 현재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동남아, 미국 일대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 수사를 피하는 본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다시는 한국에는 들어올 수 없는 신분이 된 셈이다.
관련 사건에 정통한 법조인은 “마셜제도는 우리나라와 데이터베이스 공조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었는데 이를 노린 시도”라며 “미리 검찰 수사를 대비해 마셜제도에 다녀와 이중국적을 취득한 것인데 출국금지 조치가 있을 것을 대비해 사전에 준비해 놓는 이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2017년에는 법무부가 외국인 8명이 자국 여권과 마셜제도 여권을 번갈아 사용해 한국을 드나든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마셜제도 여권으로 입·출국한 외국인 516명의 사진과 자체적으로 보유한 외국인 사진 DB를 비교·분석한 끝에 범죄자로 의심되는 외국인 8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자국에서 주가조작이나 사기 등으로 추적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위조 여권으로 국내 출입 시도까지
체포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일당 등 검찰의 수사를 받는 이들이 베트남, 태국 등으로 가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다. 위조 여권을 확보하기 쉽고 물가가 저렴해 돈만 있으면 누릴 게 많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관련 사건 변론을 맡은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동남아에서 위조 여권을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현지에서 태어났지만 여권을 만든 적이 없는 이의 신분을 사서 사진과 지문 등을 대체해 여권을 확보하는 방법”이라며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이면 동남아 국적의 사람으로 신분을 바꿔 여권을 만들 수 있다”고 귀띔했다.
국내 출입국 시도가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외국인들 역시 입국 시 지문 등록을 하지만 한국 국적일 때 등록한 지문과 정보 호환이 되지 않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그냥 외국 국적의 관광객이 들어온 것으로만 기록에 남는다는 얘기다. 앞선 A 씨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려 시도했던 것도 이 같은 시스템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밀항하면 모두 중국을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중국이 출입국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동남아를 더 선호하게 됐다는 게 공공연한 얘기다. A 씨를 잘 아는 자본시장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해도 중국으로 배를 타고 밀항한 뒤에 위조 여권 등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시도가 있기도 했다”며 “최근에는 중국에 밀항하는 것도 어렵고, 중국에서 다른 국가로 나가는 것도 어렵다 보니 인기가 떨어졌고 그만큼 수요가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남아로 향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1심 선고를 앞두고 도주했던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역시 국내에 머무르다가 검거됐는데, 과거와 다르게 미리 준비한 여권이 없으면 유일한 옵션 밀항국이 중국이 되는데, 중국조차 봉쇄된 것이 김 전 회장의 검거 성공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 과정을 잘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언론이 ‘밀항’만 주목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밀항을 하는 이들은 ‘밀입국’을 더 고민하고 어려워한다는 얘기다.
앞선 A 씨를 잘 아는 자본시장 관계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 등을 피해 잠시 나가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가족이나 사업 정리, 도피자금 마련 등을 위해 급히 들어와야 할 때가 있다”며 “나가는 것에 비해 들어오는 게 난이도가 훨씬 높은데 한국이 출입국 시스템이 워낙 잘돼 있어 입국이 어렵다 보니 자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마셜제도 등 해외 국적의 여권을 미리 만들어두는 것 역시 필요할 때마다 한국을 들어오기 위함이라는 얘기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