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정보 대가로… ‘월급’에 ‘명절 보너스’까지
소문만 무성했던 강남룸살롱 황제 ‘이경백 리스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강남 일대 룸살롱 황제로 통했던 이경백 씨(40·수감 중)가 은밀히 작성했다던 이른바 ‘경찰 뇌물 리스트’가 그것이다. 지난 4월 1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이경백에게 단속 정보를 흘려주고 금품, 향응을 받은 혐의로 경찰 4명을 구속하면서 ‘황제 리스트’ 사건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또한 검찰은 이 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경찰 인사들의 신원을 모두 확인하고 최종 수사 대상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 리스트에는 경찰관을 비롯해 검찰수사관, 국세청공무원, 소방공무원 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를 비롯해 일부 언론사 기자도 이 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돼 또 다른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이 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자신에게 돈을 받은 경찰관 등 공무원 30여 명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수사에 돌입한 검찰은 지난 4월 1일 한 아무개 경사, 이 아무개 경사 등 경찰관 4명이 이 씨로부터 총 2억여 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잡고 이들을 구속했다. 검찰은 특히 전·현직 경찰 40명가량이 이 씨로부터 단속 무마 대가 등으로 금품을 받았다는 관련 진술과 단서를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이 씨 본인과 이 씨의 돈 심부름을 한 내연녀 장 아무개 씨 등 이 씨의 측근 3~4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진술과 단서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확보한 리스트 중에는 총경급 경찰 고위간부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조사결과 강남을 비롯한 서울 시내 유흥업소 업주들이 이들 경찰관들에게 정기적으로 뒷돈을 상납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이 씨는 경찰관들이 이들 업소들을 상대로 매달 한 곳당 200만~1000만 원씩, 총 50억 원에 달하는 ‘검은 돈’을 받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납은 비단 돈에 국한되지 않고 골프레슨, 명품, 외제차, 해외여행 등 다양한 경로로 이뤄졌다. 일례로 이 아무개 경사는 2007년부터 최근까지 이 씨의 도움을 받아 중국, 필리핀, 태국 등을 7∼8차례나 방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외여행에는 같은 혐의로 구속된 3명의 경찰관이 동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이 씨가 붙여준 프로골프 강사로부터 무료 골프레슨까지 받았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이 경사 등은 2~3명 단위로 돌아가며 조를 짜서 이 씨와 접촉해 거액의 돈을 챙겼다. 이들은 매달 상납금과 명절 인사비 명목으로 한 번에 최소 500만 원씩을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때로는 명품을 상납받기도 했다. 검찰은 최근 한 경사의 차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에르메스, 아르마니 등 명품 중에서도 최고가를 자랑하는 명품 수십 점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한 경사는 검찰조사에서 “모두 가짜다. 돈도 받은 일이 없다”며 일체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유흥업소와 경찰관의 검은 커넥션’을 주도한 인물로 이 경사를 지목하고 있다. 이 씨에 따르면 이 경사는 2007년 무렵 이 씨를 업소 근처로 불러내 “너 참 똑똑하다고 들었다. 네가 (경찰관들한테) 잘한다면서? 앞으로도 잘하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에 이 씨가 ‘어떻게 하면 잘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더니 이 경사는 “1000만 원을 달라”고 뻔뻔히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1000만 원을 챙겨줬다는 이 씨는 그 뒤로도 이 경사 등 일부 경찰관들의 눈치를 봐가며 은밀한 거래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씨는 이 경사 등이 평소에도 자신 앞에서 동료 경찰관들에게 “그 업소를 화끈하게 단속했던 것을 기억하느냐”며 은근히 압박했다고 진술했다. 그로 인해 이 씨는 2007년 봄부터 매달 이 경사를 포함한 3~4명의 경찰관들에게 1인당 500만 원씩 상납했고, 명절에는 특별 인사비 명목으로 1000만 원씩을 더 챙겨줬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검찰 측에서 확인한 상납금은 모두 2억 원이 넘는다. 상납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룸살롱 근처에 주차된 이 경사의 차 안에서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 씨는 상납 과정에서 이 경사로부터 경찰 단속정보를 넘겨받았다고 한다.
경찰관 4명을 구속한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이경백 리스트’에는 경찰관 외에 공무원과 청와대 인사, 언론사 기자 이름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이경백 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경찰은 2010년 당시 수 개월간 내부 감찰과 함께 직원들의 금품 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를 병행했으나 단 1명도 처벌하지 못하고 수사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지난 2010년 서울 강남과 선릉 일대 룸살롱에서 미성년자를 고용해 유사 성행위를 하도록 하고 이중장부를 만들어 42억 6000여만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 씨가 단속을 피하기 위해 현직 경찰관들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지시로 대대적인 내부감찰이 진행됐지만 금품로비 의혹은 밝혀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경찰관 다수가 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난 만큼 당시 경찰의 감찰과 수사가 제대로 진행됐는지에 대한 조사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경백 리스트’의 실체와 맞물린 검찰의 날카로운 수사 칼날이 어디까지 향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