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보호 취지와 달리 ‘브로커’에 악용, “깐깐한 운영을” 현장 목소리…HUG “순차적으로 제도 보완”
#"100% 반환? 지극히 순진한 발상"
일선 부동산 업계에서는 HUG가 일부가 아닌 완전하게 세입자 보호를 하겠다는 취지에서 전세보증금 전체를 보증해주면서 전세사기 브로커들에게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에 걸려 있는 선순위 채권이 약한 경우 전세보증보험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100%를 온전히 보장해 주다 보니 브로커들은 세입자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HUG의 전세보증보험을 활용해 왔다는 의미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한 세입자는 “어차피 무슨 일이 생겨도 전세보증보험에서 전체 금액을 모두 반환해 주는 거라고 알고 있어서 더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면이 있었다”며 “원래는 집이 마음에 쏙 들어도 전세보증금이 집값과 비슷하거나 주변 시세보다 좀 비싸게 느껴지면 고민이 많이 되지만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집이라고 하니 어차피 다 돌려받는 돈이라 생각해 집 컨디션이 마음에 들었을 때 큰 고민 없이 전세로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HUG가 집값을 감정 평가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변 시세를 파악하는 툴을 두거나 지역에 따라 매뉴얼을 차별화하는 등 전세보증보험을 좀 더 깐깐하게 운영하고, 경우에 따라 전세보증금 전체가 아니라 70~80% 등 일부만 보증해줬더라면 세입자도 좀 더 꼼꼼하게 따져봤을 것이고 전세보증보험을 악용한 전세사기도 지금보다는 훨씬 줄었을 것”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정 요건만 갖추면 전세보증금 100%를 다 반환해주겠다고 정한 건 지극히 공무원다운 순진한 발상”이라고 전했다.
#보증보험 가입해도 전세금 반환 어려워
더 큰 문제는 HUG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했지만 전세금 반환이 안 되는 피해 사례가 거듭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A 씨는 계약기간 만기일이 다가와 거듭 임대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청했지만 거듭 묵살당해 HUG에 반환보증 이행청구를 했지만 계약기간이 지나 ‘묵시적 계약연장’이 된 경우 전세금 반환 사유가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런 경우 임대인으로부터 신분증과 함께 계약해지에 대한 동의를 받은 문자 등을 제시해야 이행청구 심사가 가능한데 대게의 경우 임대인과는 연락조차 쉽지 않다. 게다가 임대인이 사망하면 더 곤란해지는데 최근 빌라왕의 연이은 사망 소식이 피해자들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빌라왕’ 김 아무개 씨 사건의 경우 세입자 1139명 가운데 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자는 전체의 54%인 614명인데 이 가운데 174건은 HUG가 이미 대신 갚아줬거나 그 과정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440건은 계약해지 의사를 입증하지 못해 아직 전세계약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돼 HUG의 전세보증보험의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HUG 약관에 따르면 전세계약 해지 또는 종료된 뒤 한 달 안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먼저 주택임차권등기를 해야 한다. 임대인이 사망한 경우 주택임차권등기를 하기 위해서는 사망한 기존 임대인의 상속인 명의로 등기(대위상속등기)가 마쳐져야 한다. 그런데 전세사기 피해자가 대위상속등기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금액이 소요된다.
그나마 대법원이 1월 17일 임대인이 사망한 경우 대위상속등기를 거치지 않아도 전세사기 피해자가 임대인의 상속인을 상대로 임차권등기명령을 바로 신청하면 집행법원이 이를 인용하도록 피해자 구제 절차를 간소화했다.
#HUG 대위변제 금액 1조 원 육박…손해율 1000%
정상적으로 HUG의 전세보증보험이 가입돼 반환보증 이행청구가 이뤄진 경우 세입자 입장에서는 다행히 전세보증금을 100% 돌려받을 수 있다. 그 부담은 HUG가 모두 감당해야 한다. 2022년 HUG의 대위변제 금액은 1조 원에 육박하고 손해율도 1000%가 넘는다고 알려졌다. HUG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빌라왕을 앞세운 컨설팅 업체로 빠져나간 돈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새어나갔다.
HUG 관계자는 “2017년도 이전에는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의 80~90% 이하여야 보증보험을 들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보호받아야 하는 세입자의 보호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많아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2017년부터는 전세가가 주택가 이하이면 전세보증보험을 들 수 있도록 제도가 확대됐다”며 “서민보호를 위해 확대된 제도”라고 전했다.
이어 “HUG는 수사기관이 아닌 보증기관이라 사기와 관련해서는 자세히 알기 어렵다”며 “또 어떤 정황만으로는 앞서서 제도를 고치기 어렵고 명확한 증거와 근거 없이 제도 보완을 하기도 쉽지 않다. 수사기관에서 사건이 밝혀지는 데로 향후 순차적으로 제도 보완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법적 다툼하는 동안 세입자 고통 커져
HUG는 전세보증보험 승인여부를 결정할 때 상식적으로 주택가격 대비 선순위 채권금액에 대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 보험의 승인 가부를 가렸지만, 최근 유행한 전세사기의 수법에서는 선순위 채권금액이 적거나 신축빌라라 없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보증보험을 승인하는 데는 거의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빌라왕’ 사건이 터진 뒤 2023년 1월부터 HUG는 전세대출을 해줄 때 전세와 매매(집주인의 명의이전)가 동시에 체결되는 것이 불가하도록 제도를 고쳤지만, 이 역시 이전에 성행해온 수법처럼 전세대출 실행이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고 상당시간이 경과한 후 매매(명의이전)하는 꼼수로 충분히 피해갈 수 있는 규정이다. 이전에 해오던 것처럼 대출 실행 후 1~3개월 뒤에 집주인이 바지사장으로 명의이전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법률 전문가들은 “세입자가 전세계약을 체결할 때 세입자 모르게 명의 이전이 될 경우 전세계약을 무효화하고 수일 내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준다는 특약을 넣으라”고 조언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법적인 조언일 뿐이다. 세입자가 모르는 사이 명의 이전으로 계약이 무효화된다고 해도 세입자는 이를 법적으로 다툴 수 있을 뿐 당장은 어떠한 구제도 받을 수 없다. 법적 다툼으로 가면 상당한 비용이 들고 최소 수개월에서 보통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기에 고통은 오롯이 세입자 몫이 된다.
#감정평가사도 짜고 치는 판?
2023년 1월부터 HUG는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공시가의 140%)의 90%를 초과하면 전세대출 한도를 60% 적용한다고 규정을 고쳤지만 이 역시 빌라 거래에서 큰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택가격 산정 시 공시가격 적용비율을 기존 150%에서 140%로 내리기는 했지만 이 또한 현장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사기를 치는 컨설팅 업체의 브로커들이 주로 활용하는 신축빌라는 아파트와는 달리 시세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건축주나 브로커가 신축빌라의 공시가격을 감정하는 감정평가사를 매수해 공시가격을 시중보다 높게 설정하는 것이었다.
HUG에서는 주택의 가격을 산정할 때 이미 감정평가사가 제시한 주택 가격을 수용하는 경우도 많고 보증신청인이 감정평가수수료를 부담하는 경우 우선 적용한다는 항목도 있어 빌라의 감정 과정에서 감정평가사 매수가 생각보다 쉽다고 전해진다. 보통은 브로커들이 전세입자에게 시세보다 높게 받은 전세금 가운데 일부를 이런 감정평가사 매수에 사용해왔다.
신축빌라는 보통 매매 시 주변 시세보다 더 높은 금액을 받기 위해, 혹은 빌라 매입자가 은행에서 더 많은 금액의 담보대출을 받게 해주기 위해, 또 시세보다 높은 금액으로 전세입자를 들이기 위해 불법 감정평가를 통해 감정가를 조정하는 일이 흔했다. 대규모로 지어지고 수많은 세대가 입주하는 아파트와는 달리 최소 5~6세대에서 많아야 10~20세대가 입주하는 빌라는 감정평가사의 재량과 양심에 따라 해당 빌라의 감정가가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화곡동의 한 신축빌라 분양 대행사는 대놓고 매수자에게 “담보대출을 최대한 뽑기 위해 대출 예정 은행의 감정평가사를 1000만 원 주고 매수해 뒀다. 은행과도 다 이야기가 되어 있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은행 담당자도 대출 실적을 늘리기 위해 알고도 협조하기도 하고 감정평가사 매수를 돕거나 알선하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현금을 전혀 들이지 않고 집을 매수하려는 매수자를 위해 건축주나 분양사는 감정가를 높여 업계약(실제 거래가 오간 매매 금액보다 거래가를 부풀려 계약하는 것)을 해 최대한 담보 대출을 많이 실행하거나 집값보다 높은 금액으로 전세입자를 구하기도 했다. 이에 1월 31일부터는 HUG의 전세보증보험을 들 때 HUG가 선정한 감정평가기관의 감정평가서만 보증심사에 활용되고 타 기관의 감정평가서 활용은 불가능하게 변경됐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