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사 유혹에 집 주인 동참, 새 세입자만 보증금 물려 낭패…청년·신혼부부 물건 깐깐히 따져야
#대출 위해 감정가부터 다시
다주택자인 A 씨는 안 그래도 인근 부동산에 빌라를 매매로 내놓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집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어 포기하고 전세를 주고 있던 차였다. 빌라 호수마다 전단지가 붙어있는 것이 찜찜했지만 빌라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적정 시세에 처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A 씨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전단지에 적혀 있는 ‘부동산 김 부장’에게 연락했다.
김 부장이라는 중개인은 집 주소와 세입자 입주 여부부터 물었다. 하지만 세입자가 입주해 있어도 세입자 퇴거 설득을 위한 이사비 지원을 넉넉히 해줄 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김 부장의 요지는 이랬다.
먼저 A 씨가 받고 싶은 매매가보다 4000만 원 정도 높게 전세가를 설정한다. 이때 집의 감정가를 다시 받아 은행 대출을 용이하게 한다. 세입자는 김 부장이 3개월 내에 무료로 알선한다. 이 후 A 씨가 전세보증금을 받고 세입자가 입주하면 매매가보다 높게 설정됐던 보증금 4000만 원을 매수인에게 먼저 입금한다. 3주일 후에 매수자에게 소유권 이전을 한다.
세입자가 들어온 직후 바로 소유권 이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세입자가 받아야 할 보증금 대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최근 언론에 전세사기 등이 보도되면서 잔금날 집의 소유권이 바뀌며 깡통전세가 되고, 나중에 세입자가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뉴스가 나오자 은행에서 세입자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전세보증금대출에 소유권 이전과 관련한 제한을 둔 것이다.
하지만 세입자가 입주 후 3주가 지나 소유권 이전을 하면 은행에서도 이를 알 수가 없다. 부동산등기부만 적정하다면 세입자가 은행에서 전세보증금대출을 받는 데도 무리가 없다. 김 부장은 가능하면 전세보증금의 80~90% 대출을 받을 수 있는 34세 미만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세입자로 들이는 것이 좋다며 이런 조건의 세입자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34세 미만 청년이나 신혼부부는 집을 구했던 경험도 부족한 데다 자기 돈이 거의 없어도 은행 대출로 전셋집을 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일반 세입자에 비해 전세금이 높아도 깐깐하게 따지지 않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전세 물량이 귀한 경우 더 그렇다. 게다가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의 경우 전세가가 좀 높아도 나중에 아파트 청약을 위해 매매보다는 전세를 선호한다. 깡통전세가 걱정된다면 전세보증금반환보험을 들어 위험을 더는 쪽을 선택한다.
#소유권 이전 전, 수수료부터?
김 부장은 “매수자가 받은 4000만 원으로 우선 감정 평가를 다시 받아 집의 가치를 높인다. 감정 평가에 700만~1000만 원가량 비용이 든다. 또 그 돈으로 기존 세입자 이사비도 주고, 세입자 알선과 매매에 대한 부동산 중개보수도 충당하고 관련 법무비와 컨설팅비를 대체한다. 또 집에 세입자가 매력을 느껴 빨리 들어올 수 있도록 도배‧장판‧조명 등 간단한 인테리어도 한다”며 “기존 세입자가 새로 들어올 세입자에게 집을 잘 보여주고 방해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기존 세입자에게 이사비를 넉넉히 줘야 하는데 4000만 원 안에서 우리가 다 해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A 씨는 소유권 이전도 하기 전에 매수자에게 무턱대고 4000만 원을 건네는 것이 영 미심쩍고 불안했다. 돈만 건네지고 나중에 소유권 이전을 못하게 되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A 씨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 부장은 “그 점에 대해서는 부동산에서 확실하게 책임진다. 컨설팅약정서상에도 그 부분을 부동산에서 책임진다는 특약이 적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A 씨는 컨설팅약정서라는 것이 법적인 효력이 있을까도 의심스러웠다. 김 부장에게 이를 묻자 “법적 효력은 없지만 컨설팅사에서 무조건 보장한다. 만약 매수자를 구하지 못하거나 매수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부동산에서 직접 매수하기도 한다”며 A 씨를 안심시켰다.
A 씨는 인근 부동산에 이러한 상황을 문의했다. 부동산 관계자는 “빌라가 많은 서울 화곡동과 신월동, 인천을 중심으로 이런 사기 행각이 극성”이라며 “실제로 지역 부동산에는 빌라라도 전세 매물이 귀한데 직○이나 다○ 같은 부동산 관련 플랫폼에는 전세 매물이 넘쳐 난다. 많은 경우 허위 매물이거나 시세보다 가격을 올려놓은 깡통전세 매물”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보증금 중 4000만 원은 고스란히 컨설팅사에 돌아가고 이는 새 세입자의 주머니로부터 나온다. 기존 세입자는 넉넉한 이사비를 받고 이사를 나가면 그만이고, 집주인 A 씨는 원하던 매매가를 받고 소유권 이전을 해주면 끝나지만 세입자는 깡통전세로 남은 집에서 살게 된다. 계약이 끝나도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발이 묶이게 된다.
#부랑자에 소유권 넘기는 경우도
게다가 컨설팅 업체에서 소개하는 매수자는 정상적인 매수자라 보기 어렵다. 시세보다 높은 금액인 A 씨가 원하는 가격을 주고 집을 사고, 또 집값 이상인 전세보증금을 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세입자에게 이를 그대로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컨설팅사에서 소개하는 매수자는 보통 저신용자나 부랑자로 몇백 만 원에 신원만 빌려주는 사람들이 많다. 소유권 이전만 되어 있을 뿐 얼굴 한 번 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며 “결국 세입자가 낸 전세보증금을 매도자와 컨설팅사가 나누어 갖고, 소유권을 가진 집 주인은 이름만 걸려 있는 꼴”이라며 전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이 꼼꼼하게 알아보고 계약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세입자가 꼼꼼하게 살펴본다고 해도 나중에 집주인이 바뀌는 것까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주변 시세보다 전세가가 높지 않은지는 꼭 따져봐야 한다. 전세가가 매매가의 70% 이하인 집, 전세가와 근저당의 합이 매매가의 80% 이하인 집을 대체로 안전하다고 하지만 최근엔 이런 전셋집을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라 너무 꼼꼼하게 따지다보면 아예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
또 집주인이 이러한 컨설팅사의 사기 상황을 인지했다고 해도 계약을 성사시키는 경우도 많다. 2~3년 전부터 최근까지 이런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는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세금과 금리 때문에 당장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 입장에선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계속 진행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결국 컨설팅사뿐 아니라 집주인도 동참하는 사기행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계약 기간이 끝나 세입자가 집을 빼야 할 때도 집 주인이 아예 2년 동안 잠수를 타서 나타나지 않고 법적 조치를 해도 무소식인 경우도 있어 전세금을 아예 떼일 수 있다”며 “청약이 당첨된 신혼부부가 잠적한 집 주인을 찾지 못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청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봤다”고 전했다.
#생각보다 쉽게 당할 수 있는 사기
얼핏 시세보다 높은 깡통전세에 들어가는 세입자가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이는 생각보다 쉽게 당할 수 있는 사기다. 부동산 플랫폼을 통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부동산 공인중개사라고 믿고 접촉한 사람이 컨설팅사의 직원일 수 있다. 컨설팅사 직원들의 집을 보여주는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처음엔 세입자가 원하는 지역에서 매물이 많지 않다며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집을 몇 개 보여주다가 점점 외곽으로 빠진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같은 비용으로 훨씬 근사한 집을 만날 수 있다. 보증금은 비슷하고 교통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집의 질은 확 올라간다.
집을 구하는 데 지쳐 있던 세입자는 근처 시세를 알아볼 겨를 없이 괜찮은 집을 발견하면 가계약을 하게 된다. 컨설팅사 직원들은 매물을 안내하며 친밀함과 신뢰를 쌓고 미리 정해둔 표적 물건을 보여주면서 전세 매물이 부족하고 경쟁이 치열하다며 빠른 결정과 계약을 유도한다. 그러다 보면 깡통전세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이런 수법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세입자들은 집을 구하려는 위치의 오프라인 지역 부동산에서 시세 확인을 꼼꼼히 해야 한다. 부동산 플랫폼에는 이미 허위 매물이 많아 정확한 시세를 파악할 수 없고 온라인 플랫폼에서 만난 중개인과 자가용으로 돌아다니며 집을 보다 보면 집의 컨디션과 교통여건 등을 따라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지역에서 집을 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때는 미처 시세를 알아볼 겨를이 없고 급하다는 말에 섣부른 결정을 하기 쉽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컨설팅의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고, 부동산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시점에서 빨리 집을 팔고 싶어 하는 집주인들의 심리와 맞물려 법을 교묘히 피한 사기 행각이 지속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