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인베스트 등 1·2년 사이 우르르 문 닫아…스타트업 업계선 “성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줘야”
#설립 1~2년 만에 문 닫는 CVC 잇따라 등장
CVC는 회사 법인이 최대주주인 VC(벤처캐피털)를 말한다. CVC는 목적에 따라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 혹은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신기사)로 나뉜다. 창투사는 자본금이 20억 원, 신기사는 100억 원이 필요하다. 창투사는 7년 이내 벤처기업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일반 VC와 달리 CVC는 주로 모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에 투자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지난해부터 일반 지주회사도 CVC를 창투사나 신기사 형태로 설립할 수 있게 되면서, 지주사들의 CVC 설립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성과를 내지 못해 시장에서 사라지는 CVC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공고에 따르면, 등록 말소된 창투사는 2020년부터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2020년 5곳, 2021년 6곳, 2022년 8곳이다.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제35조에 따르면, 창업기획자는 사업을 영위하기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경우 등록 말소를 신청할 수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CVC 설립 초기에 문을 닫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헬릭스미스가 32억 원을 출자해 2019년에 세운 100% 자회사 골든헬릭스가 2020년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2021년에는 코스피 상장사인 엔터기업 IHQ(아이에이치큐)가 운영했던 HQ인베스트먼트가 창투사 지위를 내려놓았다. 한컴그룹 관계사들이 출자해 2018년 세운 한컴인베스트의 창투사 라이선스도 2021년 말소됐다. 같은 해 쌍방울그룹이 2020년 설립한 SBW인베스트먼트와 화선테크가 2019년 세운 리키인베스트먼트도 창투사 등록이 취소됐다.
지난해에는 BNK부산은행, 한창 등이 설립한 부산벤처스의 자회사 비브이인베스트먼트의 등록이 말소됐다. 일진그룹이 2021년 4월 설립한 일진투자파트너스는 2022년 12월 창투사 지위를 반납했다. 올해 1월 2일에는 EV수성(옛 수성이노베이션)이 100% 지분을 가진 허드슨헨지인베스트먼트의 창투사 등록이 말소됐다. 2021년 12월 창투사에 등록된 지 약 1년 만이다.
이들 CVC의 창투사 등록이 말소된 배경에는 대부분 경영상 문제가 있다. 2019년 설립돼 1년 만에 문을 닫은 헬릭스미스 자회사 골든헬릭스의 2020년 매출은 0원이었으며 당기순손실은 154억 원이었다. 쌍방울의 SBW인베스트먼트도 설립 이후 펀드를 하나도 운용하지 않다가 설립 1년도 안 돼 창투사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일진투자파트너스는 1년 동안 신규 펀드를 결성하지 못하다가 결국 창투사 등록이 말소됐다.
CVC가 자본잠식, 경영 개선 요구를 받는 사례도 잇따른다. 지난해 3월과 5월 이랜드그룹 이랜드벤처스와 코스닥 상장사 옵트론텍이 최대주주로 있는 알파원인베스트먼트는 각각 1년간 투자를 하지 않아 시정명령을 받았다. 코스닥 상장사 뉴파워프라즈마가 최대주주인 피앤피인베스트먼트도 지난해 4월 자본잠식으로 경영 개선 요구를 받았다.
최근 설립된 CVC들도 적자를 기록하는 경우가 적잖다. 동구바이오제약이 100% 지분을 보유한 로프티록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3분기 3억 5890만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코스닥 상장사 코아시아가 2021년 설립한 씨앤씨아이파트너스는 지난해 3분기 6억 8827만 원의 분기순손실을 냈다. 코스닥 상장사 솔트룩스의 솔트룩스벤처스는 같은 기간 1억 4955만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단기 성과만 바라보고 뛰어든 CVC 걸러질 듯”
CVC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메가스터디, 와디즈, 다날, 호반건설 등이 창투사 등록을 완료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된 이후 동원그룹, GS그룹, F&F, 평화그룹, 효성그룹, 에코프로, 빗썸, 포스코, CJ그룹 등 9개 지주회사가 CVC를 설립했다.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는 펀드를 통해 더 큰 규모로 여러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CVC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스타트업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에 CVC가 우후죽순 생겼다. 업계 유행인 데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설립 이후 활동이 미미한 기업이 많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일반 VC와 대비해 CVC만의 이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설립한 CVC의 경우 대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통상 VC는 수익을 내려면 5~7년이 걸린다. 큰 기업은 결국 돈을 벌고 있느냐를 증명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내부 설득이 잘 안 되면 1~2년 만에 조직을 접는 경우가 있다. 모기업이 출자를 하는 등 투자를 지속하면서 시너지를 낼 만한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 기다려주는 기업도 많지만, 단기 성과만을 보고 뛰어든 기업도 많다”고 했다.
스타트업 업계 다른 관계자는 “CVC는 대부분 오너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유행에 발맞춰 설립했는데 막상 투자가 별로 없다거나 투자한 기업의 성장이 뚜렷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문을 닫는 CVC가 심심치 않게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CVC 업계의 옥석이 자연스럽게 가려질 것이라는 내다보고 있다. 다만 하반기부터는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시장에 자금이 풀리면 CVC가 신규 펀드를 조성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