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돌았지만 절대강자는 없다
▲ 일러스트=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총선 직후인 12일 박근혜 위원장의 복지정책 수혜주인 아가방컴퍼니와 보령메디앙스, 박 위원장의 동생 박지만 씨가 최대주주인 EG 등 3개 종목은 모두 상한가를 기록했다. 거래량은 총 39만 주로 한 종목당 13만 주씩 거래된 셈이다. 평균거래대금은 30억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안철수연구소, 솔고바이오, 잘만테크 등 안철수 관련주 3개 종목도 모두 상한가를 기록한 것은 물론 평균 거래량이 530만 주에 육박했다. 박근혜 관련주의 13배가 넘는 인기다. 거래대금은 더 큰 차이를 보였다. 이들 세 종목의 평균 거래대금은 800억 원을 넘어 박근혜 관련주보다 26배나 높았다.
반면 바른손, 조광페인트, 우리들생명과학 등 문재인 관련주는 이날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 이들 종목은 평균 54만 주씩 거래됐고, 평균 거래대금은 17억 원 규모였다. 안철수 관련주에 비해 한참을 밑돌았다.
그런데 13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박근혜 관련주는 이날도 모두 상승하며 마감했지만, 안철수 관련주는 안철수연구소가 3% 조금 넘게 오르는 데 그쳤고, 솔고바이오와 잘만테크는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 반면 전일 고전했던 문재인 관련주 중 바른손과 우리들생명과학은 상한가, 조광페인트는 11% 넘게 오르며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익명의 증시 관계자는 “어차피 정치인 테마주는 회사의 재무상황이나 실적보다는 관련 정치인의 인기와 당선 가능성 등이 주가를 좌우한다”면서 “야권 패배로 민주통합당의 대표 주자였던 문재인 고문의 입지가 줄어들고 안철수 원장 입지가 넓어진 듯 보였지만, 야당의 총선 패배가 대선에서 진보층 결집력을 되레 강화할 수 있다는 시각이 반영되면서 테마주별 움직임이 하루 만에 바뀐 듯하다”고 분석했다.
문 고문은 비록 아성인 부산·경남지역에서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본인의 국회 입성은 성공했다. 안 교수는 인재근·송호창 등 지지후보들을 당선시켰지만 여전히 정치권과는 한발 떨어져 있다. 이처럼 3각 대결이 치열하지만 증시에서는 역시 박근혜 관련주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새누리당은 이제 박근혜 대세론을 업고, 당장 대선 준비 체제로 전환하겠지만 민주통합당은 선거 책임 등 향후 당권을 두고 내홍이 불가피하다”며 “이번 선거를 이끌었던 한명숙 대표가 사퇴하는 등 친노 인사들의 정치적 입지가 도전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상대적으로 대선 준비에서 새누리당에 비해 뒤처진 출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근혜 관련주에 더욱 힘을 실어줄 만한 재료다.
또 다른 증권사의 한 지점장은 “유력 정치인의 입지가 커지면 관련주의 탄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관련주의 범위도 넓어질 수 있다. 즉 기존의 박근혜 관련주 외에 새로운 관련주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시장에서 박근혜 대세론의 수혜를 입을 새로운 종목들을 더 발굴해 낼 것이란 시각이다.
반면 안 원장과 문 고문은 야권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어서 당분간은 박근혜 관련주 같은 확산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아직 야권이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의 정당득표율을 보면 새누리당이 42.8%, 민주통합당 36.45%, 통합진보당 10.3%, 자유선진당 3.23%였다. 이를 대선후보 지지율로 환산하면 보수성향인 박 위원장은 최고 46.03%에 달하지만 진보성향 후보의 46.75%에 못 미친다.
총선 후 갤럽이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도에서는 안 교수의 중요성은 드러난다. 다자대결 구도에서는 박근혜 37%, 문재인 17%, 안철수 16%의 순이었지만, 양자대결 구도에서는 박근혜 45.1%, 안철수 35.9%였고, 박 위원장과 문 고문의 대결에서는 47.8% 대 31.4%로 안 원장의 비교우위가 드러났다.
사실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당원인 문재인 고문을 중심으로 야권단일후보론이 힘을 얻을 수 있었지만 민주통합당의 야권 지도력에 타격을 입은 만큼 비(非) 민주통합당 단일후보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질 수 있다. 한명숙 대표가 사퇴하면서 공백상태가 된 민주통합당을 문 고문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당을 대선체제로 이끌어 가느냐도 관련주 향배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히 당적과 함께 국회의원 신분을 갖게 된 문 고문은 향후 대선 행보에서 구체적인 공약들을 내놓을 수 있다. 시기는 다소 늦어지겠지만 박근혜 관련주와 마찬가지로 관련주 확산 가능성은 열려있다.
물론 정치판도 변화가 정치테마주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비 정치적 변수도 분명 고려할 부분이 있다. 먼저 주가 본연의 속성이다. 테마주가 실적이나 재무상황을 거의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주가 등락에 따른 투자심리는 존재한다. 즉 주가가 떨어지면 사려는 수요가, 주가가 오르면 팔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은 여느 주식과 마찬가지다.
박근혜 관련주들은 대부분 총선 전 적잖은 조정을 겪었다. 야권 대비 열세가 점쳐지면서 대선 승리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탓이다. 올 초 2만 2000원을 넘었던 아가방컴퍼니의 경우 이번 선거 전 1만 1000원대로 반 토막 났으며, 지난 연말 2만 8000원을 넘었던 보령메디앙스의 선거 직전 주가도 1만 5000원대까지 밀렸다. 연초 8만 7000원까지 치솟았던 EG도 선거 직전 4만 7000원대까지 밀리는 수모를 겼었다.
이는 안철수 관련주도 비슷하다. 연초 17만 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한때 10만 원 아래로 밀렸고, 지난 연말 2300원에 근접했던 솔고바이오도 최근 1100원대까지 ‘번지점프’를 했다. 즉 조정 폭이 컸던 만큼 반등 폭도 클 수 있는 셈이다.
반면 문재인 관련주인 바른손은 ‘나꼼수’ 출신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이 불거진 4월에서야 조정을 받고 있으며, 우리들생명과학 역시 이 달 들어 의미 있는 수준의 조정이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3배 이상 올랐던 조광페인트는 최근 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이 지난해 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그나마 13일 반등으로 인해 조정 폭은 더 줄었다. 역설적으로 가장 덜 빠진 만큼 더 빠질 여지가 가장 큰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