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친박’ 유일호 선임 확장성 갖춘 맞춤형 퍼즐…안철수는 ‘친이’ 김영우 발탁 수도권 대표론 더욱 부각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는 100% 당원 투표로 진행될 예정이다. 어느 때보다 ‘당심’이 중요해졌다. 다양한 뿌리를 가진 당내 계파들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게 필승 전략으로 꼽힌다. 비윤계 대표주자 격으로 여겨졌던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하면서 선거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 까닭이다. 당내에선 전당대회가 ‘친윤 대 비윤’ 구도가 아닌 당내 세몰이 쟁탈전 양상을 띨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김기현 안철수 의원은 최근 당대표 선거캠프 선대위원장을 임명했다. 흥미로운 매치업이라는 평가다. ‘친윤’ 김기현 의원은 1월 13일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를 캠프 수장으로 발탁했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다. 여권 내부에선 친박계로 분류된다.
유 전 부총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경제다. 유 전 부총리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른바 ‘KS 라인’이다. 박사학위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서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몸담고 있던 유 전 부총리는 1998년 43세 나이로 최연소 조세연구원장을 지낸 바 있다. 그 뒤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유 전 부총리 가족관계도 이목을 끈다. 그의 부친은 유치송 전 민주한국당 총재로 1981년 논란의 ‘체육관 간접선거’ 당시 대선 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인물이다. 유 전 총재는 민주당, 민정당, 신민당을 거쳐 민주한국당 총재가 되기까지 줄곧 야권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여권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기현 의원은 삼고초려 끝에 유 전 부총리를 영입했다고 한다. 안철수 윤상현 의원이 띄운 ‘수도권 대표론’에 응수하는 차원에서 수도권 출신 선대위원장을 영입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김기현 캠프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 추진을 염두에 두고 실무적인 역량을 갖춘 유 전 부총리를 ‘실무형 참모’로 발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면을 보여주기 위한 인선이라는 의미다.
김 의원이 유 전 부총리에게 ‘윤심’ 굳히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유 전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박계로 분류되지만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 중립적인 성향을 지녀 확장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김기현 의원은 친이계 출신이다. 친박계로 분류됐던 유 전 부총리가 ‘윤심’ 기반 당내 통합을 추진할 맞춤형 퍼즐조각으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했다.
나경원 전 의원 불출마로 전당대회 다크호스로 급부상 중인 안철수 의원은 선대위원장으로 친이계 핵심 인사를 낙점했다. 김영우 전 의원이다. 김기현 의원이 선대위원장 인선에 ‘균형과 보완’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면, 안철수 의원은 ‘강점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안 의원은 김영우 전 의원이 수도권에서 3선 의원을 지낸 부분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안 의원 주요 전략인 ‘수도권 대표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인물로 김 전 의원이 발탁된 셈이다. 김 전 의원은 ‘실무형’보다 ‘정무형’에 가깝다. 언론인 출신으로 전당대회를 앞두고 ‘안철수 캠프 대표 스피커’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분석이다.
김 전 의원은 경희고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김 전 의원은 YTN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언론인 출신이다. 13년 동안 기자 생활을 마친 뒤 ‘이명박 대선포럼’으로 잘 알려진 안국포럼에 합류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중도보수 성향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권 내부에선 친이계 핵심 인사 중 하나로 꼽힌다. 김 전 의원과 함께 친이계 핵심으로 꼽혔던 인물로는 ‘윤핵관’으로 거듭난 권성동 장제원 의원을 비롯해 주호영 의원 등이 있다.
김 전 의원은 18·19대 총선에서 경기 포천·연천, 20대 총선에서 경기 포천·가평 지역구에 출마해 내리 3선을 했다. 제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선 감사원장 출신으로 출사표를 던졌던 최재형 의원 선거캠프 상황실장을 맡았다. 그리고 2023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안 의원 캠프 수장으로 합류했다.
안철수 의원은 1월 20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안 의원과 이 전 대통령 만남을 주선한 건 김 전 의원이었다. 안 의원은 김 전 의원과 동행해 이 전 대통령을 만났다. 정치권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안 의원과 만나 ‘수도권 대표론’에 대한 공감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이계 출신 친윤 김기현 의원은 선대위원장으로 친박계 유일호 전 부총리를 발탁하며 당내 계파 확장성을 추구했다. 대선 이후 국민의힘에 전격 합류한 안철수 의원은 선대위원장으로 친이계 김영우 전 의원을 내세우며 당내 세 확장에 돌입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당내 계보 아래서 더 많은 구성원을 끌어 모으는 쪽이 승리하는 제로섬 게임이 시작됐다”면서 “이번 전당대회가 2024년 총선 공천 구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투표권을 가진 당원들 역시 상당히 예민하게 상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친윤부터 시작해 친이·친박 등 보수진영을 관통하는 다양한 계파들이 언급되고 있다”면서 “전당대회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계파는 민정당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보수정당 당원으로 활동했던 민정당계 장년층 당원들이 나경원 전 의원 핵심 지지층이었다”면서 “나 전 의원이 불출마를 한 상황에서 민정당계가 어느 후보로 쏠리느냐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각 선대위에서도 전략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당원 수가 8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선 세부적인 전략보다 각 캠프가 보여주고자 하는 상징성과 메시지가 중요하다”면서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선대위원장을 인선하는 데엔 이런 요소들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과거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당원이 20만 명 규모였던 것에 비하면 당원 수가 4배가량 늘어났다. 조직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며 “인선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겠지만, 전당대회 선거전에서 선대위원장들이 얼마나 전략적 수완을 발휘할 수 있을지엔 물음표가 붙어 있다. 당원 수가 급증하면서, 당심 변동성이 워낙 예측불가한 상황인 까닭”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