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51>
▲ 화채는 우리의 대표적인 청량음료다. 겨울철에는 식혜·수정과가 으뜸이라면, 봄부터 가을까지는 화채의 계절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화채는 우리의 대표적인 청량음료다. 겨울철에는 식혜·수정과가 으뜸이라면, 봄부터 가을까지는 화채의 계절이다. 화채는 제철의 과일, 곡류를 가공하거나 식용 꽃과 잎을 오미자 국물이나 꿀물, 과일즙에 띄워서 만든다. 차갑게 마시기 때문에 뜨겁게 끓여서 마시는 차(茶)와 구분된다.
화채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다. 유교의 영향으로 혼례나 회갑 등 의례행사가 많았는데, 한 번에 많이 끓여두고 집안 행사 때마다 쉽게 낼 수 있는 음료로 발달했다.
화채는 조선시대 1829년 <진작의궤(進爵儀軌)>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849년의 <동국세시기>와 1896년 <연세대규곤요람>에는 복숭아화채와 앵두화채가 기록되어 있다. 또 19세기 말 한글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장미화채, 두견(진달래)화채, 복숭아화채, 배화채, 앵두화채, 복분자화채 등의 조리법이 나와 있다. 조선 후기에 일반 서민도 화채를 널리 마셔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화채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위에서 언급한 화채 외에도 향귤(여름 밀감), 천도복숭아, 복숭아, 모과, 흰떡과일, 산딸기, 토마토, 수박, 사과, 딸기, 참외, 포도 같은 과일과, 백합꽃, 국화, 노랑장미, 봉숭아 같은 꽃잎, 이 외에 생강탕, 산사, 순채(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송화, 오미자, 유자 등으로 화채를 만들었다.
1920년대 기록을 보면, 화채는 여전히 우리 민족의 청량음료로 애용되고 있었다. 1927년 11월30일자 <동아일보> 기록을 현재 맞춤법에 따라 읽어 보자. 경성여고보에서 요리실습회를 개최해 손님에게 대접했다는 기록이다.
(상략) 우리는 먹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나온 음식은 온면(溫麵) 수란(水卵) 잡채(雜菜) 어채(魚采) 밥던부라(부친것) 샌드위치 신선로(神仙爐) 과자(菓子) 과실(果實) 화채(花菜) 등이었습니다. (하략)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상략) “아, 아이스크림! 아스 크림!” 이렇게 번화한 거리거리에서 외치는 소리는 어느 해든지 여름을 알리는 뚜렷한 첫 소리다. 이 소리에 뭇사람의 눈앞에는 하얗게 갈아놓은 어름, 밝은 빛 딸기물, 노란빛 레몬물, 크림빛 바나나물들이 얼른대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마음과 몸을 거리도 가벼이 잡아 끌어내고 있다. 과일전마다 가장 흔하게 벌려놓은 밀감은 겉으로만 보아도 저절로 입에 침이 모여든다. 급한 마음에 알알이 까서 그 자리에서 홀랑 먹어버리고도 싶지만 꾹 이 마음을 삭이고 집으로 가지고 가서 설탕에 재어 화채로 만들어 여럿이 시원하게 나누어 먹고도 싶다. (하략)
서양의 음료, 아이스크림과 우리의 청량음료 화채가 경쟁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화채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 대표적인 조선 요리를 만드는 법 가운데는 화채가 들어가 있다. 첫여름의 생일상, 신랑신부상, 돌잔치상에도 화채는 꼭 들어가 있다.
화채가 언제부터 서양의 음료에 밀리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 고유의 전통을 지키면서 현대인의 미각에 맞출 만한 화채를 만들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채가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커피와 탄산음료와 과일맛 음료에 밀려 눈에 띄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의 성서한인(城西閑人)이라는 익명의 필자가 쓴 글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동아일보> 1924년 10월13일자)
우리에게는 우리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너무도 적다. 정치 경제 교통기관 수도 전등 심지어 의복과 음료까지도 우리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우리는 진실로 ‘남의 세상’에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러하다. 혹은 구미인의 정신으로 살고, 일본인의 정신으로 살고, 혹은 러시아인의 정신으로 산다. 우리는 공자를 말하고 칸트를 말하고 마르크스와 레닌을 말하고 복전덕삼(福田德三)이나 대삼영(大三榮)을 말한다. 청년남녀들은 서양인 혹은 일본인 또는 인도인 중에 하나를 뽑아 그를 통해서 서양 일본 혹은 인도의 정신을 배우기에 골몰한다. (중략) 우리 조선인은 지금 남의 세상에 살고 남의 정신에 살고 있다. (후략)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포대기가 푸른 눈의 여성들에게 각광을 받는 시대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가 또 한 번 가슴을 울린다.